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1번 C Maior, K. 467
음반 비교감상 2014. 11. 9. 21:46 |
(돌아오는 화요일(11.11) 머레이 페라이어 & ASMF 내한공연의 핵심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곡은 아마도 바로 앞에 작곡된 20번 d-minor와 더불어서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들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작품일 것이다. 그리고 비단 이 2곡 외에도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들은- 보는 관점에 따라서 숫자는 달라지겠지만 최소한 20번 이후로는- 이 장르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들인 동시에 모차르트가 남긴 유산 중에서도 핵심적인 것들에 속하기 때문에 전문가가 아닌 그냥 음악애호가들도 '연구'할 가치가 있는 음악이기도 하다.)
Mozart piano concerto No. 21 in C Major, K. 467
I. (Allegro maestoso)
II. Andante
III. Allegro vivace assai
(i) 작품개요
우선은 이 곡에도 모차르트를 연주할 때의 일반적인 난점이 그대로 적용된다. 곧, 모차르트 특유의 곱고 예쁜, 문자 그대로 '영롱한' 멜로디가 구절마다 노래해야 할 게 너무 많은데 정작 하나도 빼먹지 않고 전부 다 노래하려고 하면 음악의 흐름이 끊어지고 기세가 약해지기 쉽다는 것- 하지만 (하이든이나 베토벤, 즉 소위 'Viennese Classic'이 다 그렇지만) 모차르트만큼 기세가 좋은 음악도 없어서 모차르트를 너무 ‘sissy’하게 치면 문자 그대로 음악이 시시해진다. 음악의 기세를 잘 타면서 그 흐름 안에서 자유롭게 노래가 되어야 이상적이지만 극히 드문, 듣기 힘든 경우- 대부분 연주자들이 둘다를 놓치지 않고 절충을 해보기 위해서 애쓰는 것을 아래 (ii) 녹음들에서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곡에는 이런 일반적인 난점 외에도 특유의 까다로운, 어쩌면 구성상의 결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대목을 갖고 있는데,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각 악장의 개요를 살펴보자면:
- 1악장은 소나타형식.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진 않지만 일단 기억해두어야 할 점은 제2주제의 앞에 단조의 멜로디가 하나 더 나오고- 그리고 마치 이 멜로디가 발전부에 무슨 일이, 어떤 사건이 일어날지를 예고해주는 듯한 느낌으로- 발전부는 어둡고 치열한 느낌으로 진행한다는 것.
그리고 템포 지시에 '()'가 달린 것에 관해서 말하자면, 보통은 음반 표지나 내지에 이 1악장에 상기 'Allegro maestoso'가 붙어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1악장에 괄호 치고 'Allegro'만 적혀 있는데, 이유는 모차르트가 작성한 본인의 작품목록에는 지시어가 있지만 이 작품의 자필원고에는 아무 지시어가 없기 때문. 행진곡풍의 제1주제는 분명히 장엄한 데가 있고 제시부에서 주제만 제시하는 게 아니라 이미 주제를 충분히 전개하고 있으면서 1악장이 작품 전체 길이의 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충분히 장대한 사실도 있기 때문에 'maestoso'를 모차르트의 의도라고 채택해도 큰 무리는 없어 보인다. 단지 우리의 견해로는 이 'maestoso' 때문에 이 음악을 너무 장중하게만 연주하면 안된다는 것- 이 악장의 음악 자체는 신기하게도 위엄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경쾌한 느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 경쾌함이 희생되면 곤란하고 또 곡의 전체적인 구조의 관점에서도 균형이 깨질 수 있는데, 후자에 관해서는 아래에서 다시 다룰 것이다.
- 2악장은 3부형식. 여기서 주의할 것은 처음에 나오는 오케스트라가 그냥 서주가 아니고 이 악장의 주제들을 제시하고 있는 첫째 부분에 포함되기 때문에 흘려 들으면 안된다는 것.
음악은 뭐라고 한마디로 비유하긴 어려운, 고요하게 사랑스러우면서 슬프면서 아름다운 선율인데 악보의 지시어 그대로 간결한 안단테로 처리하는 것도 가능하고 충분히 여유를 갖고 아다지오로 노래하는 것도 가능하다. 베토벤과는 달리 모차르트의 경우에는 적어도 3악장의 협주곡 틀 안에서는 템포 지시는 큰 의미는 없다. 어떻게 보면 여전히 'fast-slow-fast', 즉, ‘빠른’ 악장과 ‘느린’ 악장만 존재하는 음악- 빠른 악장을 얼마나 빨리, 느린 악장을 얼마나 느리게 할 것인지가 연주자의 재량에 달려있을 뿐 아니라 빠른 악장과 느린 악장 사이의 비율도 마찬가지인 것. 이를테면 23번 A major(K. 488)의 2악장은 아다지오로 표시되어 있지만 간결한 안단테 버전도 충분히 아름답고 이것을 안단테로 처리하기 위해서 1/3악장의 빠르기를 굳이 당겨야할 필요도 잘 없다.
- 3악장은 약간 복잡하지만 론도형식이고, 첫 주제를 잘 기억해서 들으면 된다. 해석의 여지가 가장 좁다고 할 수도 있는 악장. 1악장보다 '드라이브drive'를 강조하는 선택도 가능하지만 여전히 노래할 것은 많다.
이제 앞에서 언급한 전체적인 구조 혹은 구성에 관한 문제를 다뤄보자면 먼저 우리의 전제는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은 일단 20번 이후 23번까지는 빠른 1/3악장들과 느린 2악장 사이에 정서적으로 대조를 시키는, 감정의 대조를 의도하는 곡들이라는 것. 한데 20/22/23번의 경우에는 가운데 2악장이 아예 반대 조성으로- 즉 단조인 20번의 경우에는 장조로, 장조인 22/23번은 단조로- 시작되기 때문에 처음부터 분위기의 차이가 명료하지만, 이 21번은 2악장도 장조로 시작한다. 어쩌면 모차르트는 상기했듯이 1악장에서 제2주제라고도 볼 수 있는 단조의 멜로디와 함께 발전부를 단조 느낌으로 처리했기 때문에 2악장을 다시 단조로 시작하는 것은 좀 재미가 적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혹은 20번과는 다른 방식으로 대조를 줘보겠다는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문제는 1악장처럼 장조로 시작해서 중간부에 단조 느낌이, 선율이 들어오는 방식이 똑같아서 성격의 대비가 모호해졌다는 것.
그렇다면 무엇으로 대조를 주어야 하느냐는 문제가 생기는데 1/3악장의 활기, 당당함, 떠들썩함에 대해서 현이 약음기를 끼고 시작하는 이 2악장은 고요함과 내성적인 성격을 부각시키는 것 외에는 우리로서는 달리 생각해낼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래서 위에서 1악장의 'maestoso'는 장중함만 너무 부각시켜서는 안된다고 이야기했던 것이고, 2악장도 어쩌면 템포를 충분히 아다지오로 선택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2악장에서 확실히 한숨을 골라주지 못하면 3악장은 상대적으로 성격적으로도 단순하고 길이도 짧은 론도기 때문에 여기서 모든 스토리가 해결되기엔 짐이 너무 무거워서 깔끔한 마무리라기보다는 앞에 쌓인 음악에 비해서 '약한' 마무리로 볼 수 있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려하고 장대한 1악장에, 분위기 있는, 느낌 있는 2악장에, 3악장의 날렵한 마무리까지 있을 건 다 있는데, 곧 '재미'의 요소는 다 갖고 있는데 처음 들을 때는 괜찮지만 자꾸 듣다 보면 뭔가 개운치가 않은 느낌이 남는 곡인데 혹은 어쩌면 이런 전체적인 구성상의 약점을 그냥 이 곡의 일부로 인정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모차르트는 이어지는 22,23번에선 상기했던 것처럼 20번에 적용했던 간단한 공식으로 돌아갔다가 24번에 가면 해법을 찾아내는데, 이번엔 대신 '재미'가 적다!
(참고로 그 '해법'이란 20번처럼 1/2/3악장이 차례로 단조-장조-단조로 시작하지만, 전악장에 걸쳐서 장조와 단조의 선율들을 적절히 섞어 써서 감정적인 대비를 유지하면서도 균형을 맞춰가는 것-24번은 모차르트의 소위 '희귀한 minor' 작품이지만, 이런 의미에서 이미 그냥 비극이 아니고 (비유적인 의미에서) '희비극'이다.)
(ii) 녹음들
1. Geza Anda/Camerata Academcia des Salzburger Mozarteums- 1962
기세보다는 서정성 위주의 모차르트. 3악장도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기보다는 경쾌함이기 때문에 해석의 일관성은 있다. 접근법상 역시 비교우위는 2악장에 있는데, 피아노가 새 주제를 연주하기 시작하는 중간부의 감정표현이 괜찮다.
2. Alfred Brendel/Academy of St. Martin in the Fields(Neville Marriner)- 1981
1악장은 'maestoso'를 확실하게 무시한 그냥 알레그로 해석, 여기 소개된 녹음들 중에서는 가장 빠르다. 2악장도 철저하게 안단테 느낌으로 투명하고 간결하게 노래한다. 라두 루푸(Radu Lupu)의 카덴차를 선택한 것도 아담하고 아기자기한 스타일이 브렌델의 해석방향에 잘 맞는다는 것. 다만 2/3악장에서 음악적으로 표현되는 것이 좀 적다. 어쨌든 성공적이건 아니건, 취향에 맞건 안 맞건, 늘 아이디어가 있다는 게 브렌델의 장점.
3. Murray Perahia/English Chamber Orchestra- 1976
페라이어가 아직 만으로 20대일 때의 녹음. 이번에 내한해서 어떤 달라진 해석을 들려줄지 '대조군'으로 한번 들어보면 재미있을 것이다. 상기 브렌델 녹음보다 피아노는 잘 치고 있지만- 이를테면 3악장 빠른 악구에서 고른 터치가 돋보이게 모범적으로 들린다- 음표가, 음악이 충분히 살아있진 않다.
4. Robert Casadesus/Cleveland Orchestra(George Szell)- 1961
처음에 피아노가 들어올 때는 조금 약하게 들리지만, 곧 익숙해질수록 자연스러운 생기와 부드러움을 같이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악장에서 셀이 약간 감상적으로, 낭만적으로 오케스트를 끌고 가는 게 흠인데- 대신 1/3악장에서 셀/클리블랜드 콤비는 여기 소개된 녹음들 중에서는 가장 듣기 좋은 소리를 들려주는 것도 사실이다- 피아노는 선을 길게 유지하면서 절제된 노래로 잘 끌고 간다.(참고로 우리가 갖고 있는 이 'columbia masters' 재발매시리즈는 레파토리/아티스트 보는 안목은 있어서 절판되어서 못 구하던 것들을 염가로 많이 제공해주고 있는 대신에, CD- transfer가 안 좋아서 음질은 불만족스러운 경우가 많다는 것이 흠.)
5. Annie Fischer/Philharmonia Orchestra(Wolfgang Sawallish)- 1958
1악장의 빠른 악구는 피셔 특유의 불꽃이 살아있다. 어떤 의미에선 꽤 베토벤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내내 그것으로 일관하고 있진 않고, 노래해야 할 때는 부드럽게 노래하기 때문에 3개 악장 중에서는 가장 잘된 편. 2/3악장은 상대적으로 음악이 단조롭다. 자발리슈/필하모니아의 반주는 조금 거칠게 들린다. 각종 협주곡 녹음들이 너무 많았을까?
6. Clifford Curzon/Bavarian Radio Symphony Orchestra(Rafael Kubelik)- 1976 live
전체적으로 확신을 갖고 가장 자유롭게 노래하는 모차르트. 2악장에선 여기 소개된 녹음들 중에서 가장 긴 확실한 ‘아다지오’ 버전을 들어볼 수 있다. Audite 레이블로 나온 이 음원은 커즌이 이 곡의 스튜디오 녹음이 없기 때문에 귀한 것도 있지만, 스튜디오에선 무척 절제가 많은 완벽주의자인 커즌이 ‘자기검열’했을 장식음이나 감정표현들이 다 남아있는 것이 최대 장점. 다시 들어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기억으로는 커즌의 다른 모차르트 협주곡들의 스튜디오 녹음들은 이만큼 좋았던 것 같지 않다.
7. Dinu Lipatti/Lucerne Festival Orchestra(Herbert von Karjan)- 1950 live
보통 평론가들이 ‘음악에 봉사(service)하는 테크닉’ 어쩌구 할 때는 대개 쓸데없는 진부한 문구지만, 리파티의 경우는 좀 다르다- 한 등급 위의 테크닉이 어떻게 노래하는데 더 도움을 줄 수 있는가 보여주는 좋은 예. 음질이 꽤 열악하지만 개성은 어느 정도 들을 수 있다. 2악장은 계속 열정을 안고, 품고 가는 낭만적인 연주지만 개성적이면서 말이 된다. 직선적으로 들어오는 3악장은 호오가 갈릴 수 있는데 리듬이 너무 정확하다, 기계적이다, 라고 볼 수도 있지만 대신 라이브의 열기까진 더해진 음악의 흐름, 기세가 좋아서 최고라고 볼 수도 있다.
8. Rudolf Serkin/Columbia Symphony Orchestra(Alexander Schneider)-1955
제르킨은 모차르트는 베토벤과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1악장에서 충분히 그것을 노래해보려고 하고 있지만 모차르트에선 베토벤만큼- 그리고 커즌만큼- 자유롭지 않다. 베토벤에선 최고의 리듬감각을 갖고 있는 제르킨인데 여기선- 이를테면 마치 쇼팽에서 뭔가 안 어울리는 루바토를 쓴 것처럼- 뭔가 조금씩 '게기는' 것 같은 느낌이 남는다. 본인의 카덴차에선 이런 느낌이 전연 들지 않다는 것이 우리가 이것은 모차르트의 음악에선 뭔가 좀더 불편하다는 의미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유. 다만 굉장히 미소한 차이이고, 2악장은 음악의 흐름이 좋다- 피아노로 이만큼 노래할 줄 아는 피아니스트는 몇명 되지 않는다.
9. Rudlof Serkin/London Symphon Orchestra(Claudio Abbado)- 1983
제르킨이 나이 80에 재녹음한 버전. 터치가 약해진 것도 있고, 1/3악장은 여기 소개된 녹음들 중에서 가장 느리다. 1/3악장은 큰 개념이 달라졌다기보다는 더 편안하게 노래하는 연주. 2악장은 1955년보다는 느려졌지만 템포를 1/3악장보다 덜 늘렸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간결한 안단테 스타일로 바뀌어서 담백하게 노래한다. 그리고 우리의 취향으로는 카덴차는 이 제르킨의 것을 가장 선호하는 편.
선호도: Curzon>=Serkin(1955=1983)=Casadesus=Lipatti>=Brendel>Fischer>=Anda>=Perahia
해석의 삼각형: Anda/Brendel/Curz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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