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주 화/수(11.18/19) 이틀에 걸친 바이에른방송교향악단 내한공연의 핵심 프로그램 한 곡 리뷰. 사람에 따라서는 드보르작은 너무 뻔하다, 하루가 아니라 이틀 중에서 한 곡을 골라야 한다면 쇼스타코비치 5번이 아니겠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견해는 다르다- 쇼스타코비치 5번은 드보르작 9번보다 더 '복잡한' 음악이지, '좋은' 음악은 아니다.)

 

Dvořák, Symphony No. 9 in e minor, Op. 95,  “From the New World”

 

I. Adagio- Allegro molto

II. Largo

III. Scherzo. Molto vivace

IV. Allegro con fuoco

 

 

(i) 작품개요

일단 '뻔하다'는 의미를 해석의 여지가 좁다는 의미로 본다면 과히 틀린 것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물론 실제 연주를 하는 전문음악가들은 연구할 게 많겠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드보르작은 베토벤처럼 서로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접근법도 다 말이 되고 들을 만한- 그래서 모두 들어봐야만 하는- 그런 음악은 아니다. '정답'까지는 아니어도 '모범답안'은 있는 음악인 것. 하지만 정말 뻔한 음악으로 생각한다면, 아래 악장별 개요에서 보듯이 매 악장 작은 함정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아래 (ii) 녹음들에서 실제로 확인해보면 이것들을 다 피해가는 지휘자가 없어서 아무리 대중적인, 뻔해 보이는 음악이라도 완벽한 명반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어떻게 인간이 완벽할 수 있겠는가?- 진리를 다시금 일깨워준다.

 

- 1악장: 서주가 달린 소나타 형식. 해석의 큰 틀은 갈래가 복잡하지 않아서 4악장과 연계해서 같이 불꽃튀고 격렬한 음악으로 가느냐, 아니면 4악장과 차별화해서 극적인 효과는 피날레를 위해서 아껴두고 보다 서정적으로 가느냐의 차이. 둘다 들을 만한데 구조를 명확하게 해주는 것은 전자인 의미가 있다. 

이유를 설명하자면 우선 이미 언급한대로 이 악장은 제1주제-제2주제-작은 코다(codetta) 순으로 전개되는 소나타 형식을 따르고 있는데, 코데타가 부드럽고 조용하게 시작하기 때문으로 강-약-약으로, '약'이 두번 중복이 되어서 흐름이 좀 이상해지는 구석이 있다- 이것이 이 악장의 '함정'이라면 함정. 그런데 또 제2주제 선율 자체는 늦추기보다는 날렵하게 계속 조여나가야 어울리는 음악(그래서 해설서에 따라서 제2주제를 경과구로 보고 코데타의 첫머리를 제2주제로 보기도 하는데, 그렇게 보면 제2주제하고 코데타가 한몸이 되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이상한 건 마찬가지다). '형식'은 그냥 사후적으로 분석하는 거고 실제 음악의 흐름이 중요한데, 그렇다면 '모범답안'은 애초에 제1주제를 최대한 부드럽고 여유있게 노래하는 것- 그럼 약-강-약으로 조화가 맞는다. 대신 제1주제를 여유있게 시작하면 당연히 악장 전체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그래서 위에서 4악장과 분위기의 차별화가 있는 편이 구조가 명확해진다고 이야기한 것.

- 2악장: 3부 형식. 중간에 1악장 주제를 언급한다거나 서주가 다시 나온다거나 약간 변형이 있지만 대략 크게 ABA 꼴이고, B는 다시 b-c-b-c-b 비슷하게 주요 선율을 2개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일단 기억해둘 것.

그럼 이 악장의 '함정'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고, ‘라르고Largo’는 그냥 라르고로 하라는 것이다. 충분히 천천히 노래를 해주면 되는데 대부분 지휘자들이 죽어도 무시한다. 보다 빠르고 간결하게 노래해보려는 의도지만 이 음악은 그렇게 해서 고급스러워지는 음악이 아니다. 이를테면 상기 B의 c 부분에서 빠른 템포로 연주하면 저음 현에서 넣는 피치카토가 흡사 빨리 끝내라고 재촉하는 느낌, 목관의 노래를 방해한다. 드보르작의 비교우위는 빠른 악장보다는 느린 악장에 있고- 바깥 악장들은 안 좋은 의미에서 ‘연극적인theatrical’, 유치함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고 상대적으로 느린 악장이 아름답다- 이 곡에서도 2악장을 충분히 강조해서 노래해주지 못할 것 같으면 연주하는 가치는 반감되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이 곡은 드보르작이 미국에 와서 원주민 인디언들과 흑인 음악의 영향을 흡수해서 작곡한 것이고, 이 2악장의 제1주제는 이 작품에서 가장 분명하게 오음계로 되어 있다. 우리도 흑인영가나 인디언 민요에는 지식이 별로 없기 때문에 단언할 수는 없지만 이 음악을  '유럽 스타일'의 아다지오나 안단테로 연주하면 효과적이지 않은 이유의 적어도 일부는 여기에 있지 않나 의심된다.)

- 3악장: 통상적인 스케르초지만 정식 트리오가('B'라고 하자) 나오기 전에도 스케르초 안에 짤막하게 느리게 노래해야 하는 대조적인 악구가(여기는 'b') 들어 있어서 마치 2단으로 트리오가 들어간 형태로 되어있다. 뭔가 번다한 느낌인데 또 드보르작은 이 곡에서 가장 빠른 'molto vivace' 지시를 해놓고 있다. 어떻게 하란 뜻일까? 이게 이 악장의 '함정'.

엊그제 수능시험을 끝낸 수험생들에겐 조금 미안하지만, 사실 이 문제는 간단한 '사지선다형' 문제로 표시하면 가장 이해가 빠르다: 다음중 이 트리오들을 연주하는 올바른 방법은?

 

① b도 B도 천천히 노래한다(이단 트리오니까)

② b는 빠르게(스케르초(A)의 일부니까), B는 천천히(진짜 트리오니까)

③ b는 천천히, B는 빠르게

④ b도 빠르게, B도 빠르게('molto vivace'에 충실하게 끝까지 달려야 한다!)

 

'찍기'에 촉이 있는 사람은 보기 써놓은 것만 봐도 눈치챌 수 있겠지만 정답은 ③이다. 무엇보다 들어보면 가운데 트리오 B는 적당히 경쾌한 춤곡이기 때문에 너무 늘어지면 듣기 좋지 않고 반대로 b는 서둘면 노래가 잘 안된다. 과반수의 지휘자들이 ①번을 찍었는데- 스케르초의 트리오는 천천히, 대조를 주어야 한다는 선입견때문일지 모른다- 오답이다. 상기한 음악적인 내용상의 들리는 효과도 그렇지만, 이단으로 중간에 3번이나 음악이 늘어지는데 'molto vivace'를 어떻게 지킨단 말인가? 이상하지 않은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답이 ②번인데 음악적인 효과가 거꾸로라서 완전히 함정에 걸려들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경우. 아마도 ①번을 선택한 지휘자들의 관점은 이 곡은 사실상 느린 악장 2개를 빠르고 극적인 바깥악장 2개가 둘러싸고 있다고 보는 것일 텐데, 실상은 차라리 가운데 트리오 B도 경쾌하기 때문에 스케르초 A 안에 짧게 통상적인 트리오 성격의 'b'가 끼워넣어져 있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 4악장: 다시 짧은 서주가 붙은 소나타 형식. con fuoco는 ‘with fire’라는 뜻이고 음악의 성격을 알기 쉽게 지시해준다. 굳이 '함정'을 찾는다면, 제2주제에서 템포를 늦추면 효과가 별로라는 것- 이미 멜로디의 성격 자체가 명확히 대조가 되기 때문에 굳이 더 구분지을 필요도 없고 음악의 흐름이 늘어지는 (-)가 더 크게 들린다.

 

(ii) 녹음들

1. Rafael Kubelik/Berlin Philharmonic Orchestra- 1973

느긋하게 듣기 좋은 소리를 만들어 내서 들을 때는 무난한데 다 듣고 나면 별로 기억나는 게 없는 그런 녹음. 별 특색이 없는 게 쿠벨릭의 특성이기도 하다.

2. Ferenc Fricsay/Berlin RIAS Symphony Orchestra- 1954

프리차이는 오케스트라를 노래하게 할 줄 아는 지휘자. 그래서 음악이 흐르는 건 좋은데, 이 곡하고 개념이 잘 맞지 않는 경우- 2악장은 여기 소개된 녹음들 중에서는 가장 빠르고 반대로 3악장은 조금 늘어진 느낌. 4악장 발전부에서 템포 가속도 유혹적이긴 한데 막상 들어보면 아주 효과적이진 않다.

3. Willem Mengelberg/Amsterdam Concertgebouw Orchestra- 1941

베토벤은 들어보면 '악' 소리나게 못하는 멩겔베르크지만, 드보르작은 좀 다르다. 2악장이 특히 좋아서 여기 소개된 녹음들 중에 가장 잘된 연주 중에 하나- 잉글리쉬 호른이 제1주제 들어올 때부터 '아, 이거구나' 하는 느낌이 온다. 이 음악이 어떤 감정, 정서인지를 제대로 알고 있는 연주. 3악장은 b나 B들은 '정답'에 가깝지만 스케르초의 첫 시작부분이 좀 무거운 것이 단점. 4악장도 'con fuoco'의 정신은 충실하게 살아있다. 전체적으로 액센트나 부분적인 템포변화가 촌스럽게 들릴 수 있지만 2악장 하나만으로 다 보상할 수 있는 가치가 있다.

4. Václav Talich/Czech Philharmonic Orchestra- 1954

상대적으로 바깥쪽 1/4악장에 더 강점이 있는 녹음- 특히 마지막 악장에서 힘과 기세가 좋다. 2악장은 서둘지는 않지만 뭔가 노래가 2% 부족한 느낌. 전체적으로 현대 기준으로는 앙상블이 정교하지 못하게 들리는 부분이 있지만 탈리히(1883년생) 세대의 기준으로는 아닐 수 있을 것이다.

5. Karel Ančerl/Czech Philharmonic Orchestra- 1961

안체를은 아마도 체코 출신의 지휘자들 중에서는 음악적으로 가장 뛰어난 지휘자이지만 역시 이 곡과 개념이 잘 맞지 않는 경우. 1/4악장 공히 절제되고 단정한 느낌의 연주. 2악장도 제2부에 해당하는 약간 청승맞게 슬픈 부분은 가속을 해서 빨리 지나가고 3악장도 스케르초 안의 'b'는 빨리 하는 상기 ②번을 선택. 해서 전체적으로 낭만적인 요소는 최대한 배격한 '신고전주의' 드보르작인데, 드보르작이 고전적인 형식은 충실히 따르고 있지만 정서는 아니기 때문에 실패.

6. Václav Neumann/Czech Philharmonic Orchestra- 1981

'건전가요, 혹은 새마을 노래' 풍의 드보르작. 노이만은 (적어도 이 녹음에서는) 전형적으로 리듬감각에 약점이 있는 지휘자- 음악에 엑센트를 줄 줄 모른다.

7. George Szell/Cleveland Orchestra- 1959

셀과 클리블랜드는 기대한대로 멋진 사운드를 들려주지만 역시 개념이 잘 맞지 않는 경우. 이를테면 2악장은 음악이 차갑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노래하는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해야 더 옳을지 모른다. 그래도 1/2악장보다는 전반적으로 3/4악장이 음악의 흐름이 낫다고 볼 수 있는데 단 4악장은 부분적으로는 위에 설명한 이 악장의 '함정', 즉 왜 제2주제를 템포를 표나게 늦춰서 연주하면 안되는지 예시해주는 경우.

8. Leopold Stokowski/New Philharmonia Orchestra- 1973

2악장 올바른 템포로 들어오고 멩겔베르크의 '신파조'가 싫다면 세련된 버전으로는 가장 잘된 연주. 3악장도 정확하게 '정답'을 택하고 있고, 음악의 흐름을 간결하게 위해서 스케르초 시작부분의 반복도 생략하는데 이것은 스케르초의 맛을 좀 약화시키기 때문에 장단이 있는 선택으로 보인다. 호오가 가장 크게 갈릴 부분은 바로 4악장, 자유로운 템포 변화를 포함해서 부정적인 의미에서 'Stoki-ism'이 작렬한다. 'con fuoco'는 실종이고 유장하고 장대한 서사시를 지향하는 연주. 우리는 알기 쉽게 'con fuoco'를 살리는 쪽을 선호하지만 사실 다 듣고 나면 1악장부터 일관된 접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이 편이 '신고전주의'보다는 낫다.

9. Nicolai Malko/Philharmonia Orchestra- 1956

2악장은 제1주제는 무척 아름답게 잘 되었는데 제2부에서 불필요한 가속이 있는 것이 감점. 3악장은 여기 소개된 녹음들 중에서 가장 빠른, 'molto vivace'에 충실한 연주- 완벽하게 효과적인 것은 아니지만 이 악장을 굳이 천천히 하지 않아도 노래가 된다는 걸 보여주기에는 충분한 예다. 바깥 악장도 노래하는 부분과 다이나믹한 부분이 잘 조화된 연주. 무엇보다 음악에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는 것이 최대의 장점으로 들린다.

10. Arturo Toscanini/NBC Symphony Orchestra- 1953

1악장은 이 곡의 구조를 가장 명료하게 보여주는 솜씨- 우리가 위에서 설명한 제시부 해석법은 바로 이 토스카니니에게서 배운 것이다. 3악장도 '정답'을 정확히 찾아냈고 4악장도 별로 흠잡을 데가 없다. 거의 완벽할 뻔 했는데, 문제는 템포를 잘못 잡은 2악장. 그래도 간결하게 노래하는 쪽으로는 가장 잘된 연주일 것이다.

11. Constantin Silvestri/French (Radio) National Orchestra- 1957

바깥 악장들에 강점이 있는 연주- 1/4악장 공히 'con fuoco'로 가는 선택이고 강력한 사운드가 스트레스 해소해주는 음반. 2악장은 제1주제가 조금 미흡한데 대신 제2부를 템포를 늦춰서 확실히 강조해주는 것이 나름대로 일가 있는 해석. 다만 3악장은 조금 너무 많이 늘어지는 '오답'이고, 녹음이나 오케스트라가 모두 소리가 좀 거칠게 된 것이 흠.

12. Constantin Silvestri/French (Radio) National Orchestra- 1959

2년만에 같은 오케스트라와 만든 스테레오 버전. 녹음이나 연주도 더 세련되어졌지만 음악도 마찬가지여서 결코 똑같지 않다- 1악장은 보다 부드러워지면서 4악장과 차별화가 생겼고, 토스카니니 외엔 거의 유일하게 제2주제 처리가 잘된 연주. 2악장도 더 여유를 갖고 노래한다. 3악장만 유일하게 개선에 실패, '오답' 그대로지만 4악장의 ‘con fuoco’는 서둘지 않으면서 그대로 살아있다. 이 음악이 적성에 맞는 지휘자.

 

 

선호도: Toscanini=Mengelberg=Stokowski>=Silvestri1959=Malko>=Szell=Fricsay=Silvestri1957

             =Talich>Ančerl>Kubelik=Neumann

해석의 삼각형: Mengelberg/Ancerl/Stokowski

Posted by 이현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