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풍속화실


(이 방은 볼만한 그림은 다 예전에 커버했다는 기억.)


II. 인물화실

● 초상(작자미상); 그림의 주인공도 미상인데 입수할 때 ‘성모씨’라고만 되어 있었다고. 관복이나 얼굴이나 전형적인 18c A급 초상이다.

하마선인도/진무대제상/마상미인도(모두 윤덕희); 세 작품 중 하마선인도가 유독 필력이 떨어지는 편이다. 인물의 필선도 도식적이고 배경산수도 윤덕희가 산수화에 능하진 못했다고 하더라도 좀 처지는 솜씨- 해서 우리가 보기엔 실력이 임당 백은배 수준에서 그리 많이 멀지는 않다. 관서도 단순히 동일인이 다른 필체로 썼다고 보기엔 의심해볼 여지가 있기 때문에 전문가의 정밀감정이 필요해 보이는 작품. 반면 마상미인도는 말이 비례같은 것이 현실적이진 않지만 굉장히 힘있게 잘 그렸고- 말 얼굴 그린 솜씨를 한번 눈여겨 보기 바란다- 미인은 중국풍 사녀도인데, 조선후기에 이런 스타일 사녀도가 이 정도 크기와 이만한 솜씨로 된 것이 그리 흔하게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III. 산수화실

월야산수도(김두량); 별로 나무랄 데가 없는 능숙한 필치의 수작. 산수화지만 큰 산과 강이 아니라 보다 좁은 숲과 내를 주제로 한 그림이고, 화면이 얼핏 보기엔 한쪽으로 치우친 것 같지만 화면 왼쪽이 근경이라 먹색이 진해서 그렇지 실은 구도상 상하좌우 밸런스를 아주 잘 맞춰서 그린 그림이다. 대형 한림도(寒林圖)를 그렸어도 볼만 했을 것 같은 실력의 소유자. 영조대 사람이니 연대가 아주 오랜 것도 아니고 직업이 화원이니 평생 그림만 그렸을 텐데 도대체 그 그림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 백학관/입암도(겸재); 나란히 대놓고 보니 '입암도' 쪽이 물결묘사라든지, 보다 힘차고 원숙한 필력. 다만 같은 산수화라도 세부장르가 좀 다르다고 볼 수 있어 그에 따라 표현기법도 다르기 때문에 직접 비교에 약간의 제한은 있다. '백학관'이 소식의 고사와 연관이 있다는 것은 우리도 전시설명을 보고 배웠고, 또 '바둑 두는 장면’ 자체는 생략이 되어 있다고 해서 살펴보니 백학관 앞에 들어간 방향으로 신발이 두 켤레 나란히 놓여 있고 보이는 것도 없는데 소식과 시동은 백학관 쪽을 돌아보고 있다- 즉 ‘무슨 소리’가 들렸다는 얘기.

● 송도기행첩(중 영통동구; 강세황); 미술교과서에도 실렸었고 위작시비도 있어서 여러모로 유명한 작품. 먼저 바위의 음영 표현에 관해서라면 시기상으로도 서양화법이 충분히 들어올 수 있는 연대고 강세황이 기법적인 실험을 많이 했던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4년전에 여기서 한 표암 특전에서 우리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이것이 표암의 아이디어라고 해도 이상할 것이 별로 없다.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 미심쩍은 것은 화면구성상 산 상부 능선에서 주인공 격인 특징적인 바위들로 이어지는 부분, 그리고 바위에서 길로 이어지는 부분이 잘 동이 닿지 않는 구석이 있다는 점- 산수화가 표암의 최대 장기는 아닐지언정 표암이 후대의 어떤 화가들보다 산수화법의 원리에 정통했던 사람이라는 데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실수를 표암이 했다기보다는 솜씨가 떨어지는 화가가 베끼다가 잘못 베꼈다고 해야 더 그럴싸하지 않은가? 19세기 후반에 산수화법에 대한 이해도는 떨어지고 서양화법에 대한 이해는 더 높아진, 즉, 바위 표현은 잘 이해했지만 화면구성은 이해를 못한 어떤 화가의 모작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IV. 화훼영모사군자실


(이 방은 볼만한 그림은 다 예전에 커버했다는 기억.)


V. 궁중기록화, 민화실


(이 방도 볼만한 그림은 다 예전에 커버했다는 기억.)


~ 서화관이 12.7(예정)까지 공사 관계로 장기휴실. 해서 전시기간이 좀 짧긴 했는데 아마도 연말엔 새 그림들을 걸지 않을까 싶다.

Posted by 이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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