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경시대화원전(간송미술관)
공연/전시 review 2013. 10. 23. 20:21 |이번 간송미술관 가을 정기전시 주제는 진경시대"화원"전이다. 화원이라 하면 일단 도화서에 적을 두었던 화가들을 말하는 것이니까 사대부, 혹은 양반 화가들의 작품은 포함되지 않는다. "진경~"만 보고 온 관람객들은 겸재 정선의 그림을 찾다가 '이거 사기 아니냐?'고 오해할 수 있으니 주의를 요한다. 아래는 전시장 층별 주요작품.
I. 1층
: 줄 안 서도 되는 1층, 입구에서 바라보이는 벽쪽으로 직행한다.
● 단원(명연담/명경대/구룡연/비봉폭/시중대/옹천/현종암/환선정); 단원 산수화 중에서 가장 잘된 축에 속한다고 볼 수는 없고, 맨 오른쪽 '명연담'부터 순서대로 네 폭이 좌측의 네 폭보다는 좀 낫다. 단원은 화면에 여백이 많을 때보다 붓을 많이 댈수록 보여줄 게 많은 화가이기 때문이다. 그 아래 깔린 것은 ● 팔송관 이의양(김정희 초상을 그린 화원 이한철의 아버지이기도 하다)의 "사생첩"인 것으로 보인다.
반대편, 즉 입구쪽 벽면에는 역시 단원의 '화조도'라고 부를 만한 것이 네 폭이 걸려있다.
● 단원(치아시영/조탁연실/국추비순/치희조춘); 오른쪽에서 두번째 '조탁연실'은 바로 지난 봄 전시에도 나왔던 것, 우리가 보기엔 가장 낫고 옆에 꿩이나 메추라기는 그래도 볼만 하지만 ‘기러기(치아시영)’는, 다른 사람이 이만큼 그렸으면 잘 그렸다고 하겠지만, 단원의 기준으로는 ‘sub-par’다.
입구에서 봤을 때 왼쪽 벽면의 진열장 2개는 이번엔 영모도로 채워져 있다.
●정홍래의 매와 호랑이, 단원의 개(모구양자), 변상벽의 고양이 그림 2점인데 모두 묘기다. 눈이 즐거운 그림들. 정홍래 것은 배경처리가 약간 상투적일 수 있지만 매 자체는 특급이고, 단원의 '모구양자'는 장면에 맞게 배경까지 모두 부드럽게 처리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입구에서 봤을 때 오른쪽 벽면의 진열장 둘, 그리고 입구 바로 왼쪽 벽면 하나, 이렇게 3개가 단원의 '(도석)인물화'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이고 이번 전시에선 1층의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다.
● (절로도해/고승기호)/(낭원투도/월하취생)/(과로도기/초원시명); 우선 큰 그림 3점 중에 '과로도기'는 보다 묘사가 세밀하고, '절로도해'/'낭원투도' 2점은 보다 여유로운 스타일. 우리의 취향으로는 '과로도기'가 더 낫다- 이유라면? 단원은 언제나 동적인 것을 정적인 것보다 좋아하고, 감정이입이 더 잘 되는 화가다. 인물이 빈 손으로 가만히 있을 때보다는 뭔가를 들고 액션을 하고 있을 때가 그림이 더 좋다. 또 인물(혹은 동물)이 하나 보다는 둘, 둘보다는 셋이 있을 때 연결되는 선들이 총체적으로 이루는 구도, 구성이 단원만이 갖고 있는 특장이다(외국인들에게 겸재나 단원의 그림을 어쩔 수 없이, 무식하고 용감하게, 하나의 키워드로 설명해야 하는 경우를 맞는다면 겸재는 ‘analytical painting’, 단원은 ‘composition by lines’라고 하라는 것이 우리가 제안하는 한가지 방법이다). 아래에 있는 소품들도 '고승기호'는 독특한 효과를 얻은 작품이고, '초원시명'은 파초를 중심으로 기물을 배치한 구도가 절묘하다.
가운데 진열장엔 ● 이인문의 소품이 8점. 그림 자체는 나무랄 데 없지만, 넓은 의미에서 '풍속인물화'로 포함시킬 수 있는 그림들은 단원이나 김득신의 그림들이 갖고 있는 ‘포인트point’가 없어서 싱거운 느낌을 준다. 장기라고 할 수 있는 산수의 배경이 많이 들어간 목양취소(초록색을 입힌 효과가 눈여겨볼만 하고 양떼의 묘사가 재미있다)/선동전약/해산선유, 3점이 상대적으로 나아 보인다.
II. 2층
: 여기는 소품 중심이고 입구에서부터 대략 화가의 연대순으로 벽을 빙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가운데 진열장 4개에 '화첩'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이 펼쳐지는 경우가 많다.
● 진재해(수변모옥?/고사한일); 중국화풍이고 묘사가 소략하지만 선에서 '클래스'가 느껴지는 솜씨다(안료는 얼핏 보기엔 금니같이 보이는데, 그냥 바랬다고 보기엔 이상하게 질감이 좀 달라서 검색을 해보니 '등황(식물성 안료인 듯)'이라고 한다). 이 사람은 '화원전'이라는 이름이 붙은 전시때마다 소품 한점씩은 나오는 것 같은데 유감스럽게도 남은 그림이 많지 않은 듯 하다. 전칭작이지만 지금 국립중앙박물관 풍속화실에 '잠직도'가 걸려 있으니 관심있는 사람은 들러보기를 권한다.
● 양기성(사자나한); 명나라 화가 오빈을 연상시키는 스타일, 보는 재미는 있다.
● 최북(추순탁속/서설홍청); 메추라기든 쥐든, 무든, 이 정도면 최고수준의 화훼영모.
● 김덕성(배민검무); 인물이 살아있는, 범상치 않은 솜씨. 이 사람도 그림이 좀 많이 남아있었다면 훨씬 더 유명했을 것이다. 바로 옆의 ● 김광백(관폭명금)도 운치가 있는 그림.
● 신한평(자모육아); 유명한 아들 덕분에 '신윤복의 아버지'라는 말을 먼저 듣게 되었지만 작품을 보면 능란한 화가다. 이 작품의 소재나, 전체적으로 주는 느낌은 현대의 박수근을 연상시키는 것이 흥미롭다. ● 김후신(통음대쾌); 제목 그대로 ‘대쾌’한 그림, 보는 사람도 유쾌해진다. 거나하게 한잔 하고서 갓이 벗겨지도록 바람같이 어디로 내달리는 걸까?
● 이인문(총석정); 이인문은 채색이 있는 쪽이 수묵화보다 나아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 그림도 바다의 파란색과 녹색, 붉은색(혹은 벽돌색?) 점들을 베푼 효과가 좋다.
● 단원(옥순봉/묘길상/정밀하게 그린 묘길상/구룡연); 모두 수작이고, 이 4점 외의 그림들도 다 볼만 하다. 줄이 잠시 한산해지는 틈이 있다면 '구룡연' 폭포 옆 암벽의 선들을 타고 못으로 빨려들어가는 것 같은 착시효과를 즐겨보기 바란다.
● 김득신(북악산); 여기가 어딘지 보는 각도가 잘 안 나오는데 시내 광화문쪽이 아니라 산 뒤에서 봐야 나오는 각도고 아마도 북악산 동편 지금의 곡장 쯤에서 그린 게 아닌가 싶다. 같은 화가의 ●(춘산귀우); 가늘고 자를 대고 그린 것 같은 선과 고른 색이 석판화 느낌을 준다. 다른 사람이 하면 필경 상당히 유치해질 터인데 김득신은 자기만의 노하우가 있어서 깔끔한 느낌으로 처리가 된다.
가운데 진열장 4개 중에 하나는 다시 ● 김득신 풍속화 4점(주중가효/강상회음/목동오수/송하기승); 김득신 풍속화는 재작년쯤 나왔던 것들이 더 '엑기스', 좋았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다만 김득신도 성취도가 꾸준히 높은 스타일의 화가이기 때문에 이것들도 다 볼만 하다. 나머지 진열장 3개는 굳이 설명이 많이 필요없는, ● 혜원전신첩중 12점(단오풍정/계변가화/월야밀회/휴기답청/노상탁발/납량만흥/유곽쟁웅/임하투호/무녀신무/쌍검대무/삼추가연/쌍륙삼매); 재미있게 보면서 각자 특히 마음에 드는 그림을 골라보면 좋을 것이다.
2층만 본다면 3,4점 정도 빼면 버릴 게 별로 없어서 최근 몇년간 전시 중에서도 보는 재미가 짭잘했던 편에 속할 것 같다. 원인은 2가지일 텐데, 첫째는 '화원'전이라 사대부들의 그림은 배제되었다는 것. 화원들이- 특히나 이런 소품들은- 평균적으로 70점짜리 그림은 그릴 수 있도록 훈련받은 사람들인데 반해서, 문인화는 진짜 대가들이 그린 것들을 제외하면 평균을 깎아먹는- 테크닉을 '감춘' 게 아니라 그냥 '없는'- 40점짜리 그림들이 꼭 섞여 있게 마련이다. 둘째는 '진경시대'로 한정했기 때문에 실력이 쇠퇴한 후대의 화원들은 배제가 되었다는 것. 다만 1,2층을 모두 합쳐서 총평을 하자면, 박물관/미술관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국립중앙박물관이 아닌 다른 데서 이만큼 그림을 내놓았다고 하면 '우와, 거기가 어디냐'하겠지만, 간송 기준으로는 상/중/하에서 '중' 정도에 해당할 것이다.
~10.2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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