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문화전_문화로 나라를 지키다 1부(동대문디자인플라자 디자인박물관)
공연/전시 review 2014. 4. 28. 20:30 |
1년에 2번 각 2주간 정기전 외엔 비공개 원칙이었던 간송미술관 소장품을 지난 3월 개관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3년간 12회에 걸쳐서 상설전 형식으로 교체전시한다는 기획의 제1부. 3년간 12회면 분기 1회꼴이기 때문에 전시를 전담할 수 있는 인력과 조직을 갖춘 대형박물관이 아닌 경우는 사실 쉽지 않은 기획일 것이다- 대신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박물관/미술관의 불모지라고 할 수 있는 한국에서 당분간 매분기 볼만한 전시가 하나씩 생겼다는 의미. 아래는 대략 전시순 주요작품.
I. 길을 열다: 간송 전형필이 처음 문화재 수집을 시작한 1933~35년 사이 구입한 작품들이라는 의미.
먼저 해악전신첩중 5점, ● 단발령망금강/장안사비홍교/금강내산/불정대/문암관일출(겸재); 크기는 작지만 5점 모두 실경을 몇가지 구성요소들로- 토산/암산/사람/인공물(사찰, 탑,...)- 분해한 다음에 그 특징을 잡아서 표현하고, 다시 탁월한 구도와 균형감각을 바탕으로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겸재의 소위 '진경산수' 기법의 핵심은 다 볼 수 있는 작품들. 디테일을 본다면 '단발령망금강'의 토산과 암산 사이에 물이 흐르는 대각선구도는 단순하지만 명쾌하다. 반면 '장안사나홍교'는 아치형 돌다리에 맞춰서 주위 산들은 둥글게 에워싼 느낌을 주고 사이엔 S자로 물이 흐르는, 곡선과 원형의 구도. 그리고 '문암관일출'에서 하늘,산, 바다, 나무를 아우르는 전체적으로 푸른 색조 안에서, 해 위로 엷게 퍼져있는 붉은 색을 쓴 그 느낌은 또 어떠한가?
● 촉잔도권(심사정); 8m18cm짜리 대작. 보화각, 즉 지금의 간송미술관에는 이걸 끝까지 다 펼 수 있는 큰 진열장이 없기 때문에 외부전시의 최대수혜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작품. 물을 사이에 두고 대칭을 이루는 첫부분이 가장 느낌이 좋고, 전체적으로 담채효과도 괜찮다. 다만 중간에 기암괴석을 가득 그렸지만 산이나 바위가 완전히 살아있거나 압도적이지는 못하고, 전반적으로 뒤로 갈수록 동어반복의 느낌이 없지 않다. 심사정 산수화는 언제나 2% 부족한, 약간 고지식하고 묘미가 적은 느낌을 지우기가 힘들다.
다음은 해동명화집(조선후기 수장가 김광국의 소장품집 ‘석농화원’에서 떨어져나온 일부라고)중 5점;
● 추림촌거(안견); 이 작품도 진짜가 맞는지 이견이 없진 않은 모양이지만 안견의 그림은 전칭작도 많은 편이 아니다. 소품이고 보존상태가 아주 좋은 편은 아니라서 많은 것을 알 수는 없고, 개략적인 구도 외엔 나뭇가지나 돌담으로 보이는 담벼락이나 가는 선들도 모두 힘이 들어가 있는 것이 눈에 띈다. 범상한 솜씨는 아니다.
● 청산모우(강희안); 역시 작품이 많이 남아있지 않아서 귀한 그림이지만 보존상태가 앞의 작품보다 더 좋지 않다. 하필이면 그냥 산수화도 아니고 제목상 비오는 날 저녁풍경이라- 아마도 비내리는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서 뭔가 먹을 조절하거나 했을 것인데- 그림이 좀 닳으니 더 보이는 게 없다.
● 포도도(신사임당); 장르가 쉽다면 쉽겠지만, 거의 완벽한 솜씨. 이걸 보고 나니 5만원권 도안은 약간 실패작, 응용이 잘 안된 것으로 보인다.
● 문월도 (탄은 이정); 묵죽의 대가의 흔치 않은 인물화. 슥슥 그린 것 같지만 대상의 꼭 필요한 형태는 다 표현이 되어 있다. 약간은 귀기어린 듯, 혹은 짖궂은 듯 한 인물의 표정이 도석인물화 장르에 필요한 회화적 기술 뿐 아니라 정서까지 터득하고 있는 화가라는 것을 말해준다.(이 그림을 실제로 보니 지난번 국립중앙박물관 도교 전시때 나온 ‘유해섬도’와 수법이나 분위기가 유사해서 같은 작가의 작품으로 추정한 이유를 알 것 같다.)
● 현이도(조영석); 단원에 비하면 뭔가 투박한 듯 하면서도 독특한 맛이, 표정과 질감과 분위기가 있는 조영석의 특색이 잘 드러나는 풍속화.
● 청자상감운학문매병; 어깨가 우람한, '근육질'의 탄탄한 형태가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문양도 좋지만, 특히나 이만한 크기의 작품으로 화면 전체에 가득한 상감이 이렇게나 깨끗하게 나온 경우는 보기 힘들 것이다- 도자기를 수백개 정도 깬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이론의 여지가 없는 상감청자의 대표작품.
II. 지켜내다: 경성미술구락부 경매에서 구입한 작품들- 서예/산수화/인물/화훼영모/도자기 등 각 장르별로 고루 선별한 듯 보인다.
● 백자청화동채철채초충난국문병; 아주 특색있는 작품. 청화, 동채, 철채가 다 들어갔고 모양도 하체가 탄탄하면서도 전체적인 비율이 좋다. 문양 혹은 그림도 나쁘진 않지만 품이 높기보다는 특이한 맛이다.
● 백자청화동자조어문병; ‘떡메병’이라고 부른다는, 우하단을 쳐서 내려앉힌 것 같은 모양이 특이하고 그림도 운치가 있다. 이외 ● 백자청화철채산수문가형연적; 전시설명대로 독특한 디자인이고, ● 백자제기(희준/궤)들도 그렇게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하화청정(단원)/자웅장추(변상벽); 흠잡을 데가 별로 없는 두 폭의 화훼영모. 그냥 즐기면 된다.
● 침계(김정희); 이번 전시에 나온 유일한 서예작품. 잘된 글씨고 추사 김정희의 대표작 중에 속할 것 같다.
● 고사관폭(겸재); 화가가 ‘작심하고 먹 한번 풀어쓴’ 것 같은 작품. 그림이 전체적으로 먹이 진한 대신에 좌측 상단의 큰 바위산에서 우하단의 내 혹은 못으로, 대각선으로 이어지면서 여백이 충분히 넓다. 또 우측상단 산에서 폭포로 이어내려오는 대각선은, 똑같이 가늘고 흐린 선으로 산의 준법에서부터 물살로 이어진다. 이런 균형감각이 화면에 이렇게 효과적으로 구현되는 것은 아마도 재능일 것이다.
● 통천문암(겸재); 어쩌면 상단의 여백이 조금 너무 넓은지도 모른다. 그러나 멀리서 보면 성기게 슥슥 그은 것 같이 보이는 물결, 필선이 주는 효과는 가까이서 다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 남극노인(윤덕희); 지난번 국립중앙박물관 도교전시에 나왔던 '진무대제도'도 화가가 도석인물화에 일가견이 있다는 것을 가히 알 수 있는 좋은 그림이었고, 이건 더 잘 된 것으로 보인다. 유명한 아버지(윤두서)의 이름값에 부끄럽지 않은 솜씨.
● 노응탐치(심사정); 유사한 구도의 심사정 작품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호응박토’가 있다. 이 그림은 매가 꿩을 덮치려고 노리고 있는 상황이고, 국박 것은 이미 사냥을 해서 토끼를 발톱으로 제압하고 있는 상황. 회화적으로는 비슷하게 잘 되었지만 순간포착이나 감정표현은 '호응박토'가 좀더 낫다. 매가 토끼를 노리다가 낚아채는, 즉, '호응탐토'로 연작이었으면 두 그림을 나란히 놓고 보면 더 재미있었을 것이다.
● 팔준도 4폭(장승업); 주인공격인 말이 ‘작자미상’이면 참 잘 그린 그림인데, 장승업 것으로는 아주 잘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말이 완벽히 살아있는 느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도 그림 4폭이 나무와 바위의 배경이 거의 똑같은데, 이런 유사배경/구도의 그림은 '대련' 정도까지는 괜찮지만 4폭이 되니까 중복의 느낌, 보는 재미가 적다. '팔준도'의 고사 때문에 오히려 두 폭이면 될 그림이 네 폭으로 늘려졌는지도 모른다.
III. 찾아오다; 이것은 일본으로 반출되었던 것을 구입해서 다시 찾아온 작품들이라는 의미.
먼저 소위 '개스비 컬렉션Gadsby collection'이라고 불리는 청자들. 아래 언급 안한 것들도 다 최소한 A급 상품이다.
● 청자양이병; 요즘은 색분류를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것은 회청색, 혹은 옛날 어린 시절 쓰던 크레파스에서 '풀색'에 보다 가까운 푸른색이다. 이것과 같은 진열장에 있는 ● 청자양갹운문병의 보다 생기있는 연록의 푸른색을 대비시켜 볼 것- 이 두 빛깔을 기준, 혹은 대척점으로 해서 색조와 광택의 변화를 관찰하는 것이 청자의 빛깔을 어느 정도 알아볼 수 있게 되는 한가지 방법일 것이다.
● 청자양각도철정형향로/청자기린유개향로; 둘다 S급, 좋은 물건이지만 다른 데서도 볼 수 있으니까 여기서는 상대적으로 흔한(?) 편에 속하는 물건.
● 청자오리형연적; 세부상형도 좋고 빛깔도 좋지만, 턱에서부터 배로 이어지는 'S라인', 그 라인과 턱과 꼬리를 연결한 직선이 이루는 각도 같은 것이 숨은 '포인트'- 작은 물건이지만 이런 우아한 S라인과, 무엇보다 비례감각은 조각품이건 공예품이건 통일신라/고려대 물건에서만 볼 수 있다.
● 청자모자원숭이형연적; 어미원숭이의 표정이 살아있다. 조각이 정교하고 세밀한 것은 명/청 장인들도 잘할 수 있다. 하지만 우아함과 품위를 원한다면 송대 장인을 찾아가는 것이 나을 것이고 그에 더해서 이렇게 자연스러운 생기까지 원한다면, 고려 장인에게 주문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도가 아니겠는가?
● 백자박산향로; 고려백자 자체가 청자만큼 수효가 많지도 않지만 대개 우윳빛 백자고 이런 청백색 백자는 더 희소한 물건.
● 혜원전신첩(신윤복); 무엇보다 제재의 측면에서는 뛰어난 순간포착이 최대의 장점. 여기에 나무/바위/기와집/초가집/담/다리/인물들, 모든 소품이나 배경이나 전체적인 색조가 소재에 딱 부합해서 표현효과가 극대화된다. 이 화첩은 최근 정기전에서 12~16점 정도씩 볼 수 있었고, 이번에는 전체 30점이 각각 ~4.20/~5.18/~전시종료시까지 10점씩 교체전시된다.
그리고 전시의 대미를 장식하는, ● 훈민정음해례본; 앞에서 경의를 표하는 것 외에 달리 할 말은 없는 전시품이지만 문화적인 가치로 말하면 여기서 가장 귀한 것이라는 데 감히 토를 달 수 없다.
~ 6.15일까지. 어른 기준 8천원. 자세한 정보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http://www.ddp.or.kr/)나 간송미술문화재단(http://www.kansong.org) 홈페이지내 '전시' 항목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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