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C 'Real' vs. 'Alternative' History

   우선 앞절 마지막에 제시한 이재의 '산수도山水圖(http://www.emuseum.jp/detail/100827/001/001?x=-172&y=-73&s=1)'를 전체적으로 다시 한번 흝어보기 바란다(우리가 위에 걸어놓은 링크로 들어가면 역시 어둡긴 하지만 페이지 안에서 확대 기능은 제공이 되니까 세부를 대략 볼 수 있다). 보면 이 그림 주봉만 수수께끼 같이 그린 것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생긴 게 다 좀 이상하지 않은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바둑 용어로는 '법수 없는' 자유로움이다- 한가지 예를 들자면 화면 좌하단에 다리를 건너가는 일행이 되겠다. 이미 다리를 건넌 사람은 주인이고 아직 다리를 건너는 중인 사람은 머리를 땋은 모양이라든지, 정황상 금(琴)을 들고 주인을 따르는 시동인 것 같은데 복식만으로 봐서는 신분이 선뜻 구분이 안 간다- 이 경우에 최악의 가능성은 이 그림이 근현대의 위작이라서 화가가 신분제가 '체화'가 안된 사람이라 주인과 시동은 응당 옷만 봐도 차이가 나야 한다는 것을 깜빡했다는 것이다(이것은 위 '산장고일' 우하단이나, 아니면 대진의 것으로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다고 많이 언급이 되는 상해박물관 소장 '춘산적취도(戴進 春山積翠圖)'를 검색해서 인물 부분의 처리를 한번 비교해 보면 차이가 보일 것이다). 그게 아니라도 제대로 된 스승 밑에서 체계적으로 화법을- 즉, 이 경우엔 수묵화로 간략하게 의복을 그릴 때 어떻게 구분을 해야 한다는 걸- 배운 적이 없는 화가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법수 없어 보이는' 대목이 이것 말고도 여기저기 더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한데, 우선 상기 문제의 시동이 들고 있는 금을 마치 '몰골법'으로 그린 듯 보이는 것도 통상적인 수법은 아니다. 지금은 악기를 천에 싸들고 길을 가는 와중이고 그렇다면 '이건 포장이고 속에는 금이 들었다'는 걸 표시하는 방법은 당연히 악기 모양대로 윤곽선을 명확하게 그리고 나서 채색을 하든 먹을 채우든 하는 것이다- 그냥 지팡이나 나무 몽둥이하고는 경우가 좀 다른 것이다. 그리고 주봉 왼쪽에 붙인 누각은 형태가 간략화된 정도가 아니라 아예 본인이 '새로운 건축양식'을 창조한 수준이다.
   물론 예술에 뭘 이렇게 그려서 안된다는 '법칙' 같은 것은 없고, '자유분방한 붓질'과 '법수 없는 그림'을 구분하는 것도 문제의 본질상 늘 명확하진 않다. 이를테면 서양 현대미술에서 이따끔씩 대가의 '걸작'인지, '초딩'이 그린 그림인지 분간이 안 가는 것과 조금 비슷한 경우일 것이다- 이럴 때는 유명 미술평론가라 할지라도 '이름표'를 보는 게 아마도 거의 유일하게 확실한 방법이다. 그래서 '이름표'에 관해서 말하자면, 이 그림 외에도 상기한 북경고궁 소장 '산촌도(山村圖)'/대북고궁의 '이상수서(圯上授書)'/상해박물관의 '금고승리도(琴高乘鯉圖)'에 모두 작가의 서명이 남아있는데 유독 이 그림만 나홀로 필체가 다르다(1편 첫머리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우리가 한자로 작품명을 병기한 경우는 화가+작품명으로 구글에서 검색을 하면 이미지파일을 볼 수 있는 작품들이니 궁금하다면 직접 확인해볼 수 있을 것이다; 힌트를 주자면, 이재는 글자마다 세로획을 하나 굵고 길게 내려 뽑는 습관이 있다.).
   그림체에 관해서 논하자면 '금고승리도'는 '산촌도'와 산의 모양은 다르지만 세부묘사는 같은 수법에 속하기 때문에 이재의 것일 수 있다는 게 납득이 가고, '이상수서'는- 장량과 황석공의 고사를 그린- 인물화 소품인데 위 '산장고일'이나 '금고승리도'와 인물화 필치에 공통점이 있다. 즉 세 작품- 내지는 '산장고일'까지 네 작품- 모두 한 사람 손에서 나왔거나 원본을 본 적이 있는 솜씨로 보아 무리가 없다.

   이 그림만 유독 관서 필체와 그림체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이재의 현존하는 다른 작품들이 진적임을 뒷받침해주기 어렵고, 그림 자체의 내용을 봐도 화법에 법수가 없다- 여기서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위 '산수도'는 껏해야 그냥 이재의 전칭작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그림이 이재의 '대표작'처럼 취급받았던 이유는 무엇일까?[각주:1] 우리가 추측하기엔 ① 이재가 대진만큼 중요한 화가가 아니기 때문에 관심을 덜 받았다는 것과, ② '선입견'의 무서움, 2가지 이유다. 이 '산수도'는 위 '산장고일'처럼 멀쩡하게 생긴 그림들이 곽희 이름 아래 숨어서- 진짜 곽희가 아닌 줄이야 물론 알았겠지만- 이재 것이라고 주인을 찾기 전부터 알려져 있던 그림이다. 사람들 머릿속에 '이게 이재'라고 먼저 입력이 된 다음에 별다른 관심이나 의심을 안 받았다면...? 만약 우리의 추측이 옳다면, 이것은 이재 입장에서 보면 무슨 '옹고집전'도 아니고, 내 집이라고 왔더니 가짜가 먼저 들어와서 주인 행세를 하고 있더라는 기막힌 이야기다.

   이제 마지막으로 '대조군'이 되는 그림을 하나 보면 왜 우리가 '법수'를 갖고 문제 제기를 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미지출처= 소장처= 동경국립박물관)

 

   위의 것은 15세기 일본의 화가 설주(雪舟; 셋슈)의 ‘사계산수도’ 중 ‘하경’(http://www.emuseum.jp/detail/100310/002/003?x=-190&y=-84&s=1)이다. 위 이재 '산수도'와 비교해보면- 위 링크로 들어가면 마찬가지로 세부를 확대해 볼 수 있다- 그림이 답답해서 매력은 떨어지지만 인물이든 누각이든 화법에 어긋나는 구석은 없다. 설주는 최소한 어릴 때부터 제대로 된 스승 밑에서 '정규교육'은 받은 화가이기 때문이다. 역으로 말하자면 그림이 필력이 더 좋거나 (특히) 현대적인 감각으로 봤을 때 더 매력있는 작품이라고 해서 다 진적이 되지는 않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설주 본인이 이재를 자기가 1467~9년간 견명사의 일원으로 중국에 체류했을 때 영향을 받은 화가로, 말하자면 자기 화풍의 중국쪽 '연원'으로 언급을 하고 있다는 점과- 역시 우리가 걸어놓은 링크를 따라 들어가면 설명이 나오겠지만- 이 그림이 일본에 남아있는 설주 작품들과는 작풍이 많이 달라서 설주가 중국에 체류할 당시 현지 화풍을 따라서 그린 작품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즉, 설주 작품 중에 중국화풍과 가장 유사할 뿐 아니라, 이 '사계산수도' 중에서도 위 이재 '산수도'와 가장 비슷하게 생긴 작품을 우리가 일부러 고른 것이다. 그럼에도 닮은 것은 사실상 화면구성, 즉, 근경의 바위에서 큰 나무, 다시 상단의 주봉으로 이어지는 '중심축'뿐이고 세부 필법에선 거의 영향을 찾아볼 수가 없다.

 

   자, 이제 머리속이 혼란해지는 것이, 대진 것으로 되어 있는 '계당시의도'(의 원본)은 대진이 아니라 이재 것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했고- 우리가 이 논증을 뒷받침하는 증거의 하나로 써먹으려고 했던- '산수도'는 또 이재 것으로 되어 있는데 알고 보면 '법수 없는' 그림이라 아닐 가능성이 더 많다니, 이게 다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란 말인가? 해명할 수 있는 가설을 제시하기 전에 위 이재 '산수도'와 느낌이 비슷한 그림을 아래에 하나 더 첨부할 테니 한번 찬찬히 살펴보기 바란다.

(이미지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보면 세부 필치는 사실 차이점이 더 많다- 공통점이라면 상기했듯이 '풍기는 느낌'이고, 무엇보다 대진과 이재가 물과 기름처럼 섞여 있다는 것이다. 그럼 이 그림의 정체는? 바로 북경고궁 소장인 대진의 '산수도'(戴進 山水圖軸)이다.- 그렇다, 이번엔 다시 대진인 것이다. 이제 패턴이 보이지 않는가? 대진과 이재 화풍을 섞어서 그린 그림들이 이재로도 팔렸다가, 다시 대진으로도 팔렸다... 
   어떻게 제작이 되었는지 설명하는 것은 쉽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대진과 이재는 당대에 각각 산수화 1/2인자로 불렸다. 후배 화가들도 많이 추종했겠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유명화가들은 생전에 가짜가 돌아다니기 시작하는 법이니, '그림 공방'에서도 열심히 가짜를 만들어 팔았을 것이다. 공방에 앉아서 하루는 이재 가짜, 하루는 대진 가짜, 이런 식으로 그리다 보면 화풍의 '융합'은 저절로- 그리고 공방이라는 데가 법수 있게 화법을 가르치는 데가 아니니까 부정확한 버전으로- 일어난다. 처음엔 이곽파 색깔이 짙은 그림은 그 스타일로 더 유명했던 이재로 유통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기했듯이 이재의 평판이 추락하게 되었고, 대진의 명성이 이재보다 더 오래갔기- 자기 계보가 아닌 화가들에게 '정치적인' 공격을 잘하는 명말의 동기창까지도 '절파'는 몰라도 대진 개인에 대해선 함부로 말하지 못했다- 때문에 어느 순간 예전에 이재로 팔던 것들도 이름이 대진으로 바뀌게 되었다. 역시 상기했듯이 '대진의 이곽파'라는 것이 전연 황당무계한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사실에 근거를 둔- 즉, '픽션(fiction)'이 아니라 '팩션(faction)'인- 것이기 때문에 먹힐 수 있었을 것이고, 오늘날에 와선 남은 작품 숫자도 더 많아졌다- 지금 대진의 이름으로 되어 있는 같은 북경고궁 소장의 '설경산수(雪景山水)', 일본 대판시립미술관 소장 '송암소사도(松岩蕭寺圖)'[각주:2]가 모두 우리가 보기엔 같은 계통이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계당시의도'에 주단식 필법이 섞여있다는 것과, 주단이 오파가 북경에 상륙하기 전에 궁정화원으로 현역 1인자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마지막 화가였다는 점이 겹치는 것도 우연의 일치가 아닐 수 있다- 즉, 미적 취향이 바뀌던 와중의 과도기, 이런 스타일의 작품이 다수 제작될 수 있었던 마지막 시기를 가리키는 흔적일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

 

   "파이 이야기(Life of Pi)"는 상복이 많은 작품이다. 원작자 얀 마텔(Yann Martel)에게 2002년 부커상(Man Booker Prize)를, 영화화된 것은 2012년에 이안 감독에게 아카데미 감독상을 안겨줬다. 우리가 보기에 이 작품의 빛나는 아이디어는, 동물원집 둘째 아들 파이가 원인미상의 화물선 침몰 사고로 227일간 표류한 끝에 유일한 생존자로 구조되는 이야기에서 상식적으로는 구명정에 탄 사람들이 맡아야 하는 역할을 얼룩말/하이에나/오랑우탄/벵골호랑이로 치환한 것이다. 이 알레고리(allegroy) 하나로 '소년과 맹수의 교감' 같은 보조플롯들이 깔끔하게 한 우산 아래로 정리가 되고 무엇보다 작품의 주제를 선명하게 부각시켜준다.

   그 주제가 집약된 문장은 사고 원인을 조사하러 온 일본 운수성 관리들에게- 물론 '동물의 왕국' 버전을 믿지 못한다- 파이가 사람들이 등장하는 버전의 2번째 생존기를 들려준 다음에 묻는 바로 이 질문이다: "당신들은 어떤 스토리가 더 좋은가(Which story do you prefer)?"

   어차피 배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침몰했고 살아남은 사람은 하나, 제3자에게 달라지는 결과는 없다. 또 결과와 무관하게 증거가 불충분하기 때문에 이제 와선 어느 이야기가 진실인지 확실하게 입증할 길도 없다. 그렇다면 당신은 소년이 벵골호랑이와 함께 하는 환상적인 동화가 더 좋은가, 아니면 살인과 식인이 난무하는- 예전에 어디서 본 듯한- 뻔한 조난 스토리가 좋은가?

   우리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이다. '원본'은 이미 망실되었고 연관된 '생존자'로 남아있는 그림은 한/중/일에 각 1점씩 3점, 결과가 달라지는 것은 없다. 심지어 우리가 의심하는 대로 위 이재 '산수도' 이하 모든 그림이 다 진짜가 아니라 '그림 공방' 제작품이라고 해도 '계당시의도'의 원본 자체가 이재/대진 같은 이름이 있는 화가의 것이 아니라는 결정적인 증거는 되지 않는다. 유명 작가의 유명 작품이 먼저 존재한 까닭에- 장택단이나 구영의 '청명상하도'가 좋은 예가 되겠다- 공방에서 '대량생산'에 착수하는 경우도 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질문은 이것이다: '진짜 보물'들만 그득한 박물관과 미술관을 원하는가, 아니면 위작과 위조가 널린 '피냄새'- 혹은 돈냄새- 나는 아름답지 못한 역사를 원하는가?

   진실은 때로는 아름답고, 때로는 추하다. 그리고- 우리의 바램과는 달리- 언제나 밝혀지는 것도 아니다. 단지 우리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미술'문학'이 아니라 미술'사'라면 당연히 '진실'을- 그게 어느 쪽이든 간에- 추구해야 한다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이 편에 나온 그림들은 다 중국 것이지만 (우리가 그간 그림 보러 돌아다닌 경험으로는) 한국이라고 사정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우리에게 과연 아름답지 못한 진실도 직면할 수 있는 용기가, 특히 가뜩이나 문화유산 빈국인 이 나라에서 가짜를 또 추가로 산채로 회 뜨듯이 발라내야 한다는 아픔을 감내할 용기가 있는가? 혹 용기를 논하기 이전에 체면이나 평판, 권위, 연줄이나 안면- 가장 나쁜 경우에는 금전적인 이득- 같은 것을 고려한다면 그 순간 이미 학자가 아닌 것이다.

 

   본편의 결론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계당시의도'의 원본이 혹 미술사에 이름이 남은 화가의 작품이라면, 이재의 것이다. 아니라면 이재와 대진을 섞어서 베꼈던 세대의 솜씨일 것이다(대진은 가장 가능성이 낮은 '3순위'다).

   둘째, 어느 쪽이건 이 그림은 이후 '그림 공방'에서 대량생산을 위한 '견본'이 되어서 다양하게 변주되었고, 그 흔적이 한/중/일 삼국의 박물관에 한점씩 남아 있다.

   셋째, '계당시의도'와 '적벽도'는 '같은 조상'을 갖고 있고, 그 그림은 상기 '견본'을 16c 초기에- 당시에 가장 '핫'했던- 주단 필법을 섞어서 재해석한 것이다.

 

 (사실- 다음 편의 '적벽도' 인물화 부분 분석을 보면 알게 되겠지만- '계당시의도'를 그냥 '대진의 만년작' 정도로 취급해도 결론은 같은데, 확실히 하려고 확인을 하다보니 이번 편에선 본의 아니게 남의 나라 회화사를 주로 해명해줬다. 처음부터 '적벽도'에 필요한 정보를 얻으려고 캐다보니 여기까지 이르렀지, 15c 중국회화나 아니면 '설주와 명대회화의 관계', 이런 데 초점을 맞춰서 출발했더라면 뻔한 위작인 '추림독서도'는 물론이고 '계당시의도'를 포함해서 우리가 위에 열거한 대진의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전칭작들은- 중국미술사 학자들을 모아놓고 투표를 한다면 대진의 가장 중요하고 신빙성 있는 그림 10개 안에 못 들어갈 것은 99% 확실하고, 아마 20개 안에도 하나 들어갈까말까 하는 정도일 것이다- 자세히 보지 않고 그냥 지나쳤을 터이니, 중국 그림 공부만 한국회화사 연구에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가끔은 이렇게 반대인 경우도 있는 것이다.)

 

To be concluded...

  1. 이를테면 앞서 우리가 인용했던 카힐은 이 그림이 대진의 영향을 받은 이재의 만년작이라고 생각했다. James Cahill, "Parting at the Shore : Chinese Painting of the Early and Middle Ming Dynasty, 1368-1580"(Weatherhill, 1978) p. 45 참조 [본문으로]
  2. 이 작품은 엄밀히 말해서 이곽파 계통은 아니다; 이미지 파일 구하기가 어려운데 대신 Richard M. Barnhart, Mary Ann Rogers and Richard Stanley-Baker, "Painters of the Great Ming : the Imperial Court and the Zhe School"(Dallas Museum of Art, 1993) p.170 cat. 47 도판을 참조. [본문으로]
Posted by 이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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