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프로그램: Brahms Piano Sonata No. 3/Chopin 4 Scherzi

   브람스는 1번인 줄 알고 갔더니 3번- 약 한달 전에 프로그램 변경 공지를 한 모양인데 우리가 챙기지를 못했고 여하튼 3번이 1번보다는 음악이 좀 나으니까 손해(?)본 기분은 아니었다. 3번은 음반 들어본 지도 오래되어서 가물가물한데 치는 사람은 열심히 쳐도 칭찬받기 쉽지 않은, 그런 과에 속하는 음악이라고 생각이 된다. 사실 브람스보다는 지머만이 쇼팽을 어떻게 치나 궁금했고, 라이브를 한번 들어보고 싶어선 간 공연. 아래는 후반부 이하 쇼팽 곡들 리뷰이다.

 

(ii) 리뷰

- Scherzo No.1 in b minor; 리듬에 탄력적인 느낌을 주려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뭉갰다’고 할 정도까진 아니나- 음표 하나하나가 다 고르고 명확하게 울리긴 살짝 빠른 템포로 들렸다. 이게 노래만 잘 되면 아무리나 상관이 없겠는데 별로 감정이 실려서 전달되는 느낌이 아니었다. 이 1번은 쇼팽이 우리 나이로 스물두살 때(1831년) 착수한 작품- 그때까진 독주곡은 3분 짜리 소품을 주로 썼고 10분이 넘는 보다 스케일이 있는 작품은 많지 않은 시기다. 그러다 보니 악곡의 구조 자체가 기계적인 '공식'에 따른 반복으로- A(ababa)B(cdcdc)A(aba), 이런 식이다- 짜여 있어서 분량에 비해서 음악적인 내용이 좀 적다. 해석의 차별화를 하기 어려운 대신 스케르초 4곡 중에서 기분 내기는 제일 쉽다고 볼 수도 있는데 이날 지머만이- 공연 내내 수시로 손수건으로 코를 훔쳤다- 컨디션이 썩 좋아보이지 않긴 했다.

 

- Scherzo No.2 in b-flat minor; 처음엔 1번처럼 그냥 툭툭 건드리고 지나가는 느낌이었는데 트리오가(스케르초의 표준형태인 A-B-A에서, 주부에 대조를 주는 'B')가 2번째 반복이 들어갔을 때부터 음악이 흐름을 타기 시작해서 끝까지 연주가 좋았다. 음악적으로 이날 가장 잘 되었던 프로그램. 곡 자체(1836~7년작)도 더 완숙해진 쇼팽. 내용상으로도 그렇고 구조적으로도- 이제 기계적인 '공식'에서 벗어나서- 트리오에서 주부의 주제를 다시 끌어다 쓰기 때문에 스케르초와 소나타 형식이 융합된 특이한 형태인데, 악상을 따라서 자연스럽게 변형/진행이 되기 때문에 전혀 어색하지 않다.

 

- Scherzo No.3 in c sharp minor; 지머만은 이 곡에서 스케르초 본연의 성격에 보다 충실한, 역동적인 리듬을 강조하는 연주를 들려줬는데- 탁구로 치면 강력한 드라이브의 연속이었다- 이것도 가능은 하지만 사실 어떤 의미에선 이 3번(1839~40년작)이 2번보다 더 시적인 음악이다(가장 극단적으로(?) 시적인 해석이 궁금하다면 페를르뮈테르(Vlado Perlemuter)의 녹음을 들어보시기를- 원래 젊을 때부터 테크닉으로 한몫 보는 스타일은 아니었던 이 피아니스트가 우리 나이로 87세였을 때(1990년) 굳이 이 곡을 선택해서 녹음한 데는 이유가 있다는 걸 들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구조적으로도 ABAB'-coda로, 마지막에 주부 A의 반복이 없는 형태라 가장 간결하다. 무엇보다 서로 상반된 해석이 가능하다, 복합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은 장르를 불문하고 위대한 예술 작품들의 공통점 중 하나기 때문에 이 곡은 한단계 더 발전한 쇼팽을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Scherzo No.4 in E Major; 이것은 약간의 '곡목해설'이 먼저 필요한 경우인데, 1842~3년작인 이 마지막 4번은 쇼팽이 다시 '새로운 스케르초'에 도전하고 있는 작품이다. 보시다시피 위 3곡과는 달리 유일하게 장조로 되어 있고, 정서도 상당히 달라서 스케르초 주부에 격정적인 '드라마'가 없다. 그래서 템포를 살짝 늦추고 액센트도 부드럽게 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서정적인 한 편이 된다. 이때의 문제는 그럼 이게 무슨 스케르초냐, '이름만/무늬만' 스케르초 아니냐는 반문이 일어난다는 것. 지머만은 그보다는 마치 가벼운 춤곡처럼, 경쾌한 리듬으로 밝은 색깔의 연주를 했는데 이 스케르초의 주부를 해석하는 데는 유력한, 좋은 아이디어인 것으로 보인다.

   다만, 남은 문제라면 트리오 이하로는 여전히 별 해결책이 없다는 것- 주부를 경쾌하게든, 서정적으로든, 혹은 어떻게 '융합'을 하든 간에 이 트리오에서 딱히 확실하게 '대조'시킬 만한 게 없다. 처음에 살짝 단조 느낌으로 들어오긴 하지만 '많이 슬픈' 건 아니고 회고조에 가까운데, 이미 말했다시피 앞에 무슨 회고할 만한 '드라마'가 없다. 그래서 굳이 대비 같은 것을 생각 안 하고 이 파트에 충실하게 진행을 시키다보면 다시 A가 돌아왔을 때 '중복'의 느낌이 강하게 들게 된다. 음악이 지루하지 않게끔 A에서 B로, B에서 다시 A로 돌아오는 연결부들이나 코다의 아이디어는 좋고, 원숙한 쇼팽의 솜씨지만 결국은 이 음악의 내용이 스케르초라는 옷에 잘 맞지 않는다는 느낌은 남는다.

 

- 앵콜은 마주르카(Mazurka)만 3곡(Op. 24-1/2/4번)이었다- 마주르카는 ‘내가 쇼팽 스페셜리스트임’을 과시하는 곡목 중 하나. 또, 음악에 국적이 반드시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고 쇼팽의 음악은 충분히 보편성을 갖고 있지만, 마주르카는 확실히 폴란드에서 나고 자란 피아니스트들에게 ‘어드밴티지’는 있는 음악인지 모른다. 지머만의 마주르카는 자신감이 있고 자유로웠다- 루바토가 다 우리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어쨌든 이 정도 수준의 마주르카 세 곡이라면 대접을 잘 받고 나온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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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팽의 스케르초 전4곡을 간단히 정리해보자면, 1번은 ‘초기작’, 2번은 우리가 ‘쇼팽’하면 보통 떠올리는 그 세계에 가장 가까운 작품, 3번은 보다 성숙/완숙한 쇼팽, 4번은 (실패한) '실험작'이라는 것. 다만 마지막 4번 경우는 나중에 어떤 천재가 나타나서 우리 같은 사람도 알아들을 수 있게 이 곡을 풀어서 들려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사실 정말로 ‘나쁜 작곡가’가 있다기보다는 그 사람의 음악을 제대로 이해하고 근사하게 들려주는 연주가를 못 만났을 뿐이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는 것이, '대가'가 유명작곡가의 대곡만 잘해서 대가가 아니라 이름이 떨어지는 작곡가들의 소품을 해도 '이 음악이 이렇게 근사했었나?'하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대가인 것이기에 그렇다. 아니면 다른 예라면 바로 앞에서 우리가 '미숙한'의 뉘앙스를 깔고 '초기작'이라고 한 스케르초 1번은 다른 사람도 아닌 호르쇼프스키(Mieczyslaw Horszowski)같은 위대한 음악가의 레퍼토리에 최만년까지- 1940년 바티칸 라디오 녹음부터, 거의 백살이 다 된 1990년 위그모어홀 실황까지 남아있다- 들어 있었다. 그 어떤 ‘권위자’가 음악의 가치를 맘대로 재단할 수 있겠는가?

Posted by 이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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