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ethoven Symphony No. 3 in E-flat Major, Op. 55 “Eroica”

 

I. Allegro con brio

II. Marcia Funèbre(Adagio assai)

III. Scherzo- Allegro vivace

IV. Finale(Allegro Molto- Poco Andante- Presto)

 

 

I. 작품개요

   이것은 서양 고전음악에서 처음 표현되는 감정이다. 1악장을 듣고 있다 보면 어느 순간- 혹은 어쩌면 범상치 않은 첫 코드부터- 이미 하이든/모차르트의 교향곡들과는 다른, 전연 새로운 세계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i) 우선 하이든/모차르트에 비해서 한발짝 더 나아간 거칠고 격한 감정표현은 초연 당시의 청중들의 귀에는 승화되지 않은, '야한' 것으로 들렸지 모른다. 베토벤은 말하자면 서양 고전음악에서 ‘노출’의 수위를 높인 사람인 셈인데 물론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베토벤이 남긴 작품들은 다 그냥 '시'지만 지금 보면 하나도 야하지 않은 소설이나 영화가 처음엔 외설로 취급받을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이치-  브람스처럼 중용을 추구하는 작곡가도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무척 격렬한 음악을 남긴 것은 베토벤의 영향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다음으로 (ii) 이것은 자의식을 가진 인간이 (외부)세계에 대해서 가하는 일격 혹은 외침이다. 위 (i)만이라면 이것은 단지 표현방식의 차이, 혹은 표현 강도의 차이가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처음 표현되는 '감정'이 아니라, 처음 '표현'되는 감정이 아니냐는 말이다(이것, 곧 '표현의 혁신'이라는 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리고 하이든/모차르트까지 내려오기도 전에 이미 요한 세바스찬 바하에 인간의 모든 감정이 다 들어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음악의 차이라면 '나'를 날카롭게- 아마도 거의 신경증적으로- 타인과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와 분리해서 인식하기 시작한 인간이 느끼고 표현하는 감정이라는 것이다. 즉, 이전과는 '다른 종류의' 인간이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그 감정 역시 다른, 새로운 종류가 되는 것. 이런 의미에서 서양 고전음악에서 ‘근대modern’의 기점은 베토벤이고  나중에 후기 피아노소나타와 현악사중주로 가면 베토벤은 이 날카로운 자의식을 가진 근대인의 내면적인 고뇌를, 내밀한 정신세계와 그 감정을 표현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iii) 베토벤이 여기에 써놓은 것은 장대한 서사시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음유시인의 버전에서 반주가 빠진 것이 아니라 반대로 거기서 언어가 제거된, 음악만으로 된 서사시라고 말할 수 있다. 어떤 인물들도 사건들도 없지만 이 음악엔 '플롯plot'이 있고 기-승-전-결의 극적 구조가, 긴장이 쌓였다가 해소되는 카타르시스가 있다. 때문에 나폴레옹에서부터 시작해서 이 음악에 온갖 표제를 갖다붙이려는 유혹이 끝이 없는 반면, 또 어떤 언어나 음악외적인 의미부여와 무관한 가장 우월한 예술장르로서 '절대음악'의 대표로도 역시 베토벤의 교향곡들이 내세워진다- 둘다 삼천포로 빠진 것은 매한가지지만 베토벤과 베토벤의 교향곡들의 위대함을 입증하는 증거로 보는 데는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것은 오라토리오도 오페라도 아니지만 질과 양, 양면에서 모두 그만큼의 내용(substance)를 담고 있고 우리는 별다른 과장 없이 이 에로이카가 교향곡을 서양고전음악의 핵심적인 장르의 하나로 온전히 확립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음악의 내용상 이보다 위대한- 그리고 어려운- 교향곡은 9번 '합창' 뿐이다. 5번이나 7번을 잘하는 지휘자들은 꽤 많다. 하지만 이 3번에 오면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고, 9번에 이르면 제대로 지휘하는 지휘자는 아마도 단 두명뿐이다.

 

   이제는 '표현의 혁신', 혹은 형식의 혁신 부분이다. 모든 탁월한 예술이 그렇듯이 이 작품도 새로운 형식만도 감정의 과잉만도 아닌, 새로운 감정과 그것을 표현하기 위한, 그에 걸맞는 새로운 형식의 결합이다. 매 악장마다 베토벤은 새로운 무엇인가를 도입하거나 전통을 혁신한다: 

- 1악장; 소나타 형식이지만- 적어도 당시의 기준으로는- 가능한 한 최대로 확장된 것이다. 이 확장을 위해서 베토벤은 첼로가 바로 연주하는 제1주제와 목관이 연주하는 제2주제 사이에 ‘부주제’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2개 더 넣고 있다. 이 부주제들을 잘 챙겨 들어야 하는 이유는 발전부에서 이것들이 남김없이 다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제시부가 구조가 단순하지 않아서 한번에 듣고 파악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반복을 지키는 것도 일리가 있는데, 워낙 유명한 곡이고 길이 부담이 있기 때문에 생략하는 것도 유력하다. 발전부는 제1주제와 상기 부주제들이 서로 엮이고 변형되면서 클라이맥스를 2번 만들어 낸다. 그래서 이 발전부는 크게 3도막으로 나뉘는 셈인데 3번째 도막이 시작될 때 새로운 주제라고 볼 수 있는 멜로디가 나타나는 것이 특색 중 하나. 발전부 초반에 새 주제를 도입해서 전개시키는 것은 모차르트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지만 이 주제는 재현부에서 제시부의 코데타(codetta)까지를 다 반복한 다음에 코다의 끝부분이 시작될 때 다시 등장해서 마치 발전부와 재현부의 마지막 큰 도막을 표시하는 '사인'처럼 기능하기 때문에 흥미롭다.

해석의 큰 갈래는 최소한 4가지다. 베토벤의 알레그로(Allegro)를 얼마나 빨리 해야하는지는 늘 논쟁거리이고 여기서도 예외가 아닌데 문제의 템포와 지배적인 정서를 기준으로 하면 각각  'fast & furious(빠르고 격렬한)'/빠르고 경묘한/유장하고 시적인(혹은 서정적인)/유장하고 강력한 스타일로 나눠볼 수 있다. 우리의 견해는 베토벤의 원래 의도는 상당히 빠른 쪽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인데 상대적으로 빠르게- 연주시간 14분 안팎 이내로- 연주했을 때 오케스트라의 서로 다른 파트들이 '메기고 받는' , 서로 주고받고 이어지는 부분이 울림이 더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테면 푸르트벵글러나 클렘페러가 이 곡을 빠르게 연주하지 않는 이유는 상대적으로 느리게 연주했을 때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이 음악의 또다른 부분들, 성격들을 강조하고 싶기 때문이다. 곧, 좋은 울림은 다소 희생하더라도 '반대급부'가 있다는 것- 아니면 설마 이 대음악가들이 (당신의 귀에도 들리는) 이걸 들을 귀가 없어서 천천히 한다고 생각하는지? 결국 베토벤에는 이 네 가지가 다 있다고 볼 수 있다- 위대한 예술작품이란 늘 풍부한 해석의 여지를 갖고 있는 복합적인 것이어서 한 명의 지휘자가 한 번의 연주나 녹음으로 모든 걸 동시에 다 들려주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 2악장; 역시 거대한 길이나 감정의 진폭에서 그때까지의 교향곡의 역사에서 전례가 없는 음악. 형식면에서는 3부형식을 축으로 한 변형이라고 보기엔 변형의 정도가 너무 크게 벗어난다. 론도 소나타에 더 가깝다고 볼 여지도 있는데 역시 잘 들어맞지 않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우리의 견해로는 그냥 음악의 내용 혹은 극적 구성에 따라서 아래와 같이 5단 구성으로 파악하는 게 음악을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된다.(아래 대략 연주 소요시간을 참고삼아 적어놓았지만 굳이 시간을 들여다보지 않더라도 감정의 변화에 따라서 도막을 쪼갤 줄 알아야 음악의 내용을 알고 듣는 사람이다.)

① 제시부; 주제를 제시하고 '대주제' 혹은 제2주제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나온 다음엔, 현과 관이 서로 주제를 바꿔서 반복한다. 즉 대략 a-b-a-b 형태. 이 음악을 어떻게 볼 건지 개념을 잡아야 하는- 혹은 제시해주어야 하는- 부분이다. 연주에 따라서 대략 첫 4분10초~ 5분10초 사이 정도를 차지한다.

② 중간부; 이어지는 'c' 부분. 제시부와 감정적으로 대조가 되는 동시에 다음 발전부 이전에 잠시 긴장을 풀어주는 부분이라고 볼 수도 있다. 우리의 취향으로는 일정한 느낌을 주는 템포로 연주하든지, 아니면 템포를 바꿀 거라면 여기서 가속을 해야지 템포를 늦춰서 느리게 노래해서 대조를 주려고 하면 효과적이지 않다. 말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비유하자면 여기는 느리게 출발한 장례행렬이 빨라지는 지점이라면 몰라도 느려지는 지점은 아니라는 것. 길이는 대략 제시부의 절반 안팎이라고 보면 된다. 즉 연주에 따라서 2분~ 2분 40초 정도, 앞에서부터 누적으로는 6분20~7분40초 정도까지다.

③ 발전부; 첫 주제 a가 돌아와서 푸가 스타일(fugato)로 전개가 된다. 무엇보다 여기서 확실히 클라이맥스를 만들어주어야 하는 음악- 그래야만 마치 꽃봉우리가 오므라들듯이 결말이 잦아들면서 끝까지 음악의 흐름이 좋다. 반대로 제대로 만들지 못하면 이하 전환부/종결부가 단순한 반복, 재현에 가까워지면서 중복의 느낌, 음악이 지루해지기 쉽다. 소요시간은 대략 2분20초~3분 사이 정도.

④ 전환부; 푸가토가 일단락된 다음, 제1주제가 짧게 돌아온 후에 저음현/혼/트럼펫의 강타가 차례로 이어지면서 시작하는 부분. 약 1분 10~40초 안팎, 길어도 2분이 채 안되는 이 부분은 앞뒤로 잘라 넣을 수도 있지만- 그럼 4단 구성이 된다- 굳이 나눈 이유는 여기를 기점으로 마치 ‘전반전’과 ‘후반전’을 나누듯이 곡의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지휘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카라얀이 대표적이다.

⑤ 종결부; 이미 위 전환부에서 'a' 주제가 다시 제시가 되어 있고 여기는 제1바이올린이 제시부의 ‘b’ 주제를 연주하는 부분부터 시작해서 끝까지다. 이 부분 안에 앞서의 중간부 'c'에 대칭되는 아주 짧은 'd'가 들어 있어서 사실 더 잘게 나눌 수도 있지만, 구조가 선명해지는 것보다 번다함이 더 큰 느낌.

해석의 갈래는 나누기조차 어렵다.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장송행진곡이니까 '슬픈' '행진곡'인 셈인데, 우선 얼마나 슬퍼야 하는가? 거의 '오페라틱'한, 감상적인 버전에서부터 담백하고 간결한 스타일까지, 그 사이에 넓은 스펙트럼과 '그라데이션gradation'이 있다. 너무 감상적이면 싸구려라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만약 7번 2악장이 'marcia funèbre'가 아니라 그냥 ‘allegretto’라면 역으로 이건 그냥 ‘adagio assai’가 아니고 'marcia funèbre'라고 주장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행진곡 느낌은? 현이 연주하는 운명교향곡의 그것과 유사한 리듬을 강력하게 부각시키는 스타일부터 거의 '안단테 칸타빌레andante cantabile' 수준까지 다 있다. 위에서 교향곡 5/7번과는 달리 3번에 오면 잘하는 지휘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고 이야기했는데 대개 주로 이 2악장 때문이다- 문자 그대로 '눈물나게' 어려운 음악. 

 

- 3악장; 교향곡 1번의 3악장이 '미뉴엣의 탈을 쓴' 스케르초이고 2번 3악장이 ‘아직 미뉴엣의 흔적이 남은’ 스케르초라면 이것은 진정한 베토벤식 스케르초, 그 완성을 본 작품. 대신 구조는 중간에 트리오(Trio)가 끼워진 스케르초, 가장 간단하다. 해석의 갈래는 스케르초의 강렬한 리듬과 드라이브를 강조하느냐 유장하게 노래하느냐인데 결국 1악장을 어떻게 연주했느냐에 따라서 궤를 같이 하게 된다. 다른 이슈라면 트리오의 처치이고, 곧 확실하게 템포를 늦춰서 대조를 주느냐 아니면 그대로 달리느냐의 문제. 우리의 견해로는 적어도 1악장부터 템포를 빠르게 설정한 경우는 후자가 낫다는 것이다. 1악장과 마찬가지로 템포를 늦추지 않을 때 관악기간, 또 관과 현이 이어지는 '메기고 받는' 울림이 더 좋고 반면에 소리가 늘어지면서 얻는 '반대급부'가 이 경우는 확실하게 큰 것으로 들리지 않는다. 

 

- 4악장; 자유로운 변주곡 형식. 서주와 그것을 이용한 코다가 달려 있고 그 사이에 베토벤이 1/2악장의 스케일과 맞먹는, 그에 합당한 피날레를 위해서 의식적으로 심혈을 기울인 장대한 변주가 진행된다. 주제가 2개라고 볼 수도 있고 처음 제시되는 것은 주제의 베이스 부분만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역시 주요 멜로디를 기억한 다음엔 음악의 내용에 따라서 대략 3,4 도막 정도로 나눠서 파악하는 것이 낫다. 3도막으로 나눈다면 첫째 부분은 주제와 변주가 2개 정도 진행이 되고 나서 3번째에서 오보에/클라리넷으로 2번째 주제까지 온전히 다 제시가 되는 부분이고, 둘째 부분은 2악장과 마찬가지로 푸가토(fugato)를 사용해서 전개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서 'Poco andante' 전까지, 마지막 셋째 부분은 'Poco andante'로 음악이 느려지는 부분에서 상기 코다 앞까지가 된다.

음악의 성격에 관해서 우선 언급할 만한 점이라면 베토벤을 고전-낭만주의에 걸친, 양쪽의 특성을 다 갖고 있는 작곡가로 볼 때 이 악장은- 물론 베토벤의 색깔이 더해져 있지만- 전곡에서 가장 고전적인 음악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하이든/모차르트에 강점이 있는 지휘자가 이 악장도 (음악의 성격을 올바로 파악하기만 한다면) 잘할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는 구석이 있고, 반대로 베토벤을 로맨틱한 관점에서만 본다면 이 악장에서 고전을 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이 음악을 까다롭게 만드는 또 하나의 포인트.

해석의 갈래는 1악장과 궤를 같이 해서 전체적인 밸런스를 맞춰야 한다는 점은 3악장과 마찬가지이고 역시 3번째 부분, 'Poco andante' 이하를 어떻게 보느냐가 가장 결정적인 갈림길이 된다. 이 부분을 2악장의 장송행진곡과 상응하는 이 4악장의 핵심, 클라이맥스로 파악하는 경우는 거의 '아다지에토adagietto' 수준으로 템포를 늦춰서 충분히 노래해주게 된다. 반대로 이 3번째 부분에 차별화된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는다면 액면 그대로 'Poco andante'로, 살짝만 느려지는 느낌으로 보다 가벼운 터치를 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후자 쪽을 선호하는 편인데 이 4악장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one-climax'를 갖는다기보다는 'multi-climax'를 갖는, 자연스럽게 등고선을 그려나가야 하는 음악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가 2악장과 상응한다면 아마도  문자 그대로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짧은 회상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II. 녹음들

(약 40여종의 음반을 대부분 최소한 2번 이상 들었지만 이 곡은 아직도 적어도 '한 다스'는 더 포함시켜야 최소한의 리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녹음의 숫자가 워낙 방대하다. 하지만 우리의 호주머니 사정도 있고 폐반 혹은 절판된 것들은 언제 다시 구할 수 있을지 기약이 없는 것도 있기 때문에 우선 이대로 하고 나중에 기회가 닿는대로 보충을 해야할 듯 하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원래 별점 같은 것을 별로 신봉하지 않는 주의지만 이 곡의 녹음들은 어떻게든 정리를 하려면 '급수' 정도는 나누는 것이 어느 정도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S'는 우리에게 가장 충격을 많이 준 동시에 반복해서 들을수록 더 좋았던, 여운이 있는 녹음들이고 'A'는 역시 좋지만 S에 넣기에 뭔가 2% 부족한 느낌이, 요소들이 있는 것들. 마지막으로 'B'는 선호도를 기준으로 했다기보다는 뭔가 언급할 점이 있는 녹음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To be continued...

Posted by 이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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