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기적으로 교체되는 국립중앙박물관 회화실 교체전시. 상설전시 교체도 주기를 좀 일정하게 하고 홈페이지 '전시마당' 메뉴에 규칙적으로 올려주었으면 좋으련만, 언제나 그런 날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래는 전시실별 주요작품.

 

I. 산수화실

 

● 강상야박도/(방심석전)산수도(심사정); 심사정 작품이 모두 4점인데 들어가자마자의 이 2폭은 대표작으로 꼽을만하다. 강상야박도는 원경의 미법으로 그린 산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원경과 중경 사이, 아스라하게 구름에 가린 숲 혹은 산기슭의 먹빛의 표현효과가 탁월하다. 심사정은 특히 발묵법에 능하다(언제 다시 걸릴지 모르지만 여기서 소장하고 있는 ‘묵모란’에서 잘 볼 수 있는데, 어떤 채색 모란 그림보다도 화려하고 살아있는 모란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화가의 장기를 잘 살린 것이 심사정의 다른 산수화들보다 이 작품을 한 수준 올려놓았다고 볼 수 있다. 굳이 흠을 잡자면, ‘들길, 구름은 같이 검고, 강배 불빛만 홀로 밝네’라는 화제 싯구에 비해서는, 화면 가운데 배가 ‘하이라이트’가 덜 되어있다는 것인데 이런 것은 달리 볼 수 있는 부분. 옆의 방심석전산수도는 군더더기 없이 구도가 몹시 깔끔하고 담채도 그려진 풍경과 잘 어울린다. 또 근경, 원경의 바위들에 윤곽선이 정확하게 하이라이트가 들어가야 할 부분이 굵게 되어있어서 화면을 살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리고 나서 보면 쉽지만 그리기 전에 생각해내기는 어려운 부분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그 옆의 두 폭, 하경산수도/산수도는, 뭔가 2~20% 부족한 듯 보이는 전형적인 심사정의 범작들. 특히 마지막 산수도에서 맨아래쪽, 화면에 수직으로 올라가는 길과 그 위의 인물들은 구도감각상 이해난이 아닌지.

● 산수도(전 강세황/심환지 서); 강세황의 그림에서 일부를 떼어내서, 아래 심환지의 글씨를 붙여서 하나의 축으로 만든 것. 그림은 강세황의 진품일 가능성이 있어 보이고, 비슷한 스타일 작품이 간송에도 있었던 것 같다. 다만 심환지 글씨는 부족해서, 그림이 더 좋은 것이었으면 이렇게 붙여놓은 것이 아까울 뻔 했다.

누각아집도(이인문); 바위의 질감이나, 나무, 냇물의 표현이나, 기와집, 안의 인물, 뭐 하나 흠잡을 데가 없다. 청신한 담채 느낌도 잘 살렸다. ‘art for pleasure’라는 기치에 잘 어울릴 것 같은, 보는 즐거움이 많은 ‘엔터테인먼트’ 산수화, 고급 오락으로서의 산수화다. 대신에 가장 심오한 산수화의 경지는 아닐 것이다.

낙화담/수옥정(이인문); 반대편 전시장에 이인문의 작품이 2점 더 있다. 괴산지방의 경치, 이인문으로선 드문 실경, 혹은 진경산수라는데 역시 화가의 장기라고 볼 수 없을 것 같다. 그림 자체는 온화하면서도 어떤 의미에선 비단같이 화사한 것이, 신기하게도 암벽에 소나무와 단풍 뿐이지만 꽃무늬를 수놓은 것같이 곱다. 해서 낙화담은 그냥 볼 만하지만, 수옥정의 폭포는 옆의 이러한 암벽과 완전히 따로 논다. 물 한방울 튄 적이 없는 것 같은 절벽인데, 이런 식의 묘사는 찬성할 수 없다. ‘진경산수’ 이름을 붙이고는 더욱 그렇다.

서원아집도(병풍/선면; 단원); 같은 작품을 병풍으로, 또 부채 위에 그렸고, 모두 발문은 표암이 적었다. 지금 풍속화실에 걸려 있는 ‘홍이상 평생도’도 그렇고, 단원의 작품들을 화면을 가득 채우면서도 구도에 짜임새가 있어 볼거리가 많으면서도 어지럽지는 않다. 병풍은 보존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은 것이 단점.

 

그리고 가운데 진열장에 들어가는 소품들:

묘길상(허필); 마애불이나, 배경 수석의 표현이나 그림도 솜씨가 있고, 무엇보다 옆에 제작의 유래를 적은 글씨가 일품이다. 남은 작품도 적다고 하고, 강세황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과연 표암 강세황이 친구할 만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산수도(김후신); 김후신은 강세황과 친분이 있었던 화가 김희겸의 아들이라고 하고, 이 그림에도 표암이 짤막한 평을 적었다. 바위의 모양이나, 바위 끝에 사선으로 걸린 나무의 표현이 개성은 확실히 있는데, 대신 품이 떨어진다.

사계산수(김유성)/산수인물도(강진); 그림은 둘다 깔끔한 소품이고, 강진은 표암의 증손. 증조부만한 대가는 아니어도 이 정도면 역시 명가의 후예답다는 소리는 들을 만하다.

 

II. 화훼영모/사군자실

 

계도/묘작도(변상벽); 두점 다 변상벽의 묘기다. 계도의 병아리들은 너무 귀엽다. 또 막  벌레 한마리를 물고 와서 몰려든 새끼들을 바라보는 어미의 눈망울, 그 표정을 주목해볼 것. 화훼영모는 전문 화가들에게는 쉽다면 쉬운 장르여서 차별화가 된다면 남보다 더 꼼꼼한 관찰력, 그리고 이런 감정 표현 부분이다. 밥그릇 혹은 물그릇이 깨진 것까지 관찰도 정교하다.

묘작도는 정황상 고양이들의 영역다툼, 혹은 기싸움 후다. 나무 아래 있는 놈은 더 크고 살쪘고, 도망쳐 나무에 매달린 놈은 더 비루먹었다. 살찐 놈은 점잖게 발톱을 접고 있고 나무에 매달린 녀석은 달라붙어 있기 위해서 발톱을 있는 대로 펴고 있는 것이 이것도 실제 상황의 치밀한 관찰에 바탕을 둔 그림이다. 고양이 좋아하는 사람은 고양이 귀속 무늬를 표현한 관찰력을 보고도 무릎을 칠 것이다. 나무 위의 참새들은 아직은 날오르기 전, 여유가 있어보이는데 나무에 매달려서 머리를 돌려 아래쪽 눈치를 보고 있는 녀석이 지금은 머리 위의 참새들을 겨냥할 계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신이 공평한 것이 비록 단순한 배경이라고는 해도 나무나 바위는 동물 그림의 격에 비해서는 한 수준 아래다. 각자 장기가, 재주가 따로 있다는 것.

묵죽도2폭(신위); 언뜻 보면 허술해 보이지만 보면 볼 수록 고수의 솜씨다. 신위의 대표작은 아니어도 수준있는 그림.

묵매도(오달제)/화조도6폭(홍세섭); 묵매도 그림 자체는 아주 뛰어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오달제는 유명한 병자호란 때 삼학사의 한 사람, 걸어놓을 만한 그림이다. 홍세섭의 화조도는 품이 떨어지지만 구도나 표현에서 개성은 있고, 새들은 볼 만 하다.

묵포도(이계호); 8폭을 휘감은 포도넝쿨이 독특한, 볼 만한 작품. 인물화나 동물 그림이 아닌 식물,정물화로서 이렇게 동세를 위주로 한, 초점을 맞춘 작품이, 그것도 이만한 사이즈로 또 있는가 싶은데, 과문한 탓에 확실히는 모르겠다. 우리는 포도로 술을 담그는 문화가 없지만, 서양인들이 본다면 아마도 ‘Dionysian’(술의 신 디오뉘소스(로마의 바쿠스)적인)이라는 단어를 가장 먼저 내뱉을 것이고, 끝없이 휘감는 넝쿨은 베토벤 교향곡 7번에 빗댈 것이다.

초충도(김희성)/녹죽(신위); 초충도는 꽃잎에 적당한 담채, 예쁜 소품. 신위의 녹죽은 댓가지는 자주색 혹은 갈색, 댓잎은 녹색으로 그렸는데 절개를 표현한다기보다는 청순가련한 느낌을 준다. 

 

 

7.24일부터 교체를 시작했고, 인물화/풍속화/궁중기록화·민화실은 아직 완전한 교체전이다. 다음 주말(8.3)쯤까지는 다 교체하지 않을까 싶다. 언제까지 걸려있을지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도 11월 중순까진 교체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

 

Posted by 이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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