베토벤 피아노소나타 30번 E major, Op 109(3/3)
음반 비교감상 2021. 9. 15. 23:23 |(ii) 녹음들
; 참고 음반 2개를 제외하면 총 5명의 피아니스트들의 9~10개 녹음. '함머클라비어' 때는 리히터(Sviatoslav Richter)와 피셔(Annie Fischer)까지 총 7명이었는데, 이 음악은 한 수준이 더 올라가다 보니- 테크닉적으로 더 어려운 곡이야 얼마든지 있을 수 있겠지만- 음악적으로는 최고 난이도라서 추가로 두 명이 더 탈락했다.
1. Glenn Gould- 1956
1악장 첫 음표부터 루바토가 들어가는 게 놀랍다면 놀라운 점이고, 굴드가 이 음악을 어떻게 보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2악장은 베토벤의 ‘최대한 빠르게(Prestissimo)’ 지시에 가장 충실한 연주- 이 스피드로 노래하기는 거의 어렵지만, 대신 음표가 살아서 튀어오르면서 리듬감과 음악의 기세가 좋아진다. 여튼 1/2악장은 음악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가장 파격적인 것은 역시 3악장. 일단 도돌이표에 의한 단순 반복은 모두 생략이다. 또 1악장 첫머리처럼, 주제도 그렇지만 특히 제1변주에는 굴드가 혹 쇼팽 녹턴을 연주했다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싶은 풍부한 루바토가 들어간다- 곧, 우리가 앞서 곡목해설에서 언급한 코르토와 같이, '쇼팽이 음악사에 들어오는 순간'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 흥미로운 점(물론 굴드 본인에게 물었다면 아마도 전혀 다른, 생뚱맞게 들리는 이유를 댔을 가능성이 많다.). 제4변주는 너무 간살맞아서 못 참겠다는 듯이 '주제보다 조금 느리게'라는 베토벤의 지시는 완전히 무시하고 최대한 달린다. 4성의 빠르게 이어지는 울림은 참 좋은데- 그래서 이것 하나만으로는 충분히 말이 되지만- 악장 전체의 밸런스가 무너지게 되고, 무엇보다 이게 베토벤의 의도에 부합하는지 우리는 의문이다. 다만 마지막에 반복되는 주제를 처음과 확실히 차별화하고 싶다면 이것이 가장 잘된 녹음- 첫머리와 완전히 다른 분위기면서 '칸타빌레'는 잘 살린 연주다.
굴드가 우리 나이로 25세일 때의 녹음이고, 나중에 다시 녹음할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이 몹시 아쉽지만- 아마 했다면1955/81년의 2가지 버전의 골드베르그 변주곡처럼 완전히 새로운 해석을 들려주었을 것이다- 이런 패기와 독창성은 요즘 젊은 피아니스트들한테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2. Wilhelm Backhaus- 1950
1/2악장은 박하우스답게 날렵한 흐름과 기세를 잘 살리는 연주. 하지만 3악장은 주제부터 악보의 스포르찬도나 크레센도를 거의 무시하듯이 강약이나 볼륨대비를 확 줄여서 아주 결이 고운, 꽃향기 넘치는 연애편지 같은 음악을 만든다. 이게 주제의 첫머리에 'mezza voce(절반 정도 음량으로)' 지시어가 있기 때문에 전연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간지러운 것을 싫어하는 박하우스로서는 꽤 이례적인 해석인데, 역시 우리가 앞서 언급했던 32번 2악장과의 '차별화' 문제가 있다- 녹음을 들어보면 박하우스는 32번의 아리에타를 아주 역동적인 음악으로 보기 때문에, 그에 비해 이 3악장은 한없이 다정한 음악이 된 것.
이 3악장을 이런 관점으로 접근하면 제4변주가 무척 아름다워진다. 대신 제6변주에서 드라마가 좀 약한데, 그것은 당연히 박하우스가 클라이맥스를 만들 줄 모르는 게 아니라, '이 음악은 여기서 폭발하지 않는다'고 결정했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의 견해는 이 3악장이 제4변주와 제 6변주에서 말하자면 'double-climax'를 갖고 있다는 것이지만, 옳든 그르든, 갑자기 제6변주에 와서 폭발한다거나 하는 그런 식으로 해석의 통일성을 깨지 않는 것이 대가다운 품이 높은 연주다.
3. Wilhelm Backhaus- 1961
1악장 발전부의 클라이맥스는 외려 격하기만 한 상기 모노 버전보다 더 통제가 잘 되어서, 과도하거나 어긋남이 없이 듣는 사람을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게 만들 정도- 1악장만으로는 여기 소개된 음반 중에서도 거의 최고다. 3악장도 이쪽이 모노 버전보다 '달달한 칸타빌레'를 조금 줄여서 전체적으로 음악이 담백하고 자연스러운 맛이 있다. 테크닉적으로는 아무래도 11년전이 조금 낫지만- 음표 하나하나가 더 고르고 정확하게 소리가 난다- 대신 음질은 이쪽이 스테레오라서 해석 외적인 면에서는 서로 일장일단이 있으되, 하나만 고르라면 역시 이쪽이 대표반.
4. Wilhelm Kempff- 1936
켐프의 스테레오 베토벤 전집은 거의 늘 구할 수 있는 품목이고 1950년대 모노 전집도 잊을 만하면 한번씩 나왔지만, 이 2차대전 이전의 78 rpm 녹음은 그간 구하기 어려웠다. 2016~7년에 APR 레이블로 복각이 된 것은 한국에 수입이 안 된 것 같은데, 이 복각을 라이센스 한 것이- 이전에 나왔던 박스들을 거의 그대로 재탕해서 성의없이 합쳐 놓아서 욕먹고 있는- DG의 80장 짜리 새 켐프 에디션에 포함되어서 나왔다.
테크닉적인 면에서 이것이 켐프의 세 녹음 중 가장 깨끗하게 연주된 음반. 모노 전집에 포함되어 있는 1951년 녹음이 음질은 좀 낫지만 어차피 같은 모노면서 해석적으로도 아래 스테레오만큼 차별화가 안 되어 있어, 구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쪽을 더 추천한다.
(참고로 이 녹음도 굴드의 경우처럼 3악장 반복은 전부 생략했지만, LP 이전 시대는 레코드판 한 면에 껏해야 3~5분 들어가던 시절이라, 연주자의 음악적 판단과 무관하게 여러가지 컷이 많다. 이후의 켐프 녹음들에선 이 생략이 없다.)
5. Wilhelm Kempff- 1964
가장 주목해야 할, 우리 나이로 딱 칠순이 된 켐프가 '득음'을 한 부분은 역시 3악장(주제)이다. 이전 녹음들은 박하우스만큼은 아니라도 주제 앞에 붙은 'mezza voce'에 어느 정도 신경을 썼었지만, 이제는 전혀 얽매이지 않고 액센트를 줄 때 확실하게 주고 크레센도를 충분히 살리면서 노래하는데, 들어보면 이 음악은 이렇게 해야 '숨을 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실 우리가 추측하기엔 이 'mezza voce'가, 청력을 상실한 베토벤이 비현실적인 볼륨감을 갖고 지시했을 가능성이 꽤 있다- 즉, 음량을 반으로 줄여도 음악이 충분히 숨을 쉴 만큼 강약(조절)이 청중들에게 전달될 수 있으리라고 오판했을 수 있다는 것. 사실- 특히 후기 베토벤의- 극단적인 템포나 거친 울림(sonority)나, 마음에 안 들면 다 베토벤의 '청력'에 책임을 돌리는 경향이 있지만, 우리가 보기엔 만약 청력 땜에 베토벤이 지장을 받은 게 있었다면, 이런 것들보다는 당연히 '음량'이다.
이어지는 변주들은- 특히 제1/2 변주에서- 켐프 특유의 자연스러운 노래가 돋보인다. 다만 굴드처럼 '간살맞아서 못 참겠다'는 듯 빠르게 지나가는 제4변주는 역시 아주 효과적이진 않은데, 다만 켐프처럼 주제를 시작하면 이 편이 더 해석의 일관성이 있다는 점은 지적해주어야 한다.
사실 켐프 베토벤이 물론 초일류이긴 한데, 악보를 보고 정밀하게 비교해서 들으면 제르킨이나 박하우스에 비해서 미세하게 밀리는 느낌이 드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이 30번은 켐프의 득의작이고, 켐프 예술을 대표하는 녹음이라고 해도 좋다.
6. Rudolf Serkin- 1952
1악장은 한마디로 '맑다'- '전원'에 비유한다면 물의 이미지라기보다는 청정 고원의 느낌. 그리고 제2주제는 확실한 아다지오로 템포를 늦춰서, 제1주제와 제2주제간의 대비를 강조하는 관점을 대표하는 연주- 들어보면 이것도 완벽하게 말이 된다. 또, 1/3악장은 여기 소개된 녹음들 중에서 가장 느리고, 2악장은 거의 굴드 다음으로 빨라서 악장 간에도 분위기의 대비가 확실하다.
3악장은 일단 제르킨은 주제를 경건한 음악으로 본다. 앞서 작품개요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이 주제가 전원교향곡 5악장 '목동의 노래(Hirtengesang)'의 주제처럼 코랄(chorale)적인 성격도 갖고 있어 이것 자체로는 충분히 가능한 해석이다. 다만 문제는 이 음악의 성격을 이렇게 잡으면 중요한 제4변주가 상대적으로 고지식하고 재미가 없어진다는 것- 여러 대가들의 녹음을 들으면 들을수록, 이 3악장은 해석의 일관성 혹은 통일성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주제와 변주 6개를 다 만족스럽게, 재미있게 연주하기가 힘든, 참 까다로운 음악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7. Rudolf Serkin- 1976
해석의 큰 틀은 변하지 않았지만 이쪽이 노래가 더 낫다. 1악장은 제1주제와 제2주제 사이의 극단적인 대비를 조금 줄인 것이 들리고, 2악장도 프레스티시모(Prestissimo)는 포기하고 템포를 살짝 늦춰서 칸타빌레에 더 신경썼다. 3악장도 제2/4/6 변주는 확실히 이쪽이 노래가 더 좋다.
이 음반은 사실 제르킨이 살아있을 때 출반에 동의한 녹음은 아니고, 사후에 컬럼비아의 프로듀서(Thomas Frost)가 편집해서 역시 피아니스트인 아들 피터 제르킨의 동의를 받은 것인데, 들어보면 제르킨 본인의 마음에 100% 흡족하지 않았는지는 몰라도 객관적으로 우리가 '제르킨' 이름 석 자에 기대하는 수준에는 모자람이 없다.
8. Rudolf Serkin- 1987 live
제르킨 80대(정확히는 우리 나이로 85살)의 라이브. 이 녹음도 역시 가장 큰 변화는 3악장이다. 남달리 느리게 연주하던 주제의 템포가 드디어 안단테 부근까지 왔고, 이렇게 템포를 당기면서 음악은 이제 ‘경건’도 버린, 어깨에 완전히 힘을 뺀 '평담'의 경지. 그리고 라이브이기 때문에 흐름을 잘 타면서 흥이 오른 제2변주와 제5변주는 이전 녹음들보다 노래가 더 잘됐다. 제르킨의 이 곡의 대표반은 굳이 꼽자면 위 1976년 녹음이 되겠지만, 이것도 충분히 들어볼 가치가 있는 음반.
9. Artur Schnabel- 1932
1악장은 이 음악이 갖고 있는 ‘환상곡풍’을 가장 잘 드러내는 연주- 이것도 '물'에 비유한다면, 아마도 '은하수'일 것이다. 2악장에서는 슈나벨이 베토벤의 가장 빠른 악장들에 대처할 때 나타나는, 미끄러지듯 달리는 독특한 리듬감각을 들을 수 있다. 취향에 따라서는 '방정맞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기운생동'이라는 관점에서, 음표가 살아서 튀어오른다는 점에서 장점이라고 본다.
3악장 주제는 역시 경건하게 들어오지만, 제르킨보다는 촉촉하다. 제2변주는 제1변주의 녹턴적인 분위기를 잘 이어가는 터치- 사실 제1변주를 마친 다음엔 '움직임(의 개시)'만 생각하기 쉽고, 위에 소개된 녹음들도 대부분 이런 관점에서 접근하기에, 이 변주곡이 양면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깨우쳐준 연주다. 반면 제6변주는 중간에 템포를 당겨서 더 역동적인 클라이맥스를 만들려고 시도하는데 그렇게 효과적으로 들리지 않아서, 여기는 차분하게 긴장을 쌓아올려가야 하는 음악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말하자면 '반면교사'. 전반적으로 슈나벨의 베토벤은 푸르트벵글러처럼 한 악장 안에서도 교묘한 템포 변화를 많이 주는 편인데, 이 제6변주는 완벽하게 잘 되지는 못한 경우. 다만 슈나벨의 트릴은 특별하다- ‘음악적인 트릴’이라는 게 따로 있다는 걸, 성부를 바꿔가면서 한없이 트릴이 이어지는 이 변주곡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녹음도 충분히 훌륭하지만 슈나벨이 고작(?) 쉰하나일 때 녹음이고,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다른 피아니스트들의 경우 이 곡은 일흔, 여든이 넘어도 계속 깨달음이 있는 음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역시 두번째 녹음이 없다는 점에 아쉬움이 전혀 없지는 않다.
(※ 참고 녹음)
10. Alfred Cortot The Master Classes
1954~60년간 코르토가- 본인이 세운- 에콜 노르말(École Normale de Musique de Paris)에서 진행한 마스터 클래스의 녹음. 대략 30시간 정도의 원본을 진지한 음악애호가도 들을 만하도록, 음악이 많이 이어지는 부분을 골라서 1/10 분량으로 편집한 것이다. 책임 프로듀서는 다름 아닌 머레이 페라이어(Murray Perahia)- 페라이어가 코르토 아들한테 이 테이프의 존재를 듣고, 소개를 받아서 내용을 확인한 다음 소니(Sony)에 제안한 프로젝트다. CD 내지에 말하자면 코르토의 '녹취록(transcript)'과 그 영어 대역이 같이 있어, 음악을 알고 있다면 불어를 못하는 사람도 대의는 파악할 수 있다.
디스크 석 장 중 처음 절반 정도를 코르토가 녹음을 거의 남기지 않은 바하/모차르트/베토벤에 할애했는데- 나머지는 쇼팽과 슈만이다- 그 중에 이 곡도 들어있다. 코르토는 E major(미-솔#-시), E minor(미-솔-시), 그리고 (한 옥타브 낮은) E major, 이렇게 3개의 화음이 소나타 전체의 구조를 이루는 핵심이라고 파악한다. 이런 관점에서 1악장의 제2주제도 단지 리듬, 박자 등등이 변형이 되어서 나타나는 연속적인 흐름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1악장의 두 주제 사이에 지나친 '대조'가 불필요하다고 보는 견해의 근거.
평가할 수 없는 단편들에 불과하지만, 코르토가 베토벤에 있어서도 최고 수준의 음악성을 갖고 있다는 것은- 따라서 만약 전곡을 녹음했더라면 우리의 이 리스트에 틀림없이 포함되었으리라는 것 또한- 의심의 여지가 없다. ‘피아노의 시인’이라는 수식어가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피아니스트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11. Mieczyslaw Horszowski- 1977 live
가장 특징적인- 그리고 우리에게 충격을 준- 것은 2악장이고, '프레스티시모'는 완전히 버리고 칸타빌레를 극대화한, 굴드와 정확하게 대척점에 있는 버전. 이 음악에서 이렇게 끊임없이 노래가 흘러나올 줄은 우리는 미처 예상치 못했다. 이것은 폭풍우라기보다는 처절한 ‘인간적인 비극(human tragedy)’이고, 혹 이게 '폭풍우'라면, 이토록 우아하고 아름다운 폭풍우는 비교할 것이 아마도- 장르는 다르지만- 레오나르도 다빈치 말년의 소위 '대홍수 소묘(deluge drawings)'들 밖에 없을 것이다.
3악장 제1변주는 쇼팽에도 일가견이 있는 호르쇼프스키식 루바토를 들어볼 수 있다. 이게 재미있는 게, 처음 듣기엔 베토벤으로는 좀 과하지 않나 싶은데 이걸 듣고 나서 루바토가 없는 연주를 틀어 보면 또 딱딱하게 느껴진다- 정말로 '베토벤도 쇼팽도 아닌', 경계에 걸친 음악. 그리고 호르쇼프스키는 '폴리포니(polyphony) 감각'을 타고난 선택받은 소수에 속한다- 제3/5변주에서 양손이, 혹은 각 성부가 늘 동시에 노래하고 있는 것을 들을 수 있다. 마지막 제6변주는 라이브의 열기와 흥이 더해져서, 클라이맥스가 (가속 없이) 잘 만들어진 연주- 음악은 테크닉이 다가 아니라는 걸, 때로는 미스터치가 문제가 안된다는 걸 보여주는 좋은 사례 중 하나이다.
음질에 문제가 있는 라이브이고, 본인이 출반에 동의하지 않은- 그리고 동의했을지 의문인- 음반이라서 ‘참고 녹음'이 되었지만, 음악적으로 굉장히 터득이 깊은 연주.
(호르쇼프스키가 1950년대 Vox 레이블로 베토벤 소나타 29/30/32번의 스튜디오 녹음이 있긴 한데, 우리가 음반을 안 갖고 있다. 물론 애플뮤직 같은 음원 사이트에는 올라와 있지만, 클래식은 '스트리밍' 듣고는 정밀한 평가는 못한다. 검색을 해보니 Vox는 2018년에 Naxos에서 인수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옛날 음원들이 재발매가 될지는 잘 모르겠다.)
선호도: Schnabel>=Serkin1976=Kempff1964=Serkin1987>=Backhaus1961>=Backhaus1950=Serkin1952>=Kempff1936>Kempff1951>=Gould
해석의 삼각형: Gould/Backhaus/Serk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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