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현악사중주 13번 B flat Major, Op. 130
음반 비교감상 2013. 9. 26. 23:57 |
(하겐 사중주단의 내한공연(9.27일) 프로그램 리뷰시리즈 2번째.)
Beethoven string quartet Op.130 in B flat Major
I. Adagio ma non troppo- Allegro
II. Presto
III. Andante con moto ma non troppo. Poco scherzando
IV. Alla danza tedesca. Allegro assai
V. Cavatina. Adagio molto espressivo
VI. Finale. Allegro
(i) 작품개요
이 베토벤 말년의 대작은 확실히 복합적이고 담고 있는 것이 많아서 개성이 강한 4명의 멤버라면 디테일은 고사하고 해석의 큰 방향만 놓고도 날밤 새워가면서 싸울 수 있는- 어쩌면 그러고도 싸움이 끝나지 않을- 작품이다.
- 우선 ‘6악장’이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 Beethoven이 사용하는 모든 안쪽 악장(inner movements)들이 종류별로 다 들어가 있다고 보면 된다. 즉 2악장은 빠른 스케르초, 3악장은 스케르초 느낌의 안단테, 4악장은 통상적인 미뉴엣(menuetto)에 해당하는데, 다만 독일 춤곡, 렌틀러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danza tedesca(German dance)'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고, 5악장은 느린 아다지오다. 2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는데, 첫째는 (상대적인 속도에 있어서) 느리고-빠른, slow-fast의 패턴을 3번 반복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느린 5악장 앞에 상대적으로 빠른 악장을 3개 붙였다는, 즉 I/(II~IV)/V/VI의 변형된 4악장 형식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2~4악장의 주제들은 유심히 들어보면 음형에서 유사성이 없지 않기 때문에 마치 베토벤이 2악장으로 뭘 넣을까 이것저것 생각해보다가 '엑기스'만 모아서 3개 악장을 다 넣은 것 같이도 보인다.
- 구체적으로 한 악장씩 들여다보면, Op. 59의 3번과는 다르게, 바깥 악장(outer movement)들도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해석의 큰 줄기가 분명한 것은 가장 짧고 빠른 2악장- 사실 여기도 아래서 볼 수 있듯이 약간의 샛길이 없는 건 아니다- 하나 뿐이다. 바깥을 에워싸고 있는 1/6악장은 전형적인 베토벤식 '기운'이, 적토마처럼 달리는 그것이 분명히 있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또 아주 서정적이고 관조적이다. 동시에 이런 특질quality를 가질 수 있는 음악을 작곡할 수 있다는 건 베토벤의 위대함이지만 템포를 늦게 잡고 노래할 것이냐, 음악의 기세를 살려서 돌진할 것이냐, 절충을 선택한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 이것을 결정해야 하는 고민거리를 안긴다.
그리고 1악장에는 추가적으로 보다 일반적으로 ‘반복’의 문제, 곧 고전주의 소나타형식에서 제시부의 반복을 생략할 것이냐 원래대로 연주해야할 것이냐의 문제가 있다. 이 악장이 아주 좋은 사례가 되기 때문에 여기서 좀 길게 돌아가보면:
-- 먼저 왜 '제시부의 반복'이라는 것이 있는지, 그 존재이유에서부터 논리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가장 좋다. 반복이 있는 이유 혹은 배경은 ① 축음기가 나오기 전까지 우리는 ‘live’가 아니면 음악을 들을 기회가 없었다는 것 ② 대부분의 곡들이- 물론 베토벤도- 이때는 다 ‘신곡’이었다는 것. 그런데 ③고전주의 양식에 충실한 음악들은 주제theme들을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 요컨대, 오늘날의 청중들처럼 수백년 묵은 레퍼토리를 집에서 음반을 통해서 익숙히 듣고, 알고 가는 시대가 아니니 처음 듣는 음악의 주제들을 파악하는 것은 상당히 훈련된 귀가 아니면 어렵다. 그럼 작곡가가 작곡발표회에서 자기 음악을 잘 이해시키는 방법은? 그냥 제시부를 한번 더 들려주는 것이다!-- 해서 단순히 이런 목적의 제시부 반복일 경우에는 현대의 연주회나 녹음에서는 생략을 해도 무방하다. ‘시대악기(period instrument)’니, ‘원전authentic’이니 하는 단어가 붙은 접근법의 경우에는 무조건 반복도 있는대로 다하는 경향이 많은데 꼭 그럴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청중이 프로그램에 얼마나 익숙하냐에 따라서 이를테면 본고장 유럽에서 하는 공연에서는 생략하고, 서양고전음악이 보다 생소한 지역에서 공연할 때는 반복을 해주는 식이 합리적일 수 있는 것이다.
-- 다만 고전주의 작품이라고 할지라도 ‘반복’이 들어가면서 이것을 감안해서 발전부나 재현부가 내용적으로, 구조적으로 영향을 받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는 웬만하면 생략을 하지 않는 것이 옳다. 바로 이 1악장이 그러한데 베토벤의 기준으론- 베토벤은 주제의 변용에 가장 뛰어난 작곡가고 소나타 형식의 발전부는 단연 1인자다- 이 발전부는 상당히 단순하고 짧고, 대신에 제시부의 종결부분(codetta)과 재현부의 앞부분은 마치 전개부인 것처럼 제1주제가 변형이 되어 있다. 이 같은 처치는 명백히 상당히 긴 분량(평균적으로 4분10초~20초)의 제시부 반복을 감안해서 작곡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 반복을 생략해도 곡의 구조가 말이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음악의 흐름이 조금 싱거워지고 원래의 피날레 ‘대푸가’와 비교했을 때 밸런스도 덜 맞는다.
- 다시 돌아와서 3/4악장은 다시 한번 템포 지시와 관련해서 난점을 제기한다. 3악장은 Andante con motto 뒤에 ‘ma non troppo(너무 지나치지 않게)’라는 단서가 붙어있고, 4악장은 allegro에 ‘assai(매우, 충분히)’까지 붙어있는데, 정작 들어보면 3악장은 짧은 서주부 다음에는 poco(약간)이 아니라 quasi(반쯤)-scherzo, 리듬이나 스피드를 좀 살리는 게 어울리고, 4악장은 우아해서 너무 빠르게 연주하면 노래가 다 나오기 힘들다(문자그대로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이걸 allegro assai로 노래까지 다 하라면 첼리스트 에마뉴엘 포이어만(Emanuel Feurmann)이나 피아니스트 빌헬름 박하우스(Wilhelm Backhaus) 정도는 와야지, 다른 사람들은 거의 어렵다고 보면 된다). 우리가 생각하는 답은, 다시 한번 '악장 간의 밸런스'라는 관점에서 보자는 것이다. 실제 라이브 연주에서는 아주 빠른 악장을 연주하고 나면 바로 이어지는 느린 악장이 당겨져서 빨라지거나, 반대로 느린 악장 후에 이어지는 빠른 악장은 앞쪽의 분위기에 딸려서 충분히 치고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때문에 3악장의 ‘ma non troppo’는 음악의 성격상 자제를 요구한다기보다는 2악장 Presto의 여운에 말려서 너무 심하게 달리면 안된다는 뜻이고, 그래도 오해할까봐 이중으로 덧붙인 'Poco scherzando'도 같은 의미일 것이다. 반대로 4악장의 allegro assai는 뒤에 이어지는 5악장 cavatina, adagio와의 밸런스를 고려해서 너무 느리게 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 5악장에는 함정이 2가지 있는데, 첫째는 베토벤이 잘 쓰지 않는, 카바티나Cavatina라는 이름이다. 이것은 원래 복잡하거나 화려하지 않은, 단순하고 짧은 아리아를 뜻한다. 둘째는 바로 이 악장이 특히 유명한 이유로서, 베토벤 자신이 편지글에서 자신의 모든 현악사중주곡들 중에서 이것을, 생각만 해도 눈물이 글썽해지는, 최고의 악장으로 언급했다는 것. 둘을 더하면? 답은 대부분 녹음들이 아주 절제하면서, '소박하고 단순한 진리'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음악의 내용을 들어보면 이것은 절제하기보다는 아주 감정을 드러내는, 어쩌면 거의 신파조로 해야 할지도 모르는 음악이다. 'molto espressivo'가 괜히 붙은 것이 아니고, 카바티나라는 이름은 그저 복잡한 3부형식이 아닌, 그냥 'Adagio cantabile'라는 의미 정도로 이해하면 충분하다. 그래도 악성 베토벤이 꼽은 최고의 악장이 그럴 리가 없다고, 우리의 견해에 동의할 수 없다는 사람들을 위해서 한가지 질문을 남기는 것으로 이 긴 작품소개를 마치고자 한다:
베토벤은 과연 일일연속극을 보고 눈물을 흘릴 사람이었을까, 안 흘릴 사람이었을까?
(ii) 녹음들
1. Amadeus Quartet- 1962
첫 악장은 내면이나 서정성을 부각하기보다는 단순명료하게 공격해들어간다. 이 사중주단은 이런 선택지가 주어질 경우는 대개 기세와 공격쪽을 택한다. 5악장 cavatina는 여기 녹음들 중에서는 가장 템포가 느리지만 '절제'에 충실한 버전이다. 5악장의 분위기에 약간 말린 듯, 1~4악장까지의 접근보다 약간 템포가 늘어진 6악장을 들을 수 있다.
2. Quartetto Italiano- 19691악장은 기본적인 접근은 아마데우스와 비슷하지만 더 절도있고 절제되어 있다. 무엇보다 이 이태리 현string들은 비엔나 출신들보다 본질적으로 서정적인 톤을 갖고 있기 때문에, 보다 편안하게 액센트accent를 넣을 수 있어 음악도 더 자연스럽게 들린다. 2악장에서 첫부분과 트리오Trio 사이에 약간의 차별성을 시도하는데, 첫부분이 좀 늘어지는 것처럼 들린다. 사실 음악의 내용상은 처음엔 빠르면서도 약간 여유있게 잡고 트리오를 최대한 휘몰아치는, 약간의 차별화가 있으면 이상적이긴 할 것 같다. 그렇다고 이것이 첫부분을 늘어지게 해도 된다는 뜻이 전연 아니기 때문에, 시도는 좋았지만 실패. 3/4악장도 여기 녹음들 중에서는 가장 템포지시에 충실한 편인데 당연히 음악의 내용과 잘 맞지 않기 때문에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다. 특히 3악장은 단순한 Andante cantabile가 되었고 ‘Poco scherzando’는 흔적도 찾을 수 없다. 대신에 2~4악장의 비효과ineffectiveness를 모두 만회하는 5악장, 가장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내면서 노래하는 cavatina를 들을 수 있다. 우리의 취향으로는 이 곡은 더 느리게, 그리고 더 낭만파 스타일로 감정을 겉으로 토로했으면 좋겠지만 어쨌든 여기 다섯 녹음들 중에서는 가장 좋은 연주다.
3. Budapest String Quartet- 19615악장 Cavatina는 빠른 템포와 가벼운 터치touch로 처리한다. 템포를 올려잡는 것은 절제understatement의 효과를 노린 것이고 실제로도 가져오긴 하지만, 위에서도 누차 이야기했듯이 여기서는 적합하게 들리지 않고 음악의 내용에 비해서 너무 고급스럽게 접근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앞선 4악장 danza는 음악의 내용을 감안하더라도 조금 너무 느리고 너무 우아한데 상기한대로 5악장을 가볍게 처리하기 때문에 밸런스나 일관성은 통한다. 마지막 6악장의 약동하는 활기, 생기는 단연 최고다.
4. Alban Berg Quartett- 1989
부드럽고, 또 부드럽다. 1악장에서는 모든 스포르찬도sforzando조차, 각지지 않게 모를 둥굴린 소리를 들려준다. 이 사중주단은 이 곡 전체를 베토벤의 가장 내밀하고 서정적인 감정의 토로, 고백으로 보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말은 되지만, 이 곡의 원래 피날레가 Große Fuge였음을 감안한다면 베토벤의 의도가 이렇게 일방적이었을까는 우리는 다소 의문이다. 다만 바꿔진 피날레와 조응해서 하나의 논리적으로 일관된 해석을 제시했다는 의미는 있다. 4악장은 가장 ‘allegro assai’다운 스피드인데 그닥 효과적이지는 않고, 5악장은 역시나 부다페스트와 마찬가지로 가볍고 빠르게 처리한다.
5. Borodin Quartet- 2003~2006?
2악장 Presto는 단연 최고다. 이탈리아가 시도했다가 실패한 완급조절에 성공하고 있기 때문인데, ‘아주 빠르고 강렬한 질주’와 ‘아주 아주 빠르고 강렬한,...’을 구분한다는, 이론상만 가능할 것 같은 이 조절을 완벽하게 해낼 수 있는 테크닉은 우리가 아는 한은 보로딘밖엔 없다. 바깥악장들에서는 서정성을 앞세우는 선택을 하되, 1악장에선 알반베르크보다는 보다 액센트를 주는, 통상적인 타협이 좀 있고 반면 6악장은 가장 느리고 노래하는 연주다.
선호도: Budapest=Italia>Amadeus=Alban berg=Borodin
해석의 삼각형: Amadeus(straightforward)/Alban berg(introspective lyricism)/Italia(inner movements, 2~5악장에서 확실히 여타 악단들과 차별화된 접근법을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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