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호 I _ 너그러운 형태에 담긴 하얀 빛깔
공연/전시 review 2014. 6. 7. 20:41 |도자기 컬렉션에 강점이 있는 호림박물관(신사분관)의 백자 항아리 특별전. 이번엔 순백자 중심이고 6월말부터 진행될 2차 전시는 청화/철화로 이어진다는 계획. 아래는 층별로 나눠져 있는 각 전시장의 주요 작품들.
(i) 4층: 단연 이 전시의 하이라이트. 15~16c 관요 것들. 아래도 작품들을 좀 묶어서 적어 보았지만 시간이 있다면 작품들을 세밀하게 비교하면서 관람하면 좋다.
● 백자유개호 vs. 백자청화매화문호; 전자는 들어가자마자 첫 물건. 탄탄한 어깨 밑으로는 하체가 가늘어서 전체적으로 늘씬한 고려청자와 풍만한 조선백자 사이의 과도기적 형태처럼- 어쩌면 아직은 청자에 더 가까운?- 보인다. 삿갓모양의 뚜껑도 비대칭으로 휘어 있는 곡선. 후자는 전시품 한 두개 더 지나서 뚜껑에만 청화로 매화 그림이 있는 물건. 이것은 보다 원만한 백자 형태고 유약도 푸른색 기운이 보다 강하고 뚜껑도 형태가 보다 대칭적이다. 초기 백자의 스타일 변화를 볼 수 있는 작품들.
● 백자호(유개); 전시특성상 작품들이 문양이나 장식에 따라서 이름이 다른 것도 아니고 대부분이 그냥 '백자호', 혹은 뚜껑이 있으면 '백자호(유개)'라서 글로 설명하기가 좀 곤란한데 이것은 전시설명문에 입에 ‘ㄷ’자 홈이 있다고 되어 있는 물건. 고개를 좀 숙여서 찾아보면 홈이 보인다. 크기가 작고 둥글게 튀어 나온 어깨가 목에 바로 붙어 있기 때문에 허리를 숙여서 혹은 앉아서 눈높이를 맞춰서 보면 윤곽선이 거의 직선형으로 보인다. 튀어나온 어깨의 둥근 선과 대비되는 이 직선미가 이 그릇의 형태적 매력, 단정함의 비결. 더해서 때깔이, 광택이 무척 좋다. 작지만 미적으로 탁월한 물건.
● 백자호(유개); 형태는 유사하고 크기만 다른 것이 3점 vs. 옆에 형태가 다른 백자호가 1점 더, 그리고 그 옆에 청자호, 이렇게 5점이 전시되어 있는 진열장. 전자의 3점은 ‘우람한’ 어깨를 지닌 물건들이고 후자는 어깨가 두드러지지 않고 보다 원형에 가까운, 원만한 것. 유색도 후자가 회색기운은 보다 적고 푸른 기운 조금 더 돌면서 더 맑다. 맨 마지막 ● 청자호는 백자호 형태에 청자유약을 입힌 것, 무난한 작품. 보물 1071호인데 미적 가치보다는 15c 조선청자를 대표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 (구형?)백자호 2점; 아래로 굽이 확실하게 있고, 몸통은 각지거나 상하가 비대칭이기보다는 둥근, 구형으로 설명되어 있는 유개호가 하나 있고 한 작품 지나서 비슷한 형태로 뚜껑이 없는 것이 있다. 둘다 푸른 기운보다 흰색 느낌이 더 강하면서 빛깔이 좋은데 뒤에 뚜껑이 없는 것이 좀더 좋아 보인다.
● 백자태호; 내/외호 한 세트가 갖춰져 있는 것이 2점인데, 둘다 보물로- 1055호(15c)/1169호(1643년경)- 지정이 되어 있다. 1055호는 보다 길고 단정한 형태고 조명이 좀 달라서 확실친 않지만 때깔은 좀더 좋아 보인다. 1169호는 보다 통상적인 둥근 백자호 형태인데 취향문제겠지만 특히 내호는 이쪽이 그릇 모양의 조형미는 더 나은지 모른다.
● 백자호(유개) vs. 백자청화매죽문호(국보 222호); 청화백자가 들어있는 진열장이라 알아보기 쉽다. 청화매죽문호는 보존상태도 좋고 형태/빛깔/문양이 모두 고르게 좋다. 다만 굳이 흠을 잡는다면 우리의 취향으로는 매화나 대나무가 그려진 것이 좀 기가 부족해 보인다. 왼쪽엔 크기와 형태가 거의 동일한 순백자호가 있는데 정면에서 살짝 왼편으로 금가고 유약이 좀 뭉친 부분이 있는 것이 흠이라면 흠. 하지만 매죽문호는 아래 위로 국판문대를 두르고 가운데는 매화며 대나무로 화면 가득 청화를 채웠고 이쪽엔 아무것도 없지만, 가만히 들여다 보노라면 어느 쪽이 더 아름다운지 단언하기 어렵다- 이것이 순백자의 매력.
(ii) 3층; 들어가자마자 나오는 것은, ● 소위 ‘떡메병’; 지금 간송문화전에 전시되어 있는 '백자청화동자조어문병'과 유사한 형태인데 모양은 희귀하고 재미있지만 때깔이 좀 문제.
● 백자양각송죽문호; 빛깔이나 모양이 얌전하고 양각의 문양은 조선후기로 접어들면서 다양해지는 장식기법의 하나를 보여주는 것. 그 외에 ● 백자소호가 5점 있는데 모두 단정한 물건들. 그 중 '2번'으로 되어있는 유개조문호, 뚜껑의 새 그림이 재치있고 '5번'은 19c 스타일의 우윳빛 유색의 좋은 예로 볼 수 있다.
● '달항아리' 10점; 어떻게 다 유사한 형태지만 뜯어보면 같은 건 하나도 없다. 마음대로 손바닥에 쥐어 눌러 만든 송편 같은 모양도 있고, 꽤나 대칭이 맞는 것도 있고, 조금씩 다른 부풀기와 비례를 갖고 있는 것. 전시실 입구에서 왼쪽 첫번째 있는 것이 가장 대칭적인 형태, 입에 붉은 점이 찍혀 있는 것도 특색인데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겠다. 그 열 맨 뒤에 것이 상기 ‘자유형 송편’ 형태고, 행으로나 열로나 한 가운데에 있는 것이 가장 풍만하다.
사실 우리의 견해로는 이 ‘달항아리’의 의미나 가치는 좀 과대평가된 면이 없지 않다. 한국문화 내지는 조선문화를 중국의 아류로 보고 중국에서 건너온 건 중국의 '오리지널'을 보면 되니 볼 것이 없다, 중국엔 없고 한국에만 있는 게 뭐냐, 이런 식으로 봤을 때 조선에서만 만든 형태니 중요한 것이 된다. 애초에 이런 ‘아류의식’을- 외부인의 시각이건 혹은 내부자의 콤플렉스건- 버리고 본다면 달항아리에 특별한 의미부여를 할 이유는 없어지고 그저 다른 조선백자들과 똑같이 미학적으로 평가하면 된다. 그럼 상기 15~6c 조선백자의 전성기와 비교했을 때 유색의 열세나 형식/장식미 상의 약점을 그대로,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외려 조선의 경제/사회/문화적 위기, 과도기에 이런 결함을 극복하기 위한 당시 조선 사기장-혹은 도공-들의 창의적인 시도로서 더 높이 평가할 여지가 생기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객관적인 시각이 달항아리가 갖고 있는 매력을 즐기는데 방해가 되지도 않는다. 그 매력이란 곧, 시쳇말로 ‘볼매’의 미학- 풍만하고 자유로운 형태가 볼수록 매력이 있는 게 달항아리다.
(iii) 2층; 이 방의 주제는 '입호立壺'인데, 다양한 백자의 형태를 굳이 입호/원호로 이분하기보다는 대략 '키 크고 하체 늘씬한' 항아리류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할 듯 하다. 처음 나오는 ● 백자호 3작품이 형태적인 표본들로 비교될 수 있다. 제일 처음 것이 불룩하게 튀어나온 어깨에 비해서 하체가 좀 약한 스타일이고 그 다음, 전시설명에 광주 금사리요 추정품으로 되어 있는 것이 상대적으로 하체 두께가 적절하고 비례가 잘 맞는 스타일. 거기서 살짝 고개를 돌려야 보이는 세번째 것은 전체적으로 날씬하고 길쭉하지만 비례가 제법 잘 맞는데, '홍치이년명' 백자청화송죽문호(동국대박물관)이나 청화송죽인물문호(이대박물관)와 같은 형태라고 설명이 되어있는 것이다. 다만 우리의 가설은 위에서 본 '청화매죽문호'의 경우와는 달리 이 순백자는 '홍치이년명' 청화백자와 나란히 놓고 보면 좀 없어보이리라는 것이다- 순청자는 모양이 날렵한 것이 좋고 간단한 음각무늬 하나만으로도 장식이 충분히 되지만 순백자는 마르면 없어 보이고 풍만한 기형이 무채색과 장식 없음의 한계를 극복해주는 것. 이 색깔과 형태의 어울림 관계를 잘 포착한 것이, 조선 백자와 그것을 만들어낸 우리 조상들의 미의식의 탁월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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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명은 핵심인 4층부터 했지만 관람은 미술관에서 제시하는대로 2층부터 하기를 권한다. 4층에서부터 내려오면 ‘때깔’의 차이가 너무 나기 때문에 3층 물건이 좀 형편없어 보여서 마치 ‘암순응’을 하듯이 유색과 형태에 눈이 적응하는 시간이 좀 필요하기 때문. 2층에서부터 올라가면 이런 ‘암순응’은 불필요할 것이다.
- 이번 전시는 백자호만, 그것도 순백자/청화,철화로 나눴기 때문에, 수량만 보면 통상적인 전시의 2개층 정도 분량. 대신 청화/철화호를 중심으로 바로 6월말부터 백자호 II를 준비하고 있고 개별관람은 8천원, I/II 통합관람권은 1만원이다. 둘 중에 하나라도 볼 사람은 둘다 보는 게 가격 메리트도 있고 시간도 한 2주밖에 안 남았으니 문닫기 전에 필히 한번 들러보길 권한다.
~6.21(토)까지. 매주 일요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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