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끝난지 한 달이 넘은 전시인데 양이 너무 많아서 어떻게 한번에 다 정리를 할 수가 없다. 우리가 농담삼아 '유물 투척형' 전시라고 부르는 스타일- 꼭 나쁜 의미는 아니고 좋은 물건, 중요한 작품들을 있는 대로 최대한 끌어모는데 주안점을 두었다는 뜻이다. 2015년에 여기서 한 "고대불교조각대전"도 정말 좋은 전시였는데- 우리가 체감하기엔 이번보다 분량이 더 많았다- 틈나는 대로 조금씩 정리를 해보려고 시도를 하다가 결국 리뷰는 포기했던 기억이 난다.

   이하는 우선적으로 정리한 주요작품들- 괄호 안에 소장처 표시가 달리 없는 것은 '주최측', 곧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이다.)

 

I. '3D' 작품들

 

● 건칠희랑대사좌상(10세기, 해인사); 한국은 불에 탈 수 있는 재질로 된 문화유산은 대부분 다 태워먹은 나라기 때문에 이렇게 오래된 작품이 남아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깝다. 앞면이 건칠이고 뒤는 일부 목조라고 설명이 되어 있는데 어떻게 접합이 되어있는지 벽면에 x-ray 사진이라도 걸어줬으면 좋았을 것이다. 이 방은 왕건상하고 딱 2작품을 위해서 따로 만들었기 때문에 공간에 여유가 있고, 가뜩이나 문제의 왕건상은 협조가 안 되어서 빈 자리가 휑한데 설명이 좀 소략했다. 가슴에 묘한 자리에- 목하고 명치 사이 정도?- 구멍이 나 있는데 이것도 전시장엔 모기한테 피를 보시한 흔적이라는 '전설의 고향' 수준의 설명밖에 없다. 전시도록을 보니까 신통력으로 이름이 높았던 서역의 승려 불도징(232~348)의 옆구리에 구멍이 뚫려 있어 그리로 내장을 꺼내서 씻기도 하고 구멍에서 환한 빛이 나기도 했다는 이야기에서 착안했으리라는 설명이 나와 있다. 이것도 확실한 것인지는 알 수 없겠지만 전시장 설명판에도 '모기 피보시설'과 같이 적어주어야 옳다- 박물관이 '야담'만 전파하면 좀 그렇지 않은가?

● 장곡사 금동약사불좌상(1346년, 청양 장곡사); 이 구역에 금동불 3점, 철불/건칠불 각 1점, 총 5점의 불상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었다. 제작기법이 다르면 표현의 한계가 달라지기 때문에 동일선상에 비교할 수는 없으나 얼굴 표정이나, 손 모양의 율동감이나, 하체가 받쳐주는 밸런스나, '종합 평점'이 가장 높았던 작품. 단지 칠은 제일 새것으로 보이는데 지금 가장 보기가 좋으냐, 즉 옆에 있는 벗겨진 작품들보다 확실히 효과가 좋으냐는 의문. 조각 솜씨가 고려때보다 쇠퇴한 것이야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지금 이태리 가도 미켈란젤로 없다- 금칠이라든지 채색 기술 자체가 복원을 제대로 못할 수준이라는 것은 문제가 있고, 유물 보존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칠은 기술자원이 될 때까지 자제하도록 '계몽'을 좀 해야하지 않나 싶다.

금동미륵보살좌상(요 11세기, 대영박물관)/대일여래좌상(요 11세기,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이번에 나온 소형 금동불상들 중에서는 가장 잘된 두 작품. 인물화나 불상이나 '살아있는' 느낌을 주는 것, 생동감을 부여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경지인데 그 점에 있어서 이 11c 요나라 장인들은 14c 고려 장인들보다 한수 위다.

 

● 청자상감운학국화문적(13세기,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자, 이 작품은 전시설명엔 '퉁소'에 용도는 '의례용'이라고 되어 있고 도록엔 '완상용 피리'라고 되어 있어 아예 설 자체가 다르다. 어느 쪽이 맞을까?

   일단 악기의 정체는 퉁소일 가능성이 더 높아보인다. 이유는 청자에 나란히 뚫린 7개의 구멍 중에 옆으로 살짝 비껴 뚫려있는 마지막 하나가 지공이 아니라 '허공' 혹은 '칠성공'임을 표시하기 위해서 그렇게 위치를 틀었을 것이 유력하기 때문이다(칠성공은 지공처럼 실제 악기를 연주할 때 짚어서 음정을 조절하는 용도가 아니라 처음에 악기를 제작할 때 악기 관대 자체의 기본음의 높이를 맞추기 위해서 뚫는 구멍이다.). 피리(= 당피리/향피리/세피리류)엔 칠성공이 없고- 적어도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치에 닿지도 않는다. 세로로 부는 관악기 형태로 이 위치에 칠성공 표시가 되어 있다면 퉁소나 아악기 중에서 적(篴) 계통의 악기일 확률이 가장 높다.

   용도는 물건 생긴 것으로 보아 처음부터 실제 연주할 의도는 전연 없었다고 보이기 때문에- 제일 중요한 취구가 아예 표시조차 없을 뿐더러 지공도 모양만 생각해서 그냥 간격 맞춰서 뚫었기 때문에 음정이 맞을 턱이 없다- '완상용' 가능성이 더 높아보인다. 연주가 안된다면 의례에 쓰일 수 있는 유일한 용도는 무구, 곧 춤출 때 드는 용도였다는 것인데 지금 문무에 쓰이는 관악기는 3공짜리 약(籥)이다. 그리고 아악에서 쓰는 무구엔 상징성이 들어있기 때문에 혹 보기 좋으라고 도자기로 대체했다고 해도 약처럼 보이게 만들어야지 엉뚱한 악기처럼 보이게 7공을 뚫었다는 게 역시 이치에 맞지 않는다. 게다가 도자기라는 재질이 들고 움직이기엔 그다지 실용적이지가 않으니- 춤 연습하다가 실수로 뒷사람 마빡 깨기 딱 좋을 것이다- '의례용' 설은 그냥 '탁상공론'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다만 완상용이 맞다고 해도 이를테면 풍류를 아는 선비의 서재 장식품이었는지, 아님 어떤 '센스쟁이' 귀족이 정분 난 여자 악사한테 줄려고 특별히 주문제작한 생일선물이었는지, 이제 와선 알 길이 없을 것이다.

청자철백화동채국화문유병(13세기, 대판시립동양도자미술관)/청자상감동채모란문장경병(13세기, 대판시립동양도자미술관)/청자상감동채장경병(13세기, V&A 박물관)/청자동채모란당초문완(13세기, 대영박물관); 동채 청자를 국내 소장품만으로 이 정도 수준으로 모으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동채가 들어갔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하나하나 동채 유무에 무관하게 완성도가 있으면서 동채가 쓰인 그릇들. 청자에 동채는 마치 여자들 액세서리처럼, '액센트'를 주는 효과가 있다(반면에 금채는 청자 유색이나 흑백상감 위에 금색이 딱히 무슨 효과가 있었을지 잘 상상이 안된다. '패션 센스'라기보다는 '그냥 사치'가 아니었나 싶은 의심이 드는데, 잘된 물건이 갓 만들자마자 어떻게 보였을지는 알 수 없다.). 마지막 완은 '액센트' 정도가 아니라 안쪽 전면에 동채를 풀었는데- 우린 처음 봤을 땐 중국자기인 줄 알았다- 꽤 희소한 물건으로 보인다. 우리도 이번에 구경 잘했다.

 

II. 회화

(i) 고려 불화

; 고려 불화가 현재 남아있는 한국 고전회화 중에 가장 예술성이 탁월한 그림들이라는 데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다만 이번 전시에서는- 특히 2010년 '고려불화대전'과 비교했을 때- 아마도 가장 기대수준을 충족시키지 못한 장르. 이하는 일단 묶어서 볼 수 있는 작품들을 간략히 살펴본 것이다.

 

수월관음도 3점(메트로폴리탄박물관/호림박물관/아모레퍼시픽미술관; 모두 14세기); 여기서는 메트로폴리탄 소장품이 필력도 우수하고 보존상태도 가장 좋다. 옆에 나란히 전시된 호림 것은 딱 보면 '매너리즘'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보다 굳은 필치. 같은 14세기라도 연대가 뒤지는 후기 것일지 모른다. 반면 반대편 벽에 걸려 있던 아모레퍼시픽 소장은 메트로폴리탄 것과 비교했을 때 복식문양도 기본 단위가 더 잘고, 관음보살이나 동자의 이목구비도 더 아기자기해서 미학/미감 자체가 다르다- 메트로폴리탄 것만큼 보존상태가 좋았다면 '스타일의 차이'지, 필력의 우열을 가리긴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화풍/필치의 차이도- 비유하자면 마치 반가사유상 국보 78호와 83호의 차이를 연상시키는 듯한 구석이 있다- 연대보다는 지역적 (미감의) 차이에서 나오는 것일 수 있는데, 확실한 건 고증을 해보기 전엔 모른다.

청자상감화접문정병(12세기, 대판시립동양도자미술관); 이것은 물론 불화는 아니고, 상기 아모레퍼시픽 소장 '수월관음도' 옆에 전시되어 있었던 작품- 아마도 정병이 수월관음도에 단골로 등장하는 소품이라 그렇게 배치를 한 모양인데 '정병의 예'로 써먹기엔 너무 상품이라 우리가 보다가 웃음이 나왔다. 상감은 간송미술관 소장의 청자상감연지원앙문정병(국보 66호)보다도 더 깨끗하게 잘 나왔는지 모른다. 다만 그릇 모양의 조형미나 유색은 간송 것이 조금 낫지 않나 싶은데, 나중에 언제 같이 나란히 놓고 볼 기회가 있다면 좋을 것이다.

 

아미타여래도 4점(2점은 14세기, 개인소장/이탈리아 동양예술박물관+ 2점은 남송 13세기,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먼저 고려 14세기 작품 2점을 보면, 손 모양이나 복식 묘사나 세부필력은 분명 이탈리아 동양예술박물관 것이 우위이고 현재 보존상태도 더 좋은데, 국내 개인소장품(보물 1238호로 지정된 것)은 정면을 보고 있는 자세나 여래의 표정이 묘하게 독특한 매력이 있다. 두 발이 '스텝'이 어색한 것으로 보아선 이 '정면형'이 잘 정립이 되어있었다기보다는 측면을 보고 있는 '기본형'으로부터- 알 수 없는 어떤 이유로- 임기응변으로 변형을 해서 그렸을 가능성이 있다. 닮은꼴인 메트로폴리탄 소장 남송 작품 둘은 선행하는 유사한 도상을 보여주는 의미지 미적인 측면에서 딱히 언급할 만한 것은 없는데 공교롭게도 이 구역에 들어가자마자 오른편에 있었던 ● 오백나한도(남송, 1178년, 보스턴박물관) 역시- 연대는 오래되었지만- 필력으로 보아 ‘남송명가’의 것은 아니고 그냥 '시골화가' 솜씨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전시 배치가 딱 중국 그림을 양쪽에 거느리고 '고려 회화의 우수성'을 과시하는 것처럼 되어서 흥미로웠다.

 

지장보살도 계통 6점: 지장보살삼존도(14세기, 개인 소장)/지장보살도(14세기, 리움)/지장시왕도(14세기, 호림박물관)/지장보살도(14세기, 메트로폴리탄박물관)/아미타팔대보살도(고려후기, 광복호국선사)/아미타불∙지장보살도(14세기,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우선 구도가 서로 가장 유사한 리움 소장 '지장보살도'와 호림 소장 '지장시왕도'를 비교해보면 현재 상태로는 전자가 종합적으로 낫다고 할 수밖에 없다. 다만 후자는 보존상태가 안 좋아서 인물군의 안면부가 거의 지워지고 제일 검게 칠한 눈동자만 남았는데, 보니까 시선처리한 실력이 전자보다 낫더라는 것- 약간 부연설명을 하자면, 회화는 2차원적인 예술이고, 또 본질적으로 '정지화면'이다. '활동사진' 같은,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주려면 기술이 필요한데 특히 화면에 등장인물이 5~6명 이상 되는 경우는 시선처리가, 곧 누가 누구를/어디를 바라보고 있으며 또 그 시선들이 전체적으로 서로 어떻게 연결되느냐가 화면에 움직임을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이 점에서 리움 것은 상대적으로 정적이다- 독존이나 삼존도도 아니고 이렇게 인물군을 형성하는 그림에선 확실한 감점요소. 호림 것은 상태만 온전했으면 실력은 서로 비등하거나, 외려 더 나았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보존 상태가 너무 안 좋다. 화면 하단 중앙의 사자의 경우도 종교적인 의미는 아직 정설이 없는 모양인데, 회화적인 기능은 화면에 움직임을 주는 것이다.

   메트로폴리탄 소장 '지장보살도'의 경우는 복식 묘사는 운동감이나 장식성이나 다 좋은 반면에 얼굴 표정의 생동감이라든지, 노출된 팔뚝이나 보주를 들고 있는 손 모양이라든지, 인물 묘사 솜씨는 위 두 점만 못하다. 조선시대 초상화 중에 얼굴 따로+의복 따로, 2명이 합작해서 그린 작품이 남아 있는데, 이 메트 '지장보살도'의 화가는 인물에는 비교우위가 없어서 합작을 한다면 '옷 묘사 전문'으로 특화해야 할 것 같은 경우. 여튼 보존상태는 정말 좋고, 색채감이 가장 잘 살아있어서 들여다보고 있으면 누구나 탐낼 작품. 한편 같은 메트로폴리탄 소장의 '아미타불∙지장보살도'는 등장하는 부처의 조합이 독특한데 필력이나 그림 상태나 모두 '지장보살도'만 못해 보인다. 그외 광복호국선사 소장 '아미타팔대보살도'는 지워져도 너무 지워졌고, 맨 첫머리 '지장보살삼존도'는 국내에 있는 것으론 상태가 굉장히 양호한 편인데 필법이 상대적으로 가장 딱딱하고 도식적이다.

Posted by 이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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