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겠지만, 이 글은 이 전시에 대한 리뷰가 주목적이 아니다. 논리적으로 따라가보자:

 

(i) 전시공간의 문제

- 먼저 지적해야 할 것이, 한국에 상설 서예전시 볼 수 있는 곳이 몇 곳 안된다는 것이다. 예술의 전당 서예관과 이곳 국립중앙박물관 서화관 서예실이 대표적인데, 사실 예술의 전당 서예관은 ‘상설전시’를 할 만한 컬렉션을 갖고 있다고 보기 힘들고 간송이나 리움같은 민간 미술관들은 늘 회화가 중심이다. 그렇다면 사실상 갈 곳은 여기밖에 없다는 얘기가 된다.

- 한데 전시준비에만 근 1개월, 전시 연장을 해서 설치복원까지 근 5개월 상설전시실은 폐쇄가 되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여기서 제기되는 질문: 국민들이 제대로된 서예작품을 볼 기회를 5개월간 박탈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전시인가?

 

(ii) 전시의 내용과 성격

- 한암/탄허 이 분들은 선승이고 학승이지 ‘서승(書僧)’’이 아니다. 주위에 이 만큼 글씨 쓰는 사람이 있으면 ‘달필’이라는 얘기를 듣겠지만, 과연 이 글씨들이 불교박물관이라면 몰라도 ‘국립중앙박물관 서예실’에 걸 만한 글씨일까? 아무리 봐도 내 눈에는 아닌데, 전문가들의 고견이 궁금하다.

- 글씨보다는 차라리 ‘일생패궐’- 한암 선사의 14~37세까지의 구도기, 깨달음의 과정을 탄허선사가 베껴 적어놓은 내용이 더 흥미로웠다. 이 전시는 응당 이런 부분, 그리고 탄허선사의 화엄경 번역이나 학문적 업적을 더 보강하고 전시일정을 조정해서, 테마전시실이나 특별전시실로 갔어야 옳다.

 

(iii) 가능한 반론과 답변, etc.

- 이를 테면 전시 스케줄 조정이나 전시공간이 달리 안된다? 하지만 내세울 거라고는 건물 큰 것밖에 없는 이 박물관에, 빈 공간이 없다는 게 말이 되는가? 당장 ‘불교회화실’이 있다. 내 눈대중으로는 이 방 반만 들어내면 공간은 충분할 것 같다. 애초에 고려불화 한 점 없는 이 박물관에 이렇게 큰 불교회화실이 왜 있는지 모를 일이다. 알다시피 국내에 남아있는 미술문화유산이라는 게 불에 안 타고 들어 옮기기 힘든 것들을 제외하면 죄다 17c말 이후 것들인데,  문제는 이때가 딱 불교가 쇠락한 시기라는 것. 조선후기 불화라는 것들이 민화보다 별로 나을 게 없는 수준이 많다. 민화는 궁중기록화와 묶어서 좁은 방 하나 주면서 불교회화실은 왜 이리 넓을까? 우리도 서화실 교체전시는 주기적으로 들러보는 편이지만 불교회화실은 별로 발길이 가지 않는다.  물론 글씨는 있어도 그림은 한점도 없는 전시라 이의가 있을 수 있지만 임시적인 것이고 전시실을 완전히 폐쇄해야 하는 것도 아니니 굳이 스케줄이나 공간조정이 안된다면 이 편이 낫지 않을까?

 

- 상기했듯이 소장품이 17c말 이후 것이 주력이다보니 풍속화나 초상화는 상대적으로 좋은 것을 많이 갖고 있는데, 갖고 있는 것에 비해 방은 좁다. ‘단원풍속화첩’ 같은 것은 가운데 큰 진열장 하나 펴놓고 보여주면 좋으련만, 공간이 없다. 자기 컬렉션의 강점이 뭔지도 모르고 방을 설계했다는 얘기가 아닌가? 또 애초에 전시/설계부서가 따로 놀았거나, 의사결정과정이 합리적이지 않았다는 뜻이 아닐까?

- 마지막으로 한가지 덧붙이자면, 기존 서예실 전시구성은 한쪽 벽면을 비석들을 박아놓고 빼기가 힘드니까 교체도 하지 않았다. 2칸이지만 전시실 한 면을 그냥 놀린 셈. 전시실 가운데 있는 김생 집자 낭공대사탑비도 그렇게 세워놓는 게 보존에 최선인지 잘 모르겠거니와, 비석들은 당연히 보존 상이나 연구목적 상이나 수장고에 제대로 넣고 보관을 하고 그 자리에는 서로 다른 종류의 탁본을 번갈아 전시하는 게 옳을 것이다. 기왕에 해체한 이상, 이번 기회에 바로잡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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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교가 없지만, 심정적으로 불교에 가장 가깝다. 조선은 유교사회였고, ‘숭유억불’을 모토로 삼았지만, 그래도 덕망높은 고승들은 선비들과 교유하면서 존경을 받았다. 존경받을 자격이 충분한 두분의 고승을 폄훼하는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이런 글을 적게 되어서 유감이나, 박물관이 일을 잘못 하는 것은 잘못 한다고 누군가는 이야기해야 하지 않겠는가?

 

Posted by 이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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