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겐 사중주단의 내한공연(9.27일) 프로그램 리뷰시리즈 마지막 3번째.)

 

 

 

Beethoven Große Fuge Op.133 in B flat Major

 

Overtura. Allegro, Meno mosso e moderato- Fuga.

 

 

(i) 작품개요

 

원래 op.130의 마지막 6악장이었다가 베토벤이 드물게 출판사의 권고를 따라서 ‘들어낸’ 경우. 해서 원래 위치 6악장으로 복원해서 연주하는 경우도 있고, 라이브나 음반이나 Op.130하고 짝짓는 경우가 많다.

 

 

 

- 통상적인 작품해설서들은 대개 ①서주(Overtura)- ②제1푸가- ③제2푸가- ④제3푸가- ⑤제2푸가 재현부- ⑥제3푸가 재현부- ⑦코다(Coda), 이렇게 총 7부로 나누고 있다. 하지만 악보를 펼쳐놓고 듣는 경우가 아니라- 악보를 같이 보는 것은 언제나 권장할만한 좋은 습관이고 요즘은 인터넷에서 쉽게 공짜로 쓸만한 것을 구할 수 있기도 하지만, 역시 보통의 음악애호가들에게는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귀로만 따라간다면, 제3푸가의 후반부에서 제1푸가의 대주제를 사용하고 있고, 또 coda에서도 짧게 제1-2-3푸가의 주요주제들이 간략히 반복이 되기 때문에 1-2-3/1-2-3, 이렇게 계속 반복이 된다고 생각하고 단서로 삼는 것이 좋다.

- 러시아가 낳은 20c 바이올린의 대가 중 한사람인 나탄 밀슈타인은 회고록에서 베토벤은 가끔씩 현악기(string intruments)가 어떻게 소리나는지 잘 모르고 쓴 것 같은 대목이 있다고 한 적이 있다. (사실 이전의 대가들인 바하나 모차르트는 건반악기와 현악기에 모두 능숙한 사람들이었지만 베토벤은 피아니스트-작곡가다.) 바로 여기의 제1푸가 allegro가 한 예가 되겠는데 웬만한 일류 사중주단들이, 마치 재능도 기량도 없이 대학에 가겠다는 일념만으로 지판을 득득 긁어대는 한국의 고3 수험생들이 내는, 그런 종류의 소리를 내는 것같이 들린다면 명백히 작곡가가 악기의 특성을 잘 모르고 쓴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런 거친 소리sonority가 후기 베토벤의 '특성' 중 하나라는 이론도 있는 모양이지만 그것은 음악학자들의 탁상공론이고, 후기의 베토벤이 거친 소리를 선호했다기보다는, 나중에 피아노에서 실제로 일어난 것처럼, 악기가 개량이 되고 테크닉이 발전해서 더 뛰어난 연주자가 나오면 거칠고 강렬한 느낌은 살리면서도 들을만한 소리가 나지 않을까,라고 막연히 생각했을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라는 게 우리의 관점이다.

해서 아마도 앞으로도 이 음악을 '고운 소리'로 듣기는 힘들겠지만, 음악의 내용면에 있어서는 이것은 이론의 여지없이 베토벤이 쓴 16개 현악사중주들의 17개 피날레 중에서 가장 거대하고 또 위대한 한 악장이다. 우리는 아마도 베토벤의 비전을 완벽에 가깝게 구현하고 있는 연주를 아직까지 들어본 적이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ii) 녹음들

1. Amadeus Quartet- 1957

제1푸가는 내용상 말하자면 ‘독일병정’의 조직력과 열정이 필요한 음악이어서 이 사중주단의, 그리고 리더 브라이닌(Norbert Brainin)의 기질에 잘 맞는다. 제2푸가 meno mosso e moderato는 물론 예상할 수 있는대로 낭만주의적으로 노래하지만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추진력으로 몰아가는, 독립된 작품이라기보다는 한 악장으로서의 단일성에 더 초점을 맞춘 해석이다.

2. Quartetto Italiano- 1969

이 제1푸가가 아마데우스와 기질상 잘 맞는다면, 이탈리아와는 상극이다. 템포를 가장 느리게 잡고 서정적으로 접근하려고 하지만 각 악기들이 선명하게 들리기보다는 오히려 ‘지방방송’이 난립하면서 더 산만하기만 한 형국이다. 이후에도 음악의 흐름이 잘 회복이 되지 않는다. 자기들만의 개성은 분명하게 지키고 있지만 음악의 내용이나 스케일이 버거운 듯한 느낌을 준다.

3. Budapest String Quartet- 1961

후반부, 제④부의 후반부에서부터 제⑤부에 걸쳐서 빚어내는 절정climax가 압권. 마치 피안의 세계, 저 너머에 한 다리를 걸치고 있는 것 같은 황홀감ecstasy를 준다. 그것을 들을 수 없다면, 이 녹음은 알반베르크와 보로딘의 아래에 놓일 것이다. 솔직히 고백하건데 이 녹음을 듣기 전까지는 우리는 이 작품의 내적인 '드라마'를 이해하지 못했다. 길이가 15~6분에- 물론 베토벤 이후는 별 내용없이 터무니없이 긴 음악들이 많이 나왔지만, 베토벤 시대까지의 기준으로는 이 정도면 충분히 긴 편에 속한다- 이르는 곡이 자체의 ‘드라마’를 갖고 있지 않다면, 듣기가 지루해진다. 해서 이 곡을 한 '곡'이 아니라 빠져나간 한 '악장'으로 본다면 빠르게 질주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독립된 생명력이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베토벤도 별도로 출판을 하기보다는 나중에 다른 작품에 마지막 악장으로 끼워넣는 ‘재활용’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4. Alban Berg Quartett- 1989

제 2푸가 Meno mosso e moderato는 가장 빠르다. 그냥 알레그로와 모데라토 사이라면 이 정도 차이로 충분하지만 우리의 견해로는, 베토벤이 굳이 모데라토 앞에 ‘meno mosso(보다 느리게 혹은 덜 활기있게)’를 첨가한 이유가 느리게 하진 말되 분명하게 한번 숨은 고르는 지점을 만들어달라는 의도라고 본다면, 조금 지나치다. 또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수준의 긴장을 유지하기 때문에 후반부에서도 절정을 만들어낼 여유가 별로 없다. 다만 독립된 드라마를 가진 작품이 아니라 하나의 악장으로서의 단일성에 초점을 맞춘다면, 이렇게 하나의 주템포와 추진력으로 몰아가는 것이 일관성은 더 있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다.

5. Borodin Quartet- 2003~2006?

여기 다섯 녹음들중에서는 그래도 가장 듣기 좋은 소리를 들려주는 연주. 어쩌면 이 곡은 베토벤의 모든 현악사중주 작품들 중에서 보로딘의 테크닉을 가장 필요로 하는 작품인지도 모르겠다.  제2푸가 Meno mosso e moderato는 가장 느리고 이어지는 제3푸가의 Allegro는 표나게 빠르게 당기면서 내적인 '드라마'를 만들려는 접근을 취하고 있지만, 클라이맥스가 부다페스트에 못 미친다.

 

 

 

선호도: Budapest>Alban berg=Borodin>=Amadeus>Italia

해석의 삼각형: Budapest/Alban Berg/Italia


 

 

Posted by 이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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