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기획특별전 "한국의 도교문화- 행복으로 가는 길"
공연/전시 review 2014. 1. 12. 20:48 |
국립중앙박물관이 기획전시실에서 통상 연 1회 정도 여는 자체 기획전. 최근 4,5년간 주로 고려청자, 고려불화, 초상화, 혹은 통일신라조각같이 특정한 미술품 장르전이 많았는데 이번엔 '도교문화'를 포괄적으로 주제로 삼았다. 전시구성은 크게 1부 ‘도교의 신神과 의례儀禮’, 2부 ‘불로불사不老不死’, 3부 ‘수복강녕壽福康寧’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각 다시 '신이 된 노자', '신선의 세계, 동천복지'... 등등 이렇게 개별적인 소주제로 나뉘어 있다. 스토리가 연결이 된다기보다는 코너별로, 주제별로 전시설명을 찬찬히 읽어보면 한국 도교의 역사를 간략하게 공부할 수 있는 구성.
아래는 대략 전시순서대로 본 주요작품- 언제나 그렇듯이 단지 순수하게 우리의 주관적인 미적 기준에 따라서 탁월하거나 흥미로운 것들이다.
● 낙서문 구형백자; '낙서洛書'의 고사를 모티브로 거북이 모양에 등에 1부터 9까지 가로/세로/대각선 어디로 더해도 15가 되게 배열한(마방진) 숫자점을 찍었다. 기형이 특이해서 쉽게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 문례노담도(김진여); 김진여는 조세걸의 제자고 같이 평양에서 주로 활동했다고 되어 있는데 그림이 그렇게 많이 남아있는 것 같진 않다. 예전에 바로 이 전시실에서 열렸던 '초상화대전'에 나왔던 '권상하 초상'이 개성이 있는 수작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되고, 이 그림도 '성적도'에 어울리는 기품은 없지만 인물이 살아있고 온화한 색채감이 좋다.
● 분향고천도(윤두서); 나무나 옷자락의 선묘가 좋고 역시 간략한 선으로 묘사되었지만 인물들의 표정도 정감이 있다. 볼 만한 소품. 같이 펼쳐져 있는, 하늘을 나는 선녀같이 보이는 여인이 초생달이 가로로 누운 밤하늘에 어떤 성으로 날아가는 듯한, 거의 '샤갈(Chagall)틱'한 구성의 그림도 재미있다.
● 고려청자4점, 기린향로/도교인물형주자,연적/도철문향로; 모두 수작. 청자실이나 고려실에서 익히 보던 그 물건이거나 같은 종류지만 좋은 건 또 봐도 좋다.
다음은 무령왕릉 출토유물들:
● 금동환두대도; 검의 몸체는 부식이 심하지만 손잡이가 문자 그대로 예술. 맨끝 고리 안의 용무늬에서부터, 봉황, 인동문, 사이에 금은실 감은 거며, 절묘하지 않은 것이 없다.
● 신수문경; 사람모양 하나, 짐승이 넷, 모두 자세가 너무나 날렵하고, 테두리나 바탕에 촘촘하게 새긴 문양도 좋다. 말로는 똑같이 우아하고 섬세하고 유려하다고 표현해야겠지만 백제의 것은 고려의 우아, 섬세함과는 또 스타일이 다르다. 고려동경들과 한번 비교해보기를 바란다.
● 진묘수; 뭘 모델로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날렵하고 세련된 다른 유물들과 다르게 이건 다리 짧고 몸통 굵고, 거기에 걸맞게 장식이 거의 없고 무늬도 선이 굵다. 대조되는 미학.
2부로 넘어가면 역시 무령왕릉 출토품이 한 점이 더 있는데, 바로 ● 동탁은잔; 전체적인 기형이나 새겨진 무늬나 뚜껑 손잡이 아래 금색조각으로 한번 두른 것이나, 모두 고급스럽다.
● 금동대향로; 외국인 손님을 데려와서 이 작품을 보여줄 일이 있다면, (올바른 영어표현인지 100% 확실하진 않지만)'miracle piece'라는 한마디가 적절한 설명일 것 같다. 진흙 속에 묻혀서 이만한 보존상태로 발견된 사연도 그렇고 미학적으로도 그렇다. 바닥의 용에서부터 꼭대기 봉황까지, 이렇게나 장식이 많은데 불필요해보이는 것을, '떼내도 좋은' 군더더기를 찾기가 힘들다. 모든 디테일이 다 철저하게 생각이 되고 계산이 되어서 만들어진 것이 틀림없다. 이를테면 몸체 하반부의 연꽃잎은 불교의 영향이라고, 불교적 세계관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상반부의 겹겹이 쌓아올린 봉우리들과 형태적으로 대칭이 잘 어울린다. 하반부를 '민무늬'로 두지 않고 뭔가 장식을 할 거라면 딱 적절한 무늬인 것.
전체적으로 보면 용이 토해낸 것도 같고, 혹은 마치 '천공의 성'처럼 바닥에선 용이 받치고 위에선 봉황이 들고 하늘을 날고 있는 것도 같은 세계. 위가 다 없어지고 바닥의 용만, 살아서 꿈틀거리는 듯한 기에 자연스럽고도 교묘하게 몸을 틀고 있는 그것만 발견되었다고 해도 순수한 미적 가치만으로는 국보급이고 마찬가지로 뚜껑의 봉황만으로도 보물급은 될 것이다. 전시설명에도 잠깐 언급이 되어 있지만 이것이 전적으로 도교유물인지는 의문이고 아마도 도+불 융합의 세계라고 봐야 할 것이다. 아마도 그렇게 융합된 당시의 특정 신화 혹은 전설을 표현한 것일 가능성이 높을 텐데 그 내용이 실전되지 않았다면 장식들의 의미를 더 잘 알 수 있었을 것이고 표현의 계산이 더 탁월하다는 것이 드러났을지도 모른다. 그 어떤 금관도 미적으로 이보다 뛰어나다고 단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복제품하고 진품은 느낌이 다른데 앞에 사람이 전연 없는 건 아니지만 빛이 바랬다고 가치에 비해서 줄이 짧은 건 아닌지? 백제는 정말 유물이 너무 없어서 '잃어버린 왕국', 아니 잃어버린 문명인지 모른다.
다음은 일련의 도석인물화들:
● 동방삭도(전 이경윤); 괜찮은 그림이긴 한데 기억이 확실친 않지만 이경윤 그림으로는 선이 약하고 품이 좀 떨어지는 느낌. 하긴 이경윤 그림은 낙관이 있는 것이 없어서 어차피 본 건 다 전칭작이긴 하다. 이경윤의 범작일 수도 있고, 어쩌면 17c 후반이나 18c 그림일까?
● 종리권도(작자미상); 표정이 살아있고 옷깃이나 풀어헤친 배, 디테일도 괜찮다. 왜 작자미상일까?
● 진무대제도(윤덕희); 어쩔 수 없이 아버지(윤두서)에 가리지만, 독창적이진 않을지 몰라도 아버지의 스타일을 잘 배워서 그림이 볼 만하다. 도석인물화가 장기 중의 하나. 전시 뒤쪽에 2점이(●격호도/격룡도) 더 있는데 괜찮은 소품들. 먹색이 흐려졌지만 디테일을 찬찬히 볼 만하다.
● 유해섬도(이정); 먹으로 슬슬 윤곽을 그려낸 여유로운 스타일. 유해섬이나 두꺼비나 능글맞은 표정이 전체적인 분위기, 표현기법과 잘 어울린다. 좋은 그림이고, 문제는 누구 그림이냐는 것? 전시설명엔 묵죽으로 유명한 탄은 이정(李霆)의 그림으로 되어 있는데, 그림의 오른쪽 여백에 이 그림을 예전에 소장했던 누군가 적은 것 같은, '나옹(懶翁)'이라는 호는 겹치는 연대, 선조 때 화가인 다른 이정(李楨)의 것이다. 뭐 어떤 '이정'이든지 두 사람 다 대가여서 진짜라면 똑같이 귀한 그림이긴 한데, 상세하지 못한 설명이 아쉽다.(지난달에 봤을 땐 후자로 되어있었던 것도 같은데 이게 확인을 하고 옳게 고친 것인지?)● 여동빈도(김득신); 이 그림은 가장 최근에는 2012년초 리움 '조선화원대전'에서 봤던 것 같다. 이것만 따로 보면 분명 잘 그렸는데 늘 옆에 단원 그림이랑 같이 놓이는 게 문제. 나란히 놓고 보면 상대적으로 선이 딱딱하고 도식적이고, 기가 부족해 보인다.
● 청오자/종리권,여동빈/조백구/황초평(전 단원); 다음 섹션의 ●삼성도/수성노인도까지 6점이 모두 위에 표암 강세황의 평이 적혀있다. 약간 색이 바래긴 했지만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는 작품들이다. 아래 '군선도'와 더불어서 이 전시에 나온 회화작품들 중에선 핵심작들.
● 군선도(단원) ; 역시 부연설명이 별로 필요없는 유명한 작품. 8폭에 8선이 다 들어있고, 태상노군에 문창제군까지, 기타 작은 삽살강아지, 선동들, 소품들, 다 요모조모 뜯어보는대로 눈을 즐겁게 한다. 다만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왜 표구를 3등분했느냐는 것? 단원은 구도의 천재고 개별 인물, 소품을 떠나서 모든 선들이 어우러져서 하나의 통합된 전체(integrated whole)을 이루는 것이 특장점이다. 이것도 전체가 하나의 구도를 이루고 있는 그림인데 작품이 시각적으로 뚝뚝, 2번 끊어져서 보는 사람이 짜증스럽다. 어떤 기술적 문제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능하다면 기왕 일하는 김에 완벽한 관람을 위해서 하나로 했어야 하지 않을까?
다시 대략 전시순으로, 볼 만한 것들을 따라가 보면:
● 은제금도금타출신선문향합/밀화 신선무늬 노리개/신선문 화장호; 향합은 고려, 노리개와 화장호들은 조선 것. ‘austerity(긴축 혹은 검박)’를 신봉하는, 가난하고 사치품이 부족했던 국가가 조선이지만 가장 은밀한 여자들의 물건에는 장식을 막을 수가 없어서 오밀조밀하게 새긴 문양이나 장식이 볼 만하다.
● 하지장도(단원); 1804년작이니 만년작에 속한다. 단원의 만년작들은 단순히 필선에 힘이 빠져 보이는 경우와 간략한 터치가 독특한 효과를 얻은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후자에 속할 것이다. 화가만큼 서예가로 인정받지는 못하지만 이 작품에선 글씨와 그림이 잘 어울린다.
● 청자양각연당초문표형병; 형태나 색깔이나 문양이나 다 모범적인, 잘 나온 순청자. 몸체 가운데 칸을 만들어서 적은 시는 역시 하지장에 관한 것인데, 어찌 보면 그릇 자체의 조형미는 좀 파괴했다고 볼 수도 있고 이것이 있어서 독특해졌다고 볼 수도 있다. 다만 고려청자가 지금은 박물관에 소장되는 '미술품' 대접을 받지만 고려 때엔 다 실생활에 쓰는 그릇이었으니- 아마 잘 사는 집에선 청자사발에 밥 담아 먹다가 이 빠지면 문자 그대로 '개밥그릇'으로도 썼을 것이다- 술이나 꿀, 장 등등 다 담았을 것이고 이 병은 딱 보기엔 술병인데 이 멋진, 싯구가 적힌 청자병에 담아서 권하는 술맛이라니... 상상만 해도 고려사람들의 풍류가 멋지지 않은가?
● 삼인문년도(장승업); 품이 아주 높다고 할 수는 없지만, 기암괴석, 소나무, 복숭아나무, 물결, 사슴, 뭐 하나 못 그린 것이 없다. 엶은 담채가 곱고, 엷은 중에 서로 어우러짐이나 대비도 좋다. 그림 이만큼 그려야 회화의 테크닉을 다 마스터한 것이라고, 터득한 것이라고 한다면 아마도 기준을 너무 높게 잡는 것일까?(어쩌면 화가들은 비명을 지를지도 모르겠다.)
● 문창제군도(김덕성)/수성노인도(이정); 특히 이 2점, 전시 거의 끝에 있는 마지막 전시품이라 집중력이 떨어져서 대충 흘려볼 수 있는데 눈여겨볼 만한 그림들이다. 붓을 든 한 손과 한 다리를 들고 있는 문창제군은- 맨아래를 가만히 보면 얼굴이 잘렸지만 용머리에 타고 있다- 구도나 동세나 인물 표현이나 모두 뛰어나다. 이 작품에 부족한 게 있다면, 단지 단원급의 '신기'가 없을 뿐이다. '가분수'인 수성노인도, 길게 솟아오른 머리 위, 옆 빈 공간에 아마도 오복(五福)을 의미하는 박쥐 5마리를 1/4로 나눠서 절묘하게 배치했다. 인물이나 긴 손톱에서부터 옷자락의 표현까지 좋은 그림은 틀림없다. 다만 이것은 묵죽으로 유명한 탄은 이정이 맞는 것 같긴 한데, 앞에 것이 헷갈려서, 이 '이정'도 어떤 '이정'인지?
그 외엔 위에도 잠깐 언급했던 여기저기 몇점씩 걸려 있는 ● 고려 동경들이 있는데, 빛이 바랬다고 그냥 지나지 않길 바란다. 신선이든, 인물이든, 동식물이든, 그 표현이나 전체적인 배치가 모두 우아와 세련의 전범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말이 계속 중복되지만, 고려가 얼마나 우아하고 세련된 문명이었는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유물들- 꼭 번쩍번쩍 빛나야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정리해보면 전시 핵심은 금동대향로/무령왕릉출토품/단원의 것을 필두로 하는 도석인물화들. 앞의 둘을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이 좋다- 이거 하나 보러 일부러 부여나 공주를 따로 돌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도석인물화도 리움 소장 '군선도'는 1.5일까지 대여라 이젠 가도 볼 수 없긴 하지만 단원의 다른 그림들, 그리고 그림 좋아하는 사람들은 보고 싶지만 자주 안 나오는, 지금 안 보면 언제 다시 나올지 모르는 소품들을 한번에 모아 보는 즐거움이 있다.
입장료가 무료인 것까진 그렇다고 하더라도 '프로모션'으로 지난달말까지 경품(상품권)추첨행사까지 걸려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정도로 수준 낮은 전시는 아니다. 말하자면 '무료 상설전시실'이 하나 늘어난 셈인데 상설전시실만큼 사람이 없으면 이상한 일. 전시기간 중 국립중앙박물관에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상설전시실은 나중에 보고 이것부터 관람할 것을 권한다.
~3.2(일)까지.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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