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현악사중주 9번, Op. 59 "Razumovsky" No.3 in C Major
음반 비교감상 2013. 9. 25. 21:08 |
(이번주 금요일(9.27)로 다가온 하겐 사중주단(Hagen Quartet)의 내한 공연의 프로그램 리뷰시리즈 . 원래는 추석연휴 전이나 최소한 연휴 중에는 올려야 할 글인데 조금 너무 늦어졌다. '너무'라고 하는 뜻 중에 하나는 라이브공연에 앞서서 음반을 아주 정밀하게 듣고 가면 도리어 감상에 방해가 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공연 2~3일 전에는 그냥 음반을 걸어놓고 다른 일을 하거나 딴 생각을 하는 정도로 가볍게 귀를 익혀두는 정도가 바람직하다. 다만 베토벤 현악사중주는 직업음악가가 아니더라도 '연구'할 가치가 있는 음악이기 때문에 공연 후에 이 음악들이 궁금해진 사람들에게는 다소라도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녹음들은 아마데우스(Amadeus) 사중주단 것만 간만에 따끈따근한 신보, 새 음원(Audite 레이블에서 최근 발매한 1952~1967년, 서베를린방송국(RIAS) 녹음)이고, 나머지는 모두 각각 부다페스트(Budapest)는 컬럼비아-소니, 알반베르크(Alban Berg)는 EMI, 이탈리아(Italia)는 필립스 레이블의 오랜 간판 녹음들이다. 가장 최근에 녹음된 보로딘(Borodin)도 우리가 봤을 때는 샨도스Chandos 레이블의 자랑거리 중 하나다.)
Beethoven string quartet Op.59 “Razumovsky” No.3 in C Major
I. Introduzione. Andante con moto- Allegro vivace
II. Andante con moto quasi allegretto
III. Menuetto. Grazioso
IV. Allegro molto
(i) 작품개요
I/IV 악장, 소위 바깥악장(outer movements)들은 내용적으로 짜임이 타이트해서, 극단적인- 이를테면 템포를 매우 느리게 혹은 매우 빠르게 한다거나 하는- 선택을 하지 않으면 해석의 큰 흐름상에 있어서는 많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해석의 관건은 안쪽(inner movements), II/III악장인데, 베토벤의 표준norm이라고 할 수 있는 아다지오 또는 안단테 칸타빌레(Adagio or Andante cantabile)/스케르초(scherzo)- 순서는 바뀔 수도 있다-의 구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견해로는 베토벤이 본인이 '개발'한 스케르초를 버리고 다시 메뉴에토로 돌아간 이유는 2악장의 템포지시어 'Andante'가 이미 그리 느린 빠르기가 아닌데 거기에 '활기차게, 거의 알레그레토처럼'이라는 단서까지 붙어있어서, 여기에 스케르초까지 넣는다면 곡 전체가 빠른 악장 일색이 되어서 균형이 잘 맞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토벤은 체질상 메뉴에토가 잘 안 맞는 스타일, 이 메뉴엣도 가운데 트리오Trio(ABA의 'B'에 해당하는) 부분은 음악의 내용은 거의 반쯤은 스케르초 느낌이다. 그래서 '우아하게Grazioso'까지 덧붙인 것은 일종의 노파심, 너무 스케르초처럼 달리지는 말고 전체적인 악장간의 밸런스를 맞춰달라는 뜻으로 보고 싶다.
베토벤의 템포 지시는 당시 베토벤이 틀린 메트로놈을 사용했다는 설이 득세할 만큼 논란거리지만 언제나 ① (해당 악장의) 음악의 내용과 ② (악장간의) 전체적인 균형을 고려해서 논리적으로 풀어가야 한다. 즉, 때로는 알레그로를 안단테처럼 할 수도 있지만, 언제나 베토벤의 지시를 출발점으로 해석을 해야지 '메트로놈이 틀렸다'는 식으로 무시하고 넘어가는 것은 베토벤이 음악을 만드는 방식을 완전히 오해하고 있는 것이라는 말이다. 템포지시가 엉터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개 ①만 생각하고 ②를, 곧 악장 간, 그리고 작품 전체의 균형을 놓친, 보지 못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놀랍게도 당장 이 곡의 2악장을 'quasi allegretto'로 제대로 연주하는 녹음을 듣는 것도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베토벤은 범인이 아니어서 그의 머리속에 울렸던 소리를 악보만 보고 상상해내기 어렵다는 것과, 상상한다고 해도 대개 대곡이란 언제나 풍부한 해석의 여지를 갖고 있다는 것이 첫째 이유일 것이고, 대개 유명연주가들이란 '개성' 하나 만큼은 다 베토벤 수준이라는 것이 두번째 이유일 것이다.
(ii) 녹음들
1. Amadeus Quartet- 1952
'아마데우스Amadeus'라는 이름에서 주는 인상과는 다르게, 이 사중주단은 본질적으로 낭만주의적이다. 구성원 4명 중에 3명이 빈(Wien) 출신이거나 빈에서 교육을 받았지만, 이들의 빈 기질은 하이든-모차르트-베토벤의 빈이 아니라 연대가 더 가까운 후기 낭만주의 시대의 그것이기 때문이다.
이 녹음도 작열하는 열기는 있지만 우리의 취향으로는 약간 낭만주의적으로 치우친 해석이다. 2악장의 안단테는 전형적으로 베토벤의 템포 지시를 무시하는, 느리게 노래하는 버전. 구성원들간의 밸런스는 여기 다섯 악단들 중에서는,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 편인데 테크닉적인 면에서 저음쪽이, 특히 첼로의 기민함이 떨어지는 것이 가끔 귀에 거슬릴 수도 있다.
2. Quartetto Italiano- 1974?해석 자체는 위의 아마데우스 것과 큰 그림에서 대동소이하지만 보다 절제되고 안정감이 있는 연주를 들려준다. 이 악단도 다른 연주자들이 제1 바이올린만큼 노래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면에서는 음악적으로 밸런스의 열세가 있는 편이다.
3. Budapest String Quartet- 1960
이 사중주단의 힘은 균형balance이다. 보통 열세를 많이 보이는 비올라와 첼로에서, 보리스 크로이트(Boris Kroyt)와 미샤 슈나이더(Mischa Schneider)가 너무나도 잘 받쳐준다(이를테면 2악장 시작부분에서 미샤 슈나이더의 차원이 다른 피치카토를 들어보라). 또 훌륭한 제2바이올린, 알렉산더 슈나이더(Alexander Schneider)는 다른 어떤 사중주단의 리더를 해도 이상하지 않다. 무엇보다 테크닉적인 대등함 뿐 아니라 제1바이올린이 노래하고 나면 바로 받아서 다른 어떤 멤버, 악기든지 똑같은 'feel'로 노래할 수 있는 음악적인 균형은 후학들이 넘어서기는 힘든 수준의 것이다.
1악장은 위의 두 사중주단보다 성긴 앙상블로 들린다. 하지만 2악장 안단테는 최고다. 'quasi allegretto' 표시에 충실하지만, 가장 아름답다. 베토벤을 어떻게 노래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템포를 늦추지 않아도 선율의 선line으로, 흐름flow으로 노래하는 법을 알고 있는 음악가들이다. 다만 우리의 취향으로는 3악장 메뉴엣이 약간 아쉬운 것이, 위에도 적었지만 중간의 트리오trio 부분은 보다 스케르초 느낌을 낼 수 있는데, 'grazioso' 지시를 3악장 전체에 다 적용한 것이다. 다만 우아하긴 정말로 우아하다.
4. Alban Berg Quartett- 1989이 사중주단도 부다페스트만큼 좋은 균형인데, 그러나 음악적으로는 4명의 멤버가 각각 좀 하향평준화해서 맞춰진 균형이라는 느낌이 없지 않다. 대신 앙상블의 정교함으로 말하자면 부다페스트보다 확실히 한 수- 사실은 그 이상?- 위다.
2악장은 가장 빠른, 올바른 템포는 잡고 있지만 노래하는 방식은 낭만적이다. 이것은 부연설명이 좀 필요한데, 낭만주의는 음표 하나하나가 독립된 개체이고, 그래서 하나하나를 다 빼먹지 않고 노래해야 할 수 있지만, 고전주의는 음표 자체는 독립된 개체가 아니고 선 혹은 흐름을 이루는 원소이다. 그래서 고전주의로 분류할 수 있는 음악에서는 개별 음표들에서 '끌지' 않고, 빠른 템포로 진행하면서도 '노래'가 나오는 것이 가능한 것인데, 이 연주는 그냥 템포만 빠르게 진행하다가 특정 대목에서 개별 음표들을 강조하면서 낭만주의적으로 노래하는 방식을 취한다는 것이다(그리고 이렇게 노래하는 대목에선 같은 빈 출신의 선배 아마데우스와 유사한 'feel'로 들리는 대목이 있는 것이 흥미롭다). 다만 베토벤은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사이에 걸쳐 있다는 것이, 단순히 시기적으로만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방식의 해석도 다 가능하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이렇게 연주해도 들을 만은 하다. 3악장은 'grazioso'에 크게 의미를 부여하진 않지만, 절충이 잘 되었다기보다는 좀 개념이 어중간하게 잡힌 것 같이 들린다. 그러나 라이브의 열기까지 더해진 4악장은 여기 녹음들 중에서 최고다. 아마 스튜디오에서 최상의 조건으로 몇 번이든 다시 녹음하자고 했어도 이들은 거부하지 않았을까?
5. Borodin Quartet- 2003~2006?이 사중주단이 혹 테크닉적으로 '밸런스'에 문제가 있는 듯이 들리는 경우가 있다면, 그건 다른 멤버들이 문제가 있는 게 아니고 제1바이올린 루벤 아하로니안(Ruben Aharonian)이 너무 잘하기 때문이다. 과문한 탓에 100% 확실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테크닉만 놓고 말하면 현악사중단의 리더로 이보다 잘하는 경우가 또 있었는가 싶다. 그 외엔 녹음에 참여한 유일한 창단멤버였던 첼리스트 발렌틴 베를렌스키(Valentin Berlinsky)의 고령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이들의 라이브를 단 한번이라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베를렌스키의 후임이 아무리 첼로를 잘하더라도 단연 베를렌스키가 있는 쪽을 택할 것이다.
연주는 1악장에서 가장 서정적인 접근을 취하고 있는 것이 귀에 들어오지만 '절제'라기보다는 '자제'로 들린다는 것은, 연주자들이 이 음악에 대한 확신conviction의 강도가 떨어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결국 4악장에선 통상적인 템포와 공격으로 돌아오는데, 차라리 1,4악장의 템포를 더 확실히 늦추는 극단적인 선택을 해서 서정성lyricism을 극대화했으면 개성있는 해석으로 남았을 것이다.
선호도: Budapest=Alban berg>Italia>=Amadeus>=Borodin
해석의 삼각형: Budapest(Classic)/Amadeus(Romantic)/Borodin(Modern&lyrical)
'음반 비교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브루크너 교향곡 7번 E Major (0) | 2013.11.09 |
---|---|
베토벤 현악사중주 "대푸가(Große Fuge)" B flat Major (1) | 2013.09.27 |
베토벤 현악사중주 13번 B flat Major, Op. 130 (0) | 2013.09.26 |
베르디 "라트라비아타(La Traviata)" (0) | 2013.07.11 |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2번 B-flat Major (0) | 2013.03.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