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기로 교체되는 국립중앙박물관 서화관 회화실 교체전시. 하계 전시교체는 대략 5월말~7월말 사이라서 언제까지 걸려있을지 확실치 않으나 전주말(6.7)까지 변동이 없었던 걸로 봐서 아마 이달 하순까지는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래는 전시실별 주요 작품.

 

I. 풍속화실

● 활쏘기/논 갈기(단원); 계속 넘어가는 단원의 구도법 레슨. '활쏘기'의 3 덩어리의 4 사람이 이루는 형태는 전체적으로 활모양으로 휘어진 윤곽선으로 계속 돌아간다. '논갈이'는  힘차게 올라가는 2마리의 소와 쟁기가 이루는 대각선을 위쪽에 괭이질 하는 두사람(과 괭이)가 엇갈려서 강화하는 수법.

●  장옷 입은 여인/처네 쓴 여인(신윤복); 이번엔 잔뜩 가리고 감춘 여인들의 그림. 묘사나 정황이 노골적이거나 그렇지 않거나 신윤복의 풍속화에는 어떤 감정이, 'sentiment'가 담겨 있다. 좋은 화가인 이유.

투호 놀이/바둑(작자미상); 2점 모두 관아재 조영석의 영향이 짙게 느껴지는 스타일의 그림. 보존상태가 조금 좋지 않고 인물묘사가 약간 거칠지 모르지만 전칭을 해도 그럴 듯 할만큼 상당히 수준이 높다. 

물동이를 인 여인(작자미상); 물동이를 이고 막 문을 나서는 여인을 남정네 둘이서 음흉하게 쳐다본다. 그냥 지나다 쉬던 길일 수도 있지만 어느 마을 누구네 집에 고운 아낙이 있다는 말을 듣고서 일부러 보러온 한량들일지도 모른다. 소재도 그렇고 나무나 집이나 배경처리한 솜씨나 전체적인 화면 톤이나 신윤복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진다. 이 그림은 아마추어가 봐도 신윤복의 그림은 아닌 걸로 보이지만 상당한 수준에 있는 것은 앞의 2점과 마찬가지, 볼 만하다.

 

II. 인물화실

조흥진초상(작자미상); 관복이 약간 과도하게 부풀었는데 죽은 다음에 그린 그림이라 감점요소일 수 있다. 물론 어쩌면 생전에 늘 옷을 품을 크게 입었노라고 유족들이 말했다거나 그보다는 생전에 그린 다른 그림을 보고 그렸을 수는 있겠다. 19c 초반 것이고 얼굴 표현이 도식화된 것은 맞지만 전시설명대로 ‘경직’까지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인물이 아주 죽어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색초상(작자미상; 1711 개모작); 간략한 몇개 선들에 의한 얼굴이나 관복 자락 묘사가 작년에 걸렸던 비슷한 시기의 조반 초상과 역시 공통점이 가장 많아서 고려말/조선초 초상화 스타일을 볼 수 있는 작품. 조반 초상보다는 완성도가 훨씬 더 높지만 원작을 잘 살리고 있는 개모인지는 확실치 않아 보인다.

흥선대원군초상(작자미상; 1869년경?); 19c 후반 것으로는 잘된 것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전시설명대로 잔붓질에 의한 얼굴표현이 18c 스타일과 가장 크게 달라진 부분인데 딱히 ‘진보’라고, 성공적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다만 언제나 무슨 ‘기법’을 썼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누가’, ‘어떻게’ 썼느냐가 더 중요할지 모른다.

해동명현첩중 2점, 구용현/홍봉한상(작자미상); 초본이지만 수준높은 솜씨. 얼굴 표정이 살아있다.

신선도중 2점(전 조세걸); 계속 넘어가고 있는 화첩. 독립된 작품인 것으로 보이는데 마치 마주보고 있는 두 폭이 하나로 연결되는 것처럼 가운데 산의 선을 이어놓은 것이 흥미롭다. 우측 그림의 고개를 돌리고 있는 목이 긴 학이 눈에 띄는데, 가는 S라인이 약간 인위적으로도 보이지만 전체적인 화면의 짜임상 딱 이 정도의 반원이 필요할 것 같다.

 

III. 산수화실

누각산수도(문청); 바위산의 표현효과가 좋고 무엇보다 관객의 마음속에 미스테리를 불러일으킬 줄 아는 화가. 일본으로 건너가서 활동했다는데 15c에는 이 정도 수준의 화가는 많았던 것일까? 당시 조선에서 아주 잘 나가는 화가였다면 굳이 일본으로  아예 근거지를 옮길만한 객관적인 이유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물론 원래 일본에서 유학을 왔다든지, 알려지지 않은 개인적인 사연이라면 수없이 많은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하관계회도/미원계회도/연정계회도(모두 작자미상); 조선초기 계회도 3점. 하관계회도와 미원계회도는 그림이 거의 유사한데 단골로 계회를 하던 실경인지 그냥 관념적으로, 관행적으로 쓰던 배경인지는 잘 모르겠다. 계회 모임 장면이 주가 아니고 산수가 중심인 것이 조선초기 양식이라고. 산수 자체는 둘다 잘 되었고 보존상태가 더 좋은 하관계회도가 조금 나아보이기도 한다. 연정계회도는 소나무(혹은 잣나무?) 숲이 심어진 산의 표현이 독특한데 전체적으로는 그림이 조금 떨어진다는 느낌.

한암조어도/어주도(겸재); 인물이 주라기도, 산수가 주라기도 애매하고 산수인물화라고 하는 수밖에 없는데, '소경'인지 '대경'인지도 아리송. 문자 그대로 ‘희묵戱墨’이라는 표현이 이해에 가장 적절할 지도 모르겠다. 어주도에선 구불구불한 나무에 이어져서 바위도 유체같이 구불구불한 선으로 표현되는 반면 잎새나 배는 선이 선명하다. 한암조어도도 바위나 그 아래 물풀, 상단의 물의 흐름에서 각각의 붓질, 필선을 보는 재미가 있다. 

산수도(이인문); 모범적인 산수화. 담채를 촉촉하고 청신하게 잘 쓰는 이인문이지만 전체적인 분위기에 맞춰서 색채도 점잖게 썼다. 굳이 흠을 잡자면, '포인트point'가 없다는 것?

산수도 2점(전 이정); 한 눈에 들어오는 독특한 분위기가 있는 그림. 간략하게 구불구불한 선으로 그려진 사람을 보면 성냥으로 그린다는 박수동 화백의 '고인돌' 만화가 떠오르기도 한다. 다만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데 개똥 하나 구를 데가 없이 그림이 너무 깨끗하다. 속설이지만 화풍이 이런 사람이 대개 오래는 못 산다는 것.

● 단발령망금강산/장안사(겸재); 36세작, 신묘년풍악도첩중 2점. 이미 진경산수의 기본 기법은 완성되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IV. 화훼영모, 사군자실

화조영모도(전 신잠); 새나 토끼나, 꽃이나 나무나 모두 상당히 잘 되었는데 다만 바위가 약간 요령부득, 조금 떨어지는지 모른다. 아마도 이 장르로 그림이 남은 것이 더 없을 것이기 때문에 정말로 바위가 약점인지 아니면 의도적인 표현 혹은 우리의 취향문제인지 알 길이 없다.

화조영모도(전 이영윤); 이것은 별로 흠잡을 데가 없는 작품. 미세한 차이지만 점점 그림이 좋아지는 순서로 걸려 있는 양상이 된 셈.

묵죽도(송상래); 미적으로 완전히 성공적인지는 모르겠지만 개성이 있는, 자기 스타일이 확립된 묵죽.

숙조도(조지운); 매화도, 졸고 있는 새도, 대나무도 모두 흠잡을 데가 없고 비례나 선의 구성, 구도감각도 뛰어나다. 이 장르에선 거의 완벽한 솜씨. 

기명절지도(최우석); 먹을 잘 썼고 볼륨감이 좋다. 20c 작품으로는 수준급이라고 해야 할 것.

그 외엔 ● 어해도 2점(조정규/장한량)이 둘다 볼만 하고, 화훼초충첩(죽향); 제목이 그냥 '화조도'였던가 기억이 확실치 않은데 검색해보니 '화훼초충첩'의 일부인 것 같고, 선이나 표현이 힘이 조금 약한 게 흠. 19c 거의 유일한 여성화가라면 의미는 있을 것이다.

 

V. 궁중기록화, 민화실

무신진찬도(작자미상); 훈련받은 화원의 솜씨. 18c 것들보다는 수준이 떨어졌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볼만한 그림.

곽자의행락도(전 김득신); 그림이 잘되긴 했지만 김득신 그림이라면 좀더 잘 그렸어야 하지 않을까?

호렵도; 북방의 아마도 여진족, 이제는 만주족의 수렵도. 김홍도도 호렵도를 그렸다는데, 솜씨 좋은 화가가 그렸다면 사냥하는 장면이나 야인들의 묘사가 보는 재미가 쏠쏠했을 수도 있을 것 같은 양식의 그림.

Posted by 이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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