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한풀 꺽이지 않았나 싶지만 한동안 메르스 때문에 길에 차가 줄었다. 이럴 땐 조용히 집에서 부담없는 와인이나 뜯어서 한잔 하면서 보내는 것도 좋은 방법...

예전에 전품목 30% 세일을 할 때 한번 글을 올렸던 적이 있는 홈플러스의 테스코 파이니스트(Tesco Finest) 와인은 영국 본사의 마트 자체 브랜드 상품군에 속하는 와인들이다. 테스코 본사가 세계 와인시장의 큰손이기 때문에 판매가 책정의 기본이 되는 본사 가격 자체가- 특히 한국에선- 가격경쟁력이 있다. 더해서 와인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찾기 쉽고, 다가가기 쉽기 때문에 아마도 한국에서 가장 접근성이 좋은 데일리 와인 공급처가 아닌가 싶다.

- 지금은 분기에 한번쯤 3병에 50% 세일이 정례화된 대신에 가격표를 그만큼 올려붙였기 때문에 전형적인 '조삼모사'. 와인은 사서 둔다고 바로 썩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되면 자연히 세일이 있을 때만 구매하는 것이 합리적인 소비.

- 아래에서 가격은 할인이전의 정가(네이버 지식백과에 '파이니스트 와인'으로 검색하면 나오는 '와인21닷컴' 가격 기준)인데 참고로 표시한 것이고, 변동의 여지가 있다. 또 빈티지는 최신으로 맞춘 것이기 때문에 실제 매장에서 발견할 수 있는 물건은 재고 사정에 따라서 1~3년 정도 더 오래된 것일 수 있다.)

 

I. 3만원대 이상; 와인이 비싸다고 꼭 맛있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비례관계는 있게 마련. 여기도 상대적으로 좀 좋은 와인들은 가격대가 높은 쪽에 속한다.

 

1. 파이니스트 에르미타주: Cave de Tain, Hermitage 2007, 8만9천원

파이니스트 와인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레드. 미각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바로 마시기보다는 마시기 한 두시간 전에 미리 마개를 열어두는 것이 좋다- 입안에 머금고 있으면 질감이, 느낌이 좋은 와인.

2. 파이니스트 비냐 마라 리오하 레제르바: Baron de Ley, Viña Mara Rioja Reserva 2009, 3만4천원

과실맛이나 향이나 뒷맛까지 여러 모로 둥글둥글한, 데일리 와인의 모범.

3. 파이니스트 비냐 마라 리오하 그랑 레제르바: Baron de Ley, Viña Mara Rioja Gran Reserva 2007,

4만9천원

대략 합당한 가격차이. 가격이 비싼 그만큼 딱 괜찮다. '그랑' 레제르바는 법적으로 최소한 5년, 즉 레제르바(최소 3년)보다 더 숙성시켜서 시장에 내놓는다는 의미.

 

4. 파이니스트 샤블리 프리미어 크뤼: Union des Viticulteurs de Chablis, Chablis Premier Cru 2011,

4만9천원

우리의 취향으로는 화이트 중에선 이것이 가장 뛰어난 선택. 같은 샤르도네 품종으로 더 고가(7만9천원)의 뫼르소(Meursault)도 있지만 이것은 '산지이름값'이 조금 너무 들어간 경우- 가격 대비는 별로라는 느낌이 강하다.

5. 파이니스트 샤블리: Union des Viticulteurs de Chablis, Chablis 2014, 3만4천원

역시 대략 합당한 가격차이의 기본적인 샤블리. 사실 초고가 와인도 레드가 많지만  저가의 가격대 성능비가 좋은 와인들도 레드가 더 많다. 이 샤블리도 그렇고 아래에서 소개하는 제품들도 그렇고, 화이트에서 가격 대비 깔끔하고 다양한 품종들을 구색을 갖춰놓았다는 게 이 파이니스트 와인의 강점.

6. 파이니스트 말보로 소비뇽블랑: Yealands, Marlborough Sauvignon Blanc 2014, 3만4천원

일랜즈Yealands는 와인스펙이터 100대 와인에도 이름을 올린 적이 있는 실력파. 해서 물건은 별 문제가 없는데 가격이 의문- 애초에 뉴질랜드 와인들이 그렇게 비싸지도 않고 이 정도 가격이면 다른 데서도 괜찮은 뉴질랜드 소비뇽블랑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로 이것은 한국에서도 50% 할 때만 추천상품.

 

7. 파이니스트 프리미어 크뤼 샴페인: Union Champagne, Premier Cru Champagne Brut NV, 6만9천원

반값이면- 어쩌면 30%만 해도- 한국에서 가장 가성비가 좋은 샴페인이 아닐까?

8. 파이니스트 소테른: Yvon Mau, Sauternes 2010(375ml), 4만5천원

소테른의 와인들이 한국에서 그다지 인기가 있진 않은 것은데 아마도 처음 마시면 단 맛과 특유의 퀴퀴한 향이- 물론 그 뒤로 다른 향과 복합적인 맛이 존재한다- 먼저 와닿기 때문인지 모른다. 소테른이 본인 취향에 맞는지 시험해볼 수 있는 제품. 혹 취향에 맞는다면 샤또 리외섹(Château Rieussec)같은 괜찮은 물건이 장터에 단골로 등장하기 때문에 한국 시세로는 꽤나 합리적인 가격으로 구할 수 있다.

 

II. 3만원대 미만

: 아마도 대형마트 와인코너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상품으로 소비자들에게 가치를 제공해줄 수 있어야 하는 영역.

 

1. 파이니스트 꼬뜨 뒤 론 빌라쥬: Cellier des Dauphins, Plan de Dieu 2013, Côtes du Rhônes Villages, 2만3천원

한마디로 생기있는 와인. 이 파이니스트의 론 지방 와인들 중에선 최저가지만 가성비로는 최고다. 

2. 파이니스트 쿨라펠리 까베르네-까르메네르: Vina Ventisquero, Külapëlli Cabernet-Carmenère 2014/파이니스트 까르메네르: Vina Ventisquero, Carmenère Kuyen Colchagua 2014, 둘다 2만3천원

'Yali' 생산자 제품. 위의 것보다도 더 ‘스파이시spicy’한 와인.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게 좀 거친 것이 흠일 수 있지만 역시 가격을 감안하면 경쟁력이 뛰어난 와인들.

3. 파이니스트 소몬타노: Bodega Pirineos, Somontano 2011, 1만9천원

소몬타노 지역 고유의 모리스텔(Moristel) 품종과 시라/그르나슈 혼합. 모리스텔이 독특한 상큼한 맛을 내서 개성이 있다는 점이 장점.  영국 본사에서는 단종된 모양이고 혹 매장에 재고가 있다면 장기숙성형 와인은 아니기 때문에 너무 오래되었을 수 있다는 위험은 감수해야 한다는 점에 주의.

4. 파이니스트 몬테풀치아노 다부르조: MGM Mondo del Vino, 'La Francese' Montepulciano d'Aburzzo 2013, 2만1천원

바로 위의 셋과는 다르게 처음 입에 들어올 때 '임팩트impact'는 별로 없지만 뒷맛이 깨끗해서 밥이랑 같이 먹기 좋은 와인. 'La Francese'는 그냥 이 와인을 만든 사람이 프랑스 여성이기 때문에 이태리 사람들이 그녀에게 붙인 별명이라고.

 

5. 파이니스트 가비: Fratelli Martini, Gavi 2014, 2만5천원

우리 취향으로는 여기서 출시한 이태리 화이트들 중에선 가장 무난한 선택. 피에몬테 지역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재배된다는 코르테제Cortese 품종으로 만든다.

6. 파이니스트 소비뇽블랑 프루민트: P&F Jeruzalem Ormož, Sauvignon Blanc-Frumint 2013, 2만5천원

희귀한 슬로베니아 산. ‘프루민트Frumint’의 영향은 우리 입에는  단순 소비뇽 블랑 대비 더 쌉쌀한 뒷맛에서 보다 명확하게 느껴지는 듯하다. 같은 값이라면 상기 말보로 소비뇽블랑이 낫지만 개성이 있으면서 더 싸기 때문에 장점이 있다.

7. 파이니스트 스와틀랜드 셰냉블랑: Origin Wine, Swartland Chenin Blanc 2014, 2만1천원

뉴질랜드에 소비뇽블랑이 있다면 남아공엔 셰냉블랑이 있다. 남아공의 유명 와인메이커 아디 바덴호스트(Adi Badenhorst)가 컨설팅했다는 와인.

 

8. 파이니스트 피노 셰리: Bodegas Barbadillo, Fino Sherry NV(500ml), 2만3천원

한국에서 구하기 힘든 셰리가 어떤 스타일의 와인인지 짐작해볼 수 있는 와인. 아몬드 향이 특징적인데 샴페인만큼 차게 해서 마셔야 한다는 데 주의. 이 피노(Fino) 셰리는 셰리 중에서도 특히 맛이 아주 표준화된, 단순화된 종류기 때문에 온도가 낮아져서 향이나 맛을 잃는다기보다는 차가움이 톡 쏘는 맛을 강조하는 효과가 더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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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현욱
:

Guilty Pleasure III

miscellaneous 2015. 2. 14. 19:58 |

웬만큼 잘 나간다는 초콜렛 가게는 박스 포장만 이쁘장하게 해 놓으면 가격이 비싸도 물건이 동나서, 없어서 못 판다는 날이 바로 발렌타인데이다. 하지만 오늘의 주제와 부주제는 선물용 초콜렛이라기보다는 ‘일용할 양식’에 더 가까운 물건들, 휘태커스(Whittaker's)와 린트 엑설런스(Lindt Excellence)다.

 

(i) 개요

먼저 휘태커스는 '초콜렛에 미친 형제'가 만드는 제품. 이 뉴질랜드 회사는 잉글랜드 출신 이민자(J. H. Whittaker)에 의해서 1896년 설립된 초콜렛 전문기업이다. 지금도 가족기업이고 겉포장지에 늘 '앤드류와 브라이언Andrew & Brian'이라고 묶어서 인사하는 문제의 형제들이 바로 3대째 오너. 재벌은 아니지만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탄탄한 중견기업' 정도는 물려받았기 때문에 태어났을 때부터 각자 포르쉐 한대씩 몰고 다니면서 인생을 즐길 정도 여유는 있었던 모양인데 이 형제들은- 스피드광이란 것을 제외하면- 오로지 퍼런 작업복을 입고 매일 아침 6시반에 공장으로 출근해서 제품개발부터 시작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초콜렛을 만드는 일에만 푹 빠져서 지낸다고 한다.

자국기업이지만 뉴질랜드 안에서도 1등하고 꽤 차이가 나는 2등이었던 이 회사-와 제품의 질을 계속 업그레이드하면서 칼을 갈던 형제-에게 기회가 온 것은 2009년. 그때까지 부동의 1위였던 캐드베리(Cadbury)가- 1884년부터 뉴질랜드에서 비즈니스를 했고 현지 공장도 있다니 다국적대기업이라도 ‘굴러온 돌’이 아닌 것은 분명하긴 하다-  비용절감을 위해서 제품에서 카카오버터를 빼고 팜유로 대체하겠다고 발표하자 뉴질랜드의 '초코홀릭'들이 격분해서 말을 갈아타기 시작하면서 이 회사의 시장점유율이 폭등하게 된 것. 뉴질랜드가 인구 400여만명, 아주 큰 시장이 아닌 건 맞긴 하지만 1인당 국민소득은 2014년 기준으로 4만4천불이니 거의 웬만한 유럽 나라들만큼 사는데 캐드베리가 왜 이런 실수를 했는지는 결과적으로 의문.(캐드베리 사건과 이 회사의 내력에 관해서는 아래 뉴질랜드 신문기사에 상세하게 나와있는데 기사가 꽤 길어서 번역까지는 무리이니 관심있는 분은 읽어보기 바란다; http://www.listener.co.nz/current-affairs/business/chocolate-making-brand-of-brothers/)

 

(ii) (기본) 초콜렛

- 밀크/화이트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재료와 맛이 업그레이드된 허쉬(Hershey) 스타일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마도 가장 이해가 빠를 것인데 화이트는 그렇게 봐도 무방하겠지만 밀크는 좀 경우가 다르다. 우선 모델 자체가 허쉬라기보다는 상기한 캐드베리 'dairy milk'에 더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캐드베리는 한국에서는 낯설지만 영국에 뿌리를 둔 초콜렛 대기업중 하나인데, 요새 GS25나 홈플러스에 밀크초콜렛 바가 2종류 들어와있다). 무엇보다 이 밀크초콜렛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2가지 이유- 첫째는 뉴질랜드가 국제 우유 가격의 변동에 따라서 환율이 춤을 출 정도로 낙농업이 중요 산업인 나라이기 때문에 제품가 대비 질좋은 분유를 듬뿍 넣을 수 있는 여건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바로 초콜렛과  우유맛의 '궁합'이다. 사실- 적어도 우리의 취향으로는- 고급 브랜드의 밀크초콜렛에서 쓰는 질 좋은 카카오의 향은 때로는 재료가 아깝다는 느낌도 없지 않을 만큼 우유 혹은 분유맛하고 잘 어울리지 않는 면이 없지 않다. 한데 이 뉴질랜드 밀크는 진한 우유맛에 잘 어울리는 구수한 초콜렛으로, 밀크초콜렛의 대명사처럼 되어있는 스위스식  ‘클린 히트’ 스타일과는 다르지만 나름대로 개성있는 좋은 조합을 만들어낸다는 것. 이제 부주제 혹은 대주제(countersubject)가 들어올 타이밍이다- 곧 린트 엑설런스 시리즈.(린트는 스위스의 모회사가 인수한 다른 나라의 여러 브랜드들과 합쳐서 거의 초콜렛으로만 연매출 3조 이상을 하는 초콜렛 거대기업 중 하나. '수제'와 '장인'을 내세우는 좀더 비싼 제품군들과 허쉬/캐드베리같은 양산형 브랜드 사이에 위치해 있는데 얼핏 듣기엔 입지가 애매한 것 같지만 사실은 굉장히 장사가 잘 되는 회사- 이미 상장이 되어 있지만 팔기만 한다면 인수하겠다는 데가 줄 서 있는 알짜 기업이다.)

 이 회사가 만드는 판 초콜렛 브랜드인 엑설런스 시리즈 중에 ‘엑스트라 크리미 밀크(Extra Creamy Milk)’와 휘태커스를 비교한다면 린트에는 상기한 '클린 히트' 느낌에 더해서 마치 카라멜을 넣은 것 같은 감칠맛이 있지만 대신- 역시 우리의 취향으로는- 휘태커스 쪽이 뒷맛은 더 깊으면서도 깔끔하고, 특히나 가격대 성능비로는 객관적으로도 단연 우세하다고 보인다.

- 다크; 여기는 린트가 우위를 놓치지 않고 있는 영역. 좋은 향 같은 것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은 피차 마찬가지라서 큰 차이가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휘태커스는 전반적으로 맛이 거친 느낌이 있고 무엇보다 밸런스가 열세. 린트(다크 70%)는 쓴맛/단맛/신맛의 밸런스가 좋아서 입안에서 녹이면 단맛이 느껴진 다음에 그에 대비되는 신맛이 쫙 퍼져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를테면 와인에도 '저렴한 가격이지만 샤블리 스타일에 충실하다', 이런 식으로 설명되는 와인들이 있는 것처럼 질좋은 다크 초콜렛의 보다 저렴한 견본같은 제품. 더 좋은- 그리고 대개는 아마도 더 비싼- 다크 초콜렛들은 여기서 향이 더 풍부하고 다양하다, 그리고 때로는 쇼콜라티에가 자기가 강조하고 싶은 카카오빈의 특성에 맞춰서 이를테면 신맛을 극단적으로 강조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밸런스에도 변화를 주게 된다고 이해를 하면 전문가가 아닌 우리같은 그냥 애호가 수준에선 편리하다. 휘태커스(다크 72%) 자체는 여전히 가격대비 괜찮고 우리는 커피엔 전혀 문외한이지만 고급 원두가 아니라도 신선한 원두를 바로 볶으면 커피가 마실 만하다고 들었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여기는 단일 공장에서 최소한 로스팅부터는 직접 하는 회사기 때문에 아마도 이 제품에 적용하면 좋은 설명일 듯 하다. 우리가 '비상식량'으로 가방에 넣고 다니는 물건들 중 하나. 

※ How 'dark' is dark?

이것은 다크 초콜렛의 함량 문제. 일반적으로 '센 걸'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의 특성에 더해서 일반적으로 숫자나 점수는 단순해서 알기 쉽기 때문에 고함량이 좋다는 속설도 있고, 반면 고함량은 쓰기만 하고 별 맛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적정한' - 그것도 55~75%라고도 하고 60%대 후반~70%대 중반이라고도 하고 설도 다양하다- 비율이어야 한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사실 미각은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리 넓지도 않은 한반도 안에서도 경상도와 동해안/전라도/서울 이북으로 평안도쪽 사이에 음식의 간이 얼마나 다른가?-  우리의 결론은 그냥 '내 입에 들어왔을 때 어떤지'로 결정하라는 것이다(다만 함량이 전부가 아니라 재료와 만드는 방식도 중요하다는 것은- 이를테면 카카오를 어디 걸 쓰느냐에 따라서 70%같은 80%도 있을 수 있다- 기억해둘만한 참고사항). 옷이나 장신구는 원래 고래로 과시- 예전엔 ‘신분’이었고 지금은 ‘재력'-의 수단이었기 때문에 자기 취향이 없으면 남이 좋다는 걸 사는 것도 일리가 있지만 음식은 내 입으로, 내 뱃속으로 들어가는 것인데 내 돈 내고 남이 맛있다는 걸 사먹는다면 정말로 어리석지 않은가?

이런 맥락에서 린트 엑설런스 시리즈의 장점은, 호기심이 있는 사람은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그나마 가장 합리적인 가격으로 자기 입맛을 테스트해 볼 수 있다는 것. 70/85/90/99% 100g 바를 만들고('A touch of sea salt'라고 해서 소금을 가미한 제품이 대략 50%기 때문에 사실 아주 저함량부터 다 있는 셈인데 다만 99%는 수입을 안하는 것 같긴 하다), 70/85%는 35g짜리 소용량으로 세븐일레븐이나 올리브영 같은 데서도 판다. 100g은 보통 6천원, 35g은 2500원이니까 대략 100g당 7천원꼴.

 

(iii) 제품들

휘태커스의 대표제품은 250g 짜리 블록(Block)이고 현재 홈페이지에(http://www.whittakersworldwide.com; 업데이트가 자주 되는 사이트는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기본제품군들과 회사에 대한 설명은 충실하게 볼 수 있다) 총 20가지가 있다.

- 다크/밀크/화이트가 5종; 다크 72 /62/50%, creamy milk(33%), 화이트

- 견과류 5종; 다크(62%)아몬드, 아몬드골드, 헤이즐넛/피넛, 마카다미아

- 과일 3종; 키위, 코코넛, 라즈베리(화이트)

- 카라멜 및 복합제품이 7종; Fruit&Nuts/Berry&Biscuit/Peanut-butter/Rum&raisin(다크50%)/Hockey-Pokey/가나페퍼민트(72%)/카라멜

(이탤릭체로 된 것이 현재 수입사가 들여오는 제품들. 원래는 수입사가 전제품을 들여왔었는데 작년에 '리뉴얼'을 한다고 200g짜리 9종과 키위/마카다미아 250g 2종, 11종을 남겼다.)

- 그외 15g 단위로 낱개 포장된 12개들이 미니슬랩(mini-slab) 중에서 Almonds&Cranberry/Conflakes/Dark Peppermint(50%) 3종류가 위 블록에 없거나 다른 맛.

 

기본이 되는 초콜렛들에 대해서는 위에서 이야기했고 '뭐가 맛있냐'는 당연히 부재료에 대한 선호도 혹은 취향에 달려 있다. ‘땅콩빠다’를 좋아하는 사람은 당연히 'peanutbutter'가 좋고, 박하를 싫어하는 사람은 당연히 가나페퍼민트는 싫은 맛일 것이고, 과자 섞인 걸 좋아한다면 '베리앤비스킷'이나 '콘플레이크'를 선택하면 안전할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언급해야 할 중요한 점은 재료를 쓰는 태도, 혹은 '재료 인심'이다. 가나페퍼민트는 무슨 박하향 따위가 아니고 정말로 걸쭉한 박하시럽이 속에 가득 들어있다. 특히나 견과류 종류는 초콜렛이라기보다는 거의 '초콜렛에 버무린 견과류 범벅' 수준. 아무 검색 사이트나 ‘휘태커스 초콜렛’ 치고 이미지 검색을 하면 친절한 블로거들이 ‘단면도’를 사진으로 찍어서 올려놓은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땅콩이나 아몬드가 너무 많이 들어서 아귀힘 약한 사람은 손으로 부러뜨리기가 힘들 정도. 과일류도 그냥 과일'향'만 첨가하는 데 익숙한 한국 사람들한테는 그저 놀라운 제품들.

 

(iv) 가격

유일한 문제라면 한국에서 많은 수입품들이 그렇듯이 '수입가'다- 우리가 글 맨 첫머리에서 일용할 양식에 '가깝다'고 했지, '일용할 양식'이라고 하지 않은 이유. 우리는 뉴질랜드에 가본 적이 없지만 전언에 따르면 현지 가격은 250g 블록 기준으로 환율과 프로모션 붙는 것에 따라서 3천원~5천원대인 모양인데 이걸 개당 1만2천원(즉, 200g 짜리는 9,600원)에 '정가'를 붙여놓으면 소비자 입장에선 문자 그대로 '대략난감'(소규모 수입상 입장에서는 덜 남기고 싸게 팔아서 시장을 넓혀 놓아봐야 판권을 다른 데서 채가면 그만이니까 혹간 그럴 수 있다고 치더라도 이마트같은 대형마트에 다크카카오(62%)/키위/아몬드골드 250g 블록 3종이 ‘직수입’이랍시고 개당 8900원에 나와 있으니 이건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할는지? '세계화시대'같은 문구가 이미 진부해진 이 시점에 아직도 연경에 다녀와서 대국 물건 최소 10배 못 받고 팔면 바보 취급 받았다는 조선시대 마인드가 유통업 전체를 지배하고 있으니 이건 도대체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모를 일이다.).

- 일단 현재로선 검색사이트에서 최저가검색을 하면 200g 블록이 5천원대 후반으로 나와 있는 온라인몰들이 있는데 배송료 2500원 부담은 있지만 2개만 사도 현재로선 가장 싼 것 같다. 해외직구는 우리는 이용을 안 해봤는데 상품 구색이나 가격이 종종 변해서 그때마다 알아봐야 할 것 같고, 또 원래 소셜커머스 사이트에서 히트를 쳤던 제품인데 경험상 '제품 리뉴얼' 한번 하고 나면 한동안은 할인이 없거나 할인율이 낮기 때문에 좀 기다려봐야 할 듯.

 

우리는 애들한테 초콜렛을 못 먹게 하는데 원칙적으로 반대는 하지 않는데 카카오는 죄가 없지만 역시 설탕 때문이다. 다크 72%라도 나머지 28%는 거의 대부분 설탕이다. 그래도 초콜렛을 완전히 금지시킬 정도로 금욕적인- 혹은 잔인한- 경우가 아니라면 질 좋은 다크 초콜렛으로 입맛을 들이게 하는 게 가장 좋겠지만 우리보다 소득수준 높은 유럽에서도 결코 무게 대비, 양 대비 싼 음식은 아닐 것이고 한국에선 더더욱 구하기도 힘들 뿐더러 값도 너무 비싸다. 만원이면 예전엔 거짓말 좀 보태서 과자가 한보따리였고 요즘도 비닐봉지 하나는 가득 채운다(물론 잘 묶어서 띄우면 한강도 건너갈 수 있다는 걸 일단의 재미있는 친구들이 증명하긴 했다.). 우리가 오늘 본 휘태커스는 그래도 이 정도 재료를 써서 만들면 애들한테 가끔씩은 사줘도 되는 물건일 것이다.

Posted by 이현욱
:

Guilty Pleasure II

miscellaneous 2014. 2. 14. 00:49 |

발렌타인데이를 맞이한 초콜렛 가게 리뷰. 이번엔 국내에 단독매장이 있는 유럽 초콜렛 기업들을 모아 봤다. 대상 기업은 벨기에의 노이하우스/고디바, 스위스의 레더라/토이셔, 그리고 프랑스의 드보브 에 갈레, 모두 다섯 군데(다만 적어도 최근 1년 안짝으로 우리가 방문한 적이 있는 업체로 한정했기 때문에 명동점 공사로 문닫은 다음엔 가본 적이 없는 레오니다스의 경우는 신뢰할만한 벨기에의 대표기업 중 하나지만 일단 제외). 

 ‘발렌타인데이’를 빌미로 삼긴 했지만 선물용 패키지 추천은 아니다. 단지 한국에서 1년중 가장 초콜렛이 많이 오가고 많이 맛보는 시절이니만큼, 이를 계기로 초콜렛에 관심이 생긴 분들을 위해서 맛과 합리적인 가격(‘value for money’)를 같이 고려한 ‘연중 소비’할 수 있는 초콜렛 추천이 목적. 각 회사의 내력에 관한 정보의 출처는 모두 각 회사 홈페이지 아니면 위키피디아에 공개된 것들이다.

 

 

I. 노이하우스(Neuhaus)

① 기본정보

1857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약사 장 노이하우스가 설립. (명동 신세계 본점에 있던 매장이 문을 닫았기 때문에 이젠 국내에는 매장이 없고, 기존 수입사가 아예 손을 떼지 않았나 싶다.(2015.2.12.));

 http://www.neuhauschocolates.com/ (영문홈페이지) 

② 특징, 맛, 가격

- 처음에 들어왔을 땐 고가였지만 혼자 가격인상을 안 하는 사이에 남들은 가격을 올리거나, 새로 들어오는 집들은 처음부터 비싸게 들어왔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착한 수입초콜렛' 비슷하게 된 경우. 프랄린/트러플 개당 2500원의 가격은 이젠 국내 수제초콜렛집과 거의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 하지만 맛과 질, 역사를 감안했을 때 여기 소개된 나머지 4군데 어디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명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에 규모가 꽤 컸던 국내 유일의 매장은 이젠 매장이라기보다는 '매대' 비슷한 수준. 왜 영업이 더 잘 되지 않는지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는 복잡한 문제라서 우리가 분석할 수 없는 일이고,

- 다만 맛에 관한 문제라면 이 집 초콜렛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친해지는 시간’이 필요한  독특한 스타일을 고수한다는 것. 일단 포장상자를 열면 제일 먼저 초콜렛 자체에 약냄새 비슷한 약간 퀴퀴한 향이 느껴지고, 또 아몬드/헤이즐넛 프랄린(과 그 변형, 복합제품들)이 대표/주력 상품이기 때문에 견과류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또 상극이다. 하지만 견과류 알레르기만 없다면 한번 먹어봐서 잘 모르겠다면 한두번 더 사서 시험해볼 가치가 있는 집- 만약에 그 결과 당신이 처음에 퀴퀴하게 느껴졌던 이 집 초콜렛과 속에 든 아몬드/헤이즐넛 잔두야가 알고보면 입안에서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킨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면, 팬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한테는 이 집 것이 아몬드/헤이즐넛 프랄린의 판단기준, '레퍼런스reference'다.  

③ 주요제품

● 프랄린/트러플 약 20종. 본사는 대략 80종 안팎을 생산하는 것 같은데, 먹어보고 싶은 것들이 많이 안 들어와 있어서 유감. 프랄린은 코르네도르Cornet Doré/사탄다크Satan Dark/아르누보Art Nouveau, 트러플은 티라미수 추천; 이 집 스타일의 좋은 샘플들이다.

● 단일산지single origin 까레carré; 작은 정사각형(까레의 뜻) 다크 초콜렛. 상투메/에콰도르/파푸아뉴기니/탄자니아, 4종류. 상투메(70%)가 가장 진하고, 탄자니아(75%)는 카카오함량은 5% 더 높지만 맛은 65%처럼 느껴질 정도로 가볍고, 차맛이 난다. 간혹 어떤 '싱글오리진' 태블릿들은 전문가들이 먹어 보면 어떨지 몰라도 우리는 한 판을 다 먹어도 '도대체 무슨 맛이 다르다는 거야?'하고 묻게 만드는데, 이것들은 전문가가 아닌 관심있는 일반인도 한조각으로 맛의 차이를 느낄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 바종류는 밀크/밀크프랄린/다크(52~55%) 등 대략 3,4종류 정도 들어와 있고 45g바가 5500원, 대략 100g에 1만2천원선.

 

II. 고디바(Godiva)

① 기본정보

1926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요제프 드랍스가 설립. 1967년 미국의 캠벨수프에 인수되었고 지금은 터키 음식료재벌 소유라는데 가족기업에서 매각된 이후에도 사업은 점점 더 번창한 경우에 해당한다. 매장은 신사동가로수길(기점; flagship store) 외에 삼청동/광화문/청진동/서래마을/현대백화점 본점,무역센터점; 자세한 위치는 홈페이지(http://www.godiva.kr/) 참조.

 특징, 맛, 가격

- 노이하우스식 ‘퀴퀴함’은 빠졌지만 벨기에 초콜렛 특유의 진한 맛은 그대로 살아 있어서 바로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즉 가장 보편적인 호소력이 있는 스타일의 초콜렛을 만든다. 프랄린 종류도 일정 수준 이상은 되지만 '비교우위'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고디바의 강점은 역시 트러플쪽이다. 종류도 가장 다양하고 초콜렛 껍질(shell)을 화이트/다크, 이런 식으로 2중으로 씌우기도 하고, 속에도 넣은 것이 많아서 여러 겹의 자극으로 달콤상큼, 입 안에서 터지는 폭탄 같은 맛을 선사한다. 맛보다는 이 집은 수입사가 책정한 가격(프랄린 개당 3800원/트러플 4400원)에 문제가 많아서 좀 긴 설명이 필요하다:

- 일단 마케팅/브랜드 이미지 관리도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기술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입장을 바꿔서 만약에 노이하우스 사장이 혹 한국에 들렀다가 왜 당신네들은 비싼 고디바를 그렇게 높이 치면서 우리 초콜렛은 안 사주냐고 불평한다면, 우리의 대답은 이것이다: “그러게 광고를 좀 잘하지 그랬어?”고디바는 초콜렛도 잘 만들고 영업도 잘하기 때문에, 다른 회사들보다 20~30%쯤 더 받는 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게 '정도'라는 게 있다. 2500원 vs. 3800~4400원이라니, 벨기에에서 노이하우스하고 이런 식으로 가격차를 내서 고디바가 버틸 수 있을까? 어쩌면 본점이 문을 닫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한국수입사의 가격책정은 명백히 도를 넘어선 것이다.

- 객관적으로 가격의 '거품'을 비교할 수 있는 근거가 하나 더 있다- 수입사 입장에 최대한 유리하게 고디바가 자체 공장을 갖고 있는 미국이나 같은 아시아라도 여건이 좀 특수한 홍콩은 배제하고, 우리랑 국민소득이 비슷한 대만과 비교해보자는 것이다. 대만은 개당이 아니라 무게로 달아서 파는데, 트러플은 100g에 620NTD(1대만달러= 약 40원 쳐서, 한화 24,800원), 프랄린 종류는 100g에 530NTD(약 21,200원) 정도 한다. 트러플이 평균 14g 정도 한다고 보면 대략 100g에 7개,  곧 개당 3천5백원 안팎. 이게 면세점이 아니고 시내 백화점 가격이다! 우리는 한국사람들이 왜 대만사람들보다 20% 더 내고 사먹어야 하는지 합리적인 이유를 잘 생각해내지 못하겠다.

고로 대만 수준까지 가격을 내릴 때까지는 자체적으로 불매운동중...

③ 주요제품

● 까페가 같이 있는 매장엔 세트메뉴가 있다;  (아메리카노 혹은 티백+트러플 1종류+프랄린 1종류) 이렇게 해서 11,000원. 이것도 싼 건 아니지만 앉아서 한 두시간 뭔가 할 일이 있다면 자릿세까지 감안하면 가장 합리적인 가격으로 맛볼 수 있는 조건.(말로는 '불매운동중'이라고는 했지만, 지나던 길에 도저히 그냥 지나갈 수 없으면 우리가 간혹 이용하는 메뉴다.)

● 그래도 2개로는 간에 기별이 안 간다, 맛이 너무 궁금하다면 박스세트 종류보다는 진열장에서 프랄린/트러플을 골라서 사기를 권한다. 초콜렛도 신선도가 중요한 음식이고, 반드시 그런 건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진열장 안에 낱개로 넣어놓고 파는 것들이 미리 박스 포장된 것들보다 낫다고 보면 된다.(만약에 진열장에서 바로 산 것들이 뭔가 굳었거나 묵은 듯한 느낌이 든다면 그 가게는 재고회전이 잘 안되고 있다는 위험신호일 가능성이 높다.)

참고로 바는 한국에 종류를 많이 들여온 것 같진 않고 가격은 100g에 1만6천원 수준.

 

III. 레더라(Läderach)

① 기본정보

1926년 스위스에서 베이커리로 출발. 초콜렛은 창업자의 아들 루돌프 레더라 2세가 1962년 시작했고, ‘레더라’ 브랜드로 일반소비자들에게 판매를 시작한 것은 불과 10년도 채 되지 않는다. 따라서 한국엔 무척 빨리 들어온 편. 장은 경희궁/서울파이낸스센터/신세계 강남,경기점/롯데백화점 잠실점; 자세한 위치는 역시 홈페이지(http://www.laderach.co.kr/) 참조.

② 특징, 맛, 가격

아마 우연의 일치겠지만 흥미롭게도 여기 소개된 중에는 가장 '젊은' 브랜드답게 초콜렛 자체도 가장 모던한 느낌, 진한 맛보다는 상대적으로 깔끔하고 시원한 스타일.

대표상품은 '후레쉬초콜렛'- 견과류와 과일을 다양하게 섞은 무정형의 판초콜렛이라고 보면 될 듯한, 부러지는 대로 잘라서 무게 단위로 저울에 재서 팔고, 가격은 100g에 1만1천원. 하지만 프랄린/트러플(개당 2800원) 종류도 다 수준이 높아서 그르나슈 100% 와인의 뒷맛처럼, 동심의 세계로 이끄는 듯한 유쾌한 달콤함으로 끝나는 것이 이 집 맛의 특징. 자기 스타일을 확립하고 있는 집이다. 작년 4분기쯤 10% 안팎으로 전제품 가격인상을 단행해서 가격 메리트가 약간 없어진 것은 유감.

③ 주요제품

● 현재 국내에서 초콜렛 음료는 맛/종류를 종합적으로 평가했을 때 이 집이 단연 종합 1위. 달지 않고 뒷맛이 깨끗한 스타일.

● 그리고 상기한 후레쉬초콜렛 종류 중에 숨어있는, 브라질70% 다크. 이 회사가 직접 투자했다는 브라질 농장산 트리니타리오(Trinitario)종 카카오로 만든 싱글 오리진(single-origin) 다크. 처음 입에 넣었을 땐 맛도 향도 상큼하고 혀에 닿는 부분이 넓어질 수록 쌉쌀한 맛이 퍼진다. 가격대비 가치(value-for-money)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지금 한국에선 다크 초콜렛의 '정답'. 이보다 싼 것들은 맛이 너무 떨어지고 좀 먹을만한 것들은 대부분 100g에 1만5천원 이상, 즉 3~40% 이상 비싼 가격을 줘야 하는데 그 가격에 이보다 맛없는 것들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1주일에 뻔한 맛의 스타벅스 커피 한잔 덜 마시고 대신 이걸 50g쯤 사서, 잘 밀봉해서 가방속에 넣고 다니면서 우울할 때마다 조금씩 부러뜨려서 먹으면 삶의 질이 한단계 업그레이드 될 거라고 보증할 수 있다.

● 프랄린/트러플 종류 중에서는 라즈베리/코코넛/카라멜 등을 재료로 쓴 것들 추천. 즉, 원래 맛과 향이 강한 재료를 속으로 쓴 것은 우리 입맛엔 벨기에 스타일은 가끔 너무 진하고 걸쭉하고 레더라의 깔끔한 처리가 낫게 느껴질 때가 많다. 밀크트러플도 이 집 스타일의 좋은 표본.

 

IV. 토이셔(Teuscher)

① 기본정보

1932년 스위스에서 아돌프 토이셔가 설립. 매장은 을지로 페럼(Ferrum)타워(지하철 을지로입구역 3/4번 출구) 1층; 홈페이지 http://www.teuscher-seoul.com/

② 특징, 맛, 가격

- 초콜렛 불모지인 한국에 이 집 매장이 있다는 건 우리같은 초콜렛 애호가들에게는 행운이다. 좋은 재료를 쓰는 건 고가의 유명메이커들한테는 기본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아마도 재료를 정직하게 다루려고 가장 애쓰는 집 중에 하나.

- 우선 간판상품은 샴페인 트러플. 유명한 이유는 첫째는 이 집이 '원조'라는 것. 또 샴페인이 다루기 어려운 재료라서 간혹 유사품 중에  '마크 드 샴페인'이라고 붙은 것은 샴페인이 아니라 '마크 드 샴페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브랜디의 일종을 사용한 것이라고 한다. 둘째는 들어가는 샴페인이 다름 아닌 '돔페리뇽'이라는 것인데 글쎄, 모르긴 몰라도 와인평론가라고 해도 14g짜리 초콜렛 속의 크림에 일부 포함되는 분량이면 돔페리뇽인지 모에 샹동인지 맛으로 분간할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단지 토이셔는 무조건 최고의 재료만 써서 만든다는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물론 광고효과를 노린 '상술'로 볼 수도 있지만, 이 집에서 만든 화이트초콜렛 바를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든다. 부담되는 가격에 아무나 좋아할 수 있는 맛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추천하진 않지만 이 집이 어떤 자세로 초콜렛을 다루는지 알 수 있는 상품. 비록 하얗게 착색은 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 외엔 고무냄새 비슷한 퀴퀴한 냄새를 다 빼지 않고 남겼고 분유냄새 안 나고, 그렇게 달지도 않다. 아마 유럽에서도 우리가 지난달 서울 살롱 뒤 쇼콜라에서 맛 보았던 발로나(Valrhona) 오팔리스opalys 스타일로, 분유냄새 살짝만 나면서 달콤하고 입에서 사르르 녹는 부드러운 질감을 갖게 만든다면 팔리기는 더 많이 팔릴 것이고, 이 집이 그런 스타일로 만들 실력이 없는 것 같진 않다. 좀 덜 팔리더라도 원재료의 특성을 최대한 살려보려는 고민을 반영한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 화이트 초콜렛

초콜렛을 좋아한다는 사람들 중에도 화이트초콜렛은 말하자면 엑기스는 다 빠진 '찌꺼기'인 카카오버터만 들어 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초콜렛이 아니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의 견해는 다르다; 카카오버터도 카카오의 일부라는 것. 화이트초콜렛 바를 즐길 줄 모른다면 당신은 99% 초코홀릭이지 100%는 아니다.  그리고 '잡식성'인 우리는 상기한 발로나 오팔리스 스타일도 좋아하지만 만약에 '화이트초콜렛의 탈레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면, 그건 '분유냄새와 설탕으로 카카오버터를 도살한 맛'일 수도 있다. 우리의 생각을 바꾸게 한 제품을 소개하자면 피에르 마콜리니(Pierre Marcolini)의 Carre² 시리즈 중에 있는 화이트초콜렛(chocholat blanc)- 처음 입에 물었을 때 퀴퀴한 냄새, 텁텁한 맛을 다 그냥 놔두고 소금과 바닐라를 더해서 마지막에 멋진 여운이 있는 뒷맛을 만들어낸다. 이걸 먹고도 화이트초콜렛도 진지한 제품일 수 있다는 설득이, '개종'이 되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다. 서로 존중해야 하는 취향의 차이.

③ 주요제품

● 무엇보다 주류를 사용한 트러플의 1인자; 샴페인 밀크/다크 외에도 소테른와인/벨에포크/베일리스/보드카까지, 다양한 종류가 있다. 샴페인트러플은 샴페인향이 진하다기보다는 전반적으로 맛에 기름기를 없애주는 느낌, 담백하고 깔끔한, 계속 먹어도 질리지 않는 그런 맛. 반면 보드카나 베일리스는 술냄새도 더 강하고 속에 크림 자체가 '쌉쌀한' 주류의 맛이 그대로 살아있는 스타일. 고디바나 레더라가 한다면 과일향처럼 '향'을 이용하는 것이고 새콤달콤 더 맛있게 만들 수는 있겠지만 이런 스타일의 맛은 아닐 것이다.

그 외엔 ● 시실리 오렌지를 사용했다는 오렌지필도 부담없이 시험해볼만한 제품.

● 바는 25/50/100g 3가지 크기로 다양한 종류가 있다. 다크는 55/66/77/88/99%로 카카오함량이 11%씩 높아지게 만든 것이 특색. 가격은 100g당 1만8천원~2만원선.

 

V. 드보브 에 갈레(Debauve et Gallais)

① 기본정보

1800년 프랑스에서 설립. 청담동(큰 길에서 '질샌더' 매장을 찾아서 그 옆 골목으로 올라가는 게 가장 찾기 쉽다)/한남동에 매장이 있다. 홈페이지(http://www.debauve-et-gallais.co.kr) 참고.

② 특징, 맛, 가격

- 외우기 어려운 긴 이름은 프랑스의 약사 드보브와 그의 조카 갈레의 이름을 합친 것. 영국이야 아직 왕실이 남아있지만 왕실이 사라진지 오래인 프랑스는 왕실납품업체로 이만큼 존속한 경우가 드물다고 한다. 초콜렛 회사 설립은 1800년이지만 루이16세의 약제사였던 드보브가 1700년대 후반에 약 먹기를 싫어했던 마리 앙트와네트 왕비를 위해서 만들었다는 '피스톨'부터 시작해서, 처음 개발한지 100년, 150년되었다는 제품들이 즐비한 '역사'가 이 집의 최고 자산.

- 고가로 말하면 여기가 고디바보다 한수 위. 애초에 프랑스 본사 자체가 ‘럭셔리luxury’ 이미지와 최고가 정책을 추구한다는데, 한국에 와서 그 가격이 배가 되었다면...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혹 근데 왜 여기는 ‘불매운동’ 안하냐고 묻는다면, 이 집은 2003년에 생겼다니까 한국에 들어온지 10년이 넘었지만 별반 파장을 일으킨 적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이집처럼 조용히 혼자서 장사하는데 대한민국이 무슨 공산주의 국가도 아니고, 돈 많은 사람들은 가서 사먹을 것이고 비싸면 내가 안가면 그 뿐이지, 얼마 받으라고 따질 이유가 없다. 하지만 고디바처럼 서울시내 주요 상권마다 점포를 내면서 다른 업체들을 자극해서 '고디바발 초콜렛 가격 인플레'가 걱정되는 파문을 일으키는 쪽은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 우리가 보기엔 고디바 수입사는 한국의 경제력, 구매력을 과대평가하고 있거나 아니면 한국에서 고가 수입초콜렛은 어차피 한철 장사, 기본가를 높이 책정하면 '발렌타인데이 한정패키지'는 더 비싸게 받을 수 있을 테니까 남는다는 계산인 것 같은데, 어느 쪽이든 장기적으로 결과는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고디바가 망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고 더 많은 점포로 한국에서 오래 장사하기를 바라는 쪽이고, 단지 장기적으로 그렇게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한국이 점점 더 잘 살게 되는 것 외에는- 시장의 파이 자체가 커질 수 있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더 많은 사람이 초콜렛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③ 주요제품

● 초콜렛 봉봉(개당 7천~8천원) 종류는 편차가 좀 있는 것도 같아서, 어떤 것은 좋은 레시피는 오래 간다, 별로 물리지 않는다는 걸 보여줄 수도 있고 어떤 것은 같은 프랑스산의 장 폴 에방같은 ‘신흥세력’- 이 집 입장에서 보기에는-의 비슷한 종류 제품의 상큼발랄함에 밀리는 느낌도 있다. 다만 5종류밖에 먹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평가는 보류.(위에 소개한 다른 업체들의 경우는 모두 최소 12종류 이상은 먹어본 집들이다.)

● 고함량(80~99%) 다크 초콜렛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미각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은 이 집 제품들이 매력이 있을 것이다(같은 함량의 피스톨보다는 까레를 추천한다).

그 외 ● 가격경쟁력은 없지만(1만4,5천원부터~ ) 핫초코도 맛은 독특하다.


 

(대부분 수입초콜렛들이 다 마찬가지지만 특히 이 집은 가장 고가여서 맛은 궁금하지만 가격이 너무 부담스럽다, 혹은 한번 방문해서 맛은 마음에 들었는데 많이 사기는 너무 부담스러웠다는 사람들은 서울보다는 해외여행 기회를 이용하는 것도 방법. 프랑스는 너무 멀지만 같은 아시아권에 홍콩이나 대만에도 매장이 있다. 우리는 홍콩점은 가보지 못했고- 아마도 가격은 가장 저렴하지 않을까?- 대만점은 타이베이 101빌딩 인근 벨라비타 백화점 지하2층, 에스컬레이터 바로 앞에 있다. 완전한 매장이 아니라 백화점 식품관의 한 코너 격이기 때문에 상품구색은 서울점만 많이 못하지만 가격은 최소 30%이상 저렴. 한국에서 7~8천원 받는 봉봉 종류가 여기선 1200NTD(한화 4800원 미만), 낱개로 3천원하는 피스톨이 한국돈으로 2천~2천2백원선.)

 

***

 

인간의 감각 중에 미각처럼 문화와 지역에 따라서 편차가 심한 것도 없을 것이다. 무엇이든 '사람이 먹어서 죽는 것만 아니라면', 지구촌 어딘가의 작은 마을에선 최고의 미식일지 모른다. 위에 제품 추천을 하긴 했지만 그것은 1년에 두어번 고가 초콜렛을 사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지 '노이하우스는 헤이즐넛 프랄린/토이셔는 샴페인 트러플' 이런 식의 공식을 만들려고 한 것은 아니다. 먹어보면 레더라의 트러플이나 토이셔의 헤이즐넛로그가 더 맛있게 느껴질 수도 있다. 아니, 이런 고가 초콜렛이 아니라도 어떤 제과 대기업이 만든 더 싼 판초콜렛이라도 마찬가지다. 같이 먹은 다른 사람들이 혹 아닌 것같다고 하면 의심은 들 수 있지만 한 두번 더 먹어봐도 변함이 없다면, 그건 드디어 당신의 'taste'를 입맛을, 취향을 ‘발견’한 것이다! 우리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초콜렛 ‘입맛’을 발견하기를 바란다. 초콜렛이란 정말로 매혹적인 물건이고, 세계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이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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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lty Pleasure

miscellaneous 2013. 12. 29. 21:17 |

각 단어의 뜻에서 충분히 의미가 조합이 되기 때문에 굳이 숙어로 사전에 싣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인터넷에 찾아보면 나오는 단어들이 있다. 이 글의 제목도 그 중에 하나. 구글에 검색하면 나오는 미리엄-웹스터(Merriam-Webster)사전의 무료 온라인판에 따르면 1907년에 알려진 첫 용례가 있다고 하니 언어로는 그리 유래가 깊진 않은 셈. 우리말로는 ‘죄책감’이라기보다는, 좋긴 한데 좋아하면서도 뭔가 ‘찔리고’, 이걸 좋아해도 되나 좋아하면 안되는데 하고 ‘켕기는’, 정도의 의미이거나, 혹은 좋아한다고 ‘대놓고 남들에게 말하기 부끄러운’- 이를테면 B급영화 취향 같은 것- 정도의 의미일 것이다. 물론 후자의 의미로는 그 취향이 주류가 되면 더이상 ‘guilty’ pleasure가 아닌 거니까 이 표현이 적용되지 않는 것이 된다.

 

 

오늘 우리의 'guilty pleasure'는 초콜렛이다. 단 것이라서 많이 먹으면 이 썩으니까, 몸에 해로우니까- 특히 집안 내력에 당뇨라도 있다면!-, 또 어른이, 특히 남자 어른이 밝히면 안되는 거니까(즉, 초콜렛은 애들이 먹는 것이라는 상식 아닌 상식에 의거해서) 등등... 초콜렛은 'guilty'한 이유도 다양하다. 하지만 그만큼,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지어는 그 이상으로, 초콜렛이 주는 'pleasure', 쾌감, 즐거움, 쾌락은 깊고도 진하다. 우리는 초콜렛 전문가나 쇼콜라티에 지망생은 아니지만 순수한 초콜렛 애호가로서, 소비자의 입장에서 2~3회 정도 글을 올려보고자 한다. 오늘은 그 첫번째로서 내년 1월 코엑스에서 열리는 '살롱 뒤 쵸콜라'  참관 추천.

 

I. 살롱 뒤 쇼콜라(Salon du Chocolat)

(i) 간단 행사개요

 

행사 홈페이지의 소개를 좀 말이 부드럽게 편집해보자면: '초콜렛은 물론 음료나 초콜렛을 응용한 디저트들, 카카오를 비롯한 원부자재에서부터 기계장비, 포장재, 서적에 이르기까지, 초콜렛에 관한 모든 것을 다루는 전시회 혹은 페스티벌'. 부대행사로 유명 쇼콜라티에들의 시연, 세미나, 그리고 초콜렛 패션쇼, 각종 공연이 있다. 1994년 프랑스에서 시작했고 지금은 11개국 20개 도시에서 개최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올 1월이 처음이었고 내년(2014) 1월이 2회째.


(ii) 가 볼만한 이유

 

부대행사? 글쎄, 마술쇼도 있고 초콜렛 패션쇼도 있고, 그렇긴 한데, 취향 문제일 수 있지만 딱히 그게 볼만 해선 갈 곳은 아니다. 그보다 유명 쇼콜라티에들의 시연이라든지 끝나고 부스에서 자신의 '우상'들과 사진을 찍을 기회같은 것은 쇼콜라티에가 꿈인 사람들에게는 꽤 매력적일 것 같다. 하지만 만드는 데는 관심이 없고 먹는 데 주로 관심이 있는 사람들한테는 이런 행사에서 가장 중요한 게 '시식'일 텐데,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특히 먹어보고 싶은 것일 수록 별로 없다. 수제 초콜렛은 고가이기도 하고 하루에 대략 1만명쯤만 온다고 해도 물량도 부담스러울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냥 먹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가 볼만한 이유라면 남은 건 오직 하나, 즉, 비행기를 타고 나가지 않아도 한자리에서 한국에 없는, 아직 들어와 있지 않은 유명부티크 초콜렛들을 구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여기서 올 1월 먹어봤던 것들 중에 특별히 인상깊었던 것을 소개한다.

 

● 장 폴 에방(Jean-Paul Hévin); 3일째인가 갔더니 작은 초콜렛 박스는 이미 다 나갔고 남은 게 아몬드 박스밖에 없어서 한통 샀는데, 아몬드나 재료를 좋은 걸 쓰는 건 고급제품의 기본이라고 해도 초콜렛 코팅 솜씨가 예술이었다. 뭐에 뭘 '씌웠다'는 그런 느낌이 아니고 마치 카카오와 아몬드와 사탕수수를 접붙여서 만든, 처음부터 그런 맛으로 태어난 신종열매를 먹는 것 같은 느낌. 이런 섬세함이라니, 일본애들이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짐작이 갈 것도 같다. 이번에는 좀 다양한 제품을, 충분히 가져온다면 좋을 것이다.

 

● 피에르 마콜리니(Pierre Marcolini); 벨기에의 스타. 여성소비자들을 겨냥했는지 쇼콜라티에의 잘 생긴 얼굴을 전면에 내세운 전단지가 인상적이었는데, 하지만 맛을 한번 보면 얼굴로 한몫 보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요즘‘빈투바(bean-to-bar)’가 대세라지만 소비자들에게 어필(appeal)할 수 있는 스타일, 방식으로 여기보다 잘 하는 데가 있을까 싶다(초콜렛 견문이 넓은 사람한테 우리가 꼭 한번 물어보고 싶은 것 중에 하나다). Carre²라는 이름의 정사각형 초콜렛바가 특기할 만한 상품. 와인처럼 산지, 보다 구체적인 농장과 생산자 이름이 붙은 것(grand cru de propriété)들이 보통 초콜렛 혹은 카카오 하면 떠오르는 일반적인 아프리카/중남미 산지 외에 베트남이나 페루, 쿠바산까지 있고 그 외에도  싱글오리진(single origin) 블렌드, 무설탕 밀크초콜렛 등등 종류도 다양하다. 이 시리즈는 분명 기존의 명가들하고는 차별화되는, 뭔가 새로운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였다. 봉봉/프랄린 종류나 이 집에서 영어로는 ‘treats’라고 부르는, 오렌지나 진저, 견과류를 섞은 것도 좋지만 예산제약이 있다면 이 Carre² 바의 ‘grand cru de propriété’ 시리즈 중 하나를 꼭 사서 맛보기를 권한다.

 

이외 Franck Fresson/Bernachon/Bonnat/Bouillet 등이 1회때 참가했던 곳들이고, 올해는 Rochoux/Shapon(이상 모두 프랑스)이 추가로 참가한다고 페이스북에 공지가 되어 있다. 기타 언급할 만한 곳으로는,

● 발로나(Valrhona); 여긴 유명 쇼콜라티에들에게 반제품을 공급하는 말하자면 ‘도매상’, 대기업이라서 시식물량이 충분하다. 여러가지 다크 초콜렛 바 종류를 먹어보고 입맛에 맞는 걸 골라 사면 되고, 값도 여기서는 그나마 싼 편에 속했던 것 같다.

 

 

다른 데 비해서 행사규모가 소략하기 때문에, 해외 행사의 수준을 기대했다가 제1회 행사를 보고 실망했다는 분들도 있는 것 같은데, 한국에는 아무도 들어와있지 않기 때문에 위에 언급한 두 집만 해도 한번 방문할 가치는 있다. 다만 2014 참가업체 리스트가 아직 업데이트가 되어 있지 않아서, 가보기 전에 한번 확인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 프랑스에서 주관하는 행사라서 행사가 진행이 되는 한은 최소한의 프랑스 쇼콜라티에들은 참가가 될 텐데, 마콜리니가 한국 시장은 흥미가 작다고 판단했다면 이번엔 오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주의할 점이라면, 유명세와 고가를 근거로 둘이서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그런 맛을 기대한다면 거의 실망할 것이 틀림없다는 것.  입 안에서 터지는 폭탄같은 맛을 원한다면 고디바(Godiva) 트러플에서 멈춰야 하고, 거기가 자극의 한계다. 거기서 위로 더 올라가면 더 부드럽고, 향이 다채롭고, 여운이 있는, 뒷맛이 더 고급스러운 쪽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혹은 그래서, 초콜렛의 세계가 보다 넓다는 걸 한번 맛보고 싶은 분들은 필히 행사 홈페이지에서 사전등록해야 하는 행사다(제2회는 혹 관람료가 무료가 될지 아직은 모르지만, 1회 경우라면 등록을 안 하면 작년엔 1만5천원을 받았었다- 초콜렛이 몇개인가!).

 

(2014 참가업체 리스트를 확인해보니 작년 제1회 참가했던 업체들은 대부분 빠졌고 Rochoux/Chapon

/Bellanger 등이 올해 참여하는 업체들. 행사규모가 많이 줄어든 것으로 봐선 이 행사가 한국에선 오래 못 가는 게 아닌가하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2014.1.12)

 

2014.1.16(목)~1.19(일), 코엑스 Hall D1,2.

행사 홈페이지: http://www.salonduchocolat.co.kr/

 

(아, 작은 팁tip을 하나 추가한다면, 작년엔 마콜리니 부스 말고는 카드 받는 데가 거의 없었다. 현금을 인출하려면 전시장밖으로 나갔다 와야 하는 불편이 있었는데  우리에게는 불편하다기보다는 '다행'이었던 것이, 지갑에 든 현금만 털리고 끝났기 때문. 그래서 머리에 떠오른 것인데, 단 것만 보면‘ 지름신’이 곧장 강림하시는 분들은 처음부터 미리 예산을 정해서 카드는 쓰지 말고 ‘털릴 만큼의’ 현금만 가져가는 것이 좋다.)

 

 

Posted by 이현욱
:

Tesco Finest?

 

: 레이블(label) 이름은 좀 거창하게 들리지만 사실 마트의 자체브랜드 와인이다. 대부분 무난하고 안 좋게 말하면 뭔가 2% 부족한 느낌. ‘맛’만 가지고 추천하려면 고르기가 쉽지 않다. 제아무리 대량구매라지만 가격의 압박이 있기 때문에 과실맛도 좀 나고 여운도 좀 있고... 등등 해서 종합적으로 균형잡힌 와인을 만들려고 하면 이렇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차라리 뭔가 확실하게 한쪽으로 개성이 있는 게 더 나을 것도 같은데 이런 게 영국사람들 스타일, 혹은 취향이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싼 와인도 비싸게 팔고, 비싼 와인은 더 비싸게 파는 한국에서 주머니 얇은 사람들이 와인 공부하기 가장 좋은 곳 중에 하나가 이 홈플러스 와인코너, 특히 이 파이니스트 와인들이기도 하다. 다양한 산지의 다양한 품종들을 비교적 해당 스타일에 충실하게 소개하기 때문인데, 예를 들어 파이니스트 샤블리(Chablis)를 마셔보면 샤블리의 더 진지한(그리고 대개 더 고가인) 와인들은 어떤 맛이겠다는 걸 추측을 할 수 있다. 경제적인 예산으로 자기 취향(taste), 입맛을 형성하는데 도움이 된다.

 

***

 

위에서 맛으로만 추천하려면 고심해야 한다고 했지만, 아래 셋은 싸기만 한 것은 아니고 모두 추천할 만한, ‘맛있는’ 와인들이다.(아래 가격은 모두 정가고, 지금 여기서 30% 할인이 들어가 있다.)

 

1. 파이니스트 꼬뜨 뒤 론 빌라쥬: Cellier des Dauphins, Plan de Dieu 2011, Côtes du Rhônes Villages, 1만7천원

한마디로 생기있는 와인. 처음 입에 머금었을 때 ‘impact’도 있고, 그르나슈 품종 특유의 달콤한 뒷맛도 있다. 병에는 ‘Red grape blend’라고만 써있는데  테스코 홈페이지에 간단한 리뷰를 인용해놓은 걸 보면 통상적인 ‘GSM(Grenache/Syrah/Mourvèdre)’ 블렌드로 보인다. 이 파이니스트의 론 지방 와인들 중에선 최저가지만 최고가인 Cave de Tain의 ‘에르미따쥬(Hermitage)’말고는 이것보다 확실히 나은 건 없다. 즉, Chateauneuf-du-Pape나 Gigondas를 2병 살 바엔, 차라리 에르미따쥬 한병하고 이걸 한병 사는 게 낫다는 것. 한박스 사서 부담없이 데일리로 마셔도 좋다. 계속 이렇게 품질이 좋을 수 있는 건지, 운인지는 내년에 2012 빈티지를 한번 더 봐야 알 것 같다.

 

2. 파이니스트 쿨라펠리 까베르네-까르메네르: Vina Ventisquero, Külapëlli cabernet-carmenère 2012, 1만7천원

위의 것보다 더 ‘spicy’한 와인.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게 좀 거친 것이 흠일 수 있는데, 다만 2012 빈티지고, 어느 정도 골격이 있기 때문에 ‘장기’숙성은 안되더라도 3,4년 정도는 놔두면 좀더 부드러워질 수는 있다. 까르메네르가 섞인 걸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괜찮다면 칠레산 데일리로는 몬테스알파 까베르네소비뇽보다 낫다. 몬테스알파가 무슨 잘못이 있는 게 아니라, 비정상적인 한국의 가격 때문. 이젠 마트에서 할인이 들어가도 2만원대 후반 아래로는 못 사는데 영국 테스코 홈페이지에서 이 와인은 8.99파운드, 몬테스알파 카베르네소비뇽이 11.39파운드다. 이 정도, 20~30% 정도의 가격차라면 모르지만, 2배 이상 차이라면 몬테스알파를 경쟁력 없게 만드는 수준의 맛은 최소한 보증할 수 있다.

 

3. 파이니스트 소몬타노: Bodega Pirineos, Somontano 2011, 1만4천원

소몬타노 지역 고유의 모리스텔(Moristel) 품종과 시라/그르나슈 혼합. 모리스텔이 독특한 상큼한 맛을 내서 론이나 국경에 인접한 다른 스페인 지방 와인과는 전연 다른 세계, 개성이 있다. 그냥 가볍게, 깔끔하게 끝나서 여운이 너무 없는 게 흠. 다만 이 가격에 모든 걸 다 갖출 순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만한 개성이 있으면서 뒷맛이 고약하지 않은 것만 해도 나쁘지 않다. 지방의 고유품종을 잘 살려서 만든 정직한 와인.

 

그 외 샴페인이라든지 위에 언급한 에르미따쥬(Hermitage) 같은 것들이 괜찮은데 가격이 에러. 테스코 가격 그대로 받는 것이 아니라 보르도/부르고뉴/론/샴페인/뉴질랜드 피노누아 같은 것들은 홈플러스에서 ‘한국식’ 와인가격을 반영해서 애초에 2배쯤  붙여놓았기 때문에 30% 세일해도 ‘공정가격’은 아니고, 한 50% 할 때까지 기다려볼 필요가 있다. 구체적인 개별품목 가격 및 정보는 아래 테스코 와인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http://www.tesco.com/wine(“All wines” 탭에서 우하단 ‘finest’를 클릭하면 102종이 나온다. 가격은 요즘은 파운드가 좀 약세지만 변동성을 감안해서 1파운드=2천원으로 계산하는 게 알기 쉽다.)

 

 

 

~7월 17일(수)까지. 점포별로 취급하는 파이니스트 와인 종류 숫자도 차이가 있고 재고도 불규칙한 편이라서 와인쇼핑이 주목적이라면 방문하기 전에 전화로 확인하는 것이 좋다.

 

*** 

 

 

말이 나온 김에 가격정책에 관해서 얘기를 더 하자면, 지난 2월에서 3월에 걸쳐서 한달 동안 이 파이니스트 와인 전품목 50% 세일을 할 때 아까 그 '에르미따주'가 8만원이었던 것 같은데 이번에 보니 9만1천원이 됐다. 세일 안 하면 안 살 테니까 30~50% 세일에 대비해서 값을 올리고, 사람들은 더 비싸졌으니가 세일 기다려서 더 안 사고... 악순환이 아닌가? 그냥 처음부터 정직하게 4만~4만5천원 붙여놓고 연중 고른 물량을 파는 게 낫지 않은가? 에르미따주는 원래 생산량도 적어서 한국에서 4만원에 이 정도 품질로 달리 구할 데가 있는지 의문이기 때문에 팔리는 건 틀림없을 것 같다.

 

국내 와인시장 규모가 고가 와인으로 폭리를 취해서 소수 수입상이 배부르던 시절은 이미 지난 것 같은데, '와인 대중화'는 뭔가 벽에 부닥친 느낌이다. 불경기라 사람들이 싼 와인을 사가는 것, 그래서 마시는 '병수'가 늘어나는 것을 '대중화'라고 부를 수가 있을까? 싸고 괜찮은 와인을 많이 소개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와인 취향'을 갖게 되는 게 진짜 '대중화'가 아닐까?


 

국민소득은 2만불을 훌쩍 넘었는데 국산 맥주는 폭탄주나 소맥제조외엔 별 쓸데가 없고, 소주는 맛보다는 취하고 싶어서 먹다 보면 그 맛에 인이 박이게 되는 술이니까 시장의 잠재력은 틀림없이 있다. 사실 위에 여기가 와인공부하기 좋은 곳이라고 썼지만, 한국은 와인수입상들도 숍들도 천편일률적이어서 조금만 희소성이 있는 산지, 품종이기만 해도 더 진지한 와인을 구할 데가 없어서 재미가 연장이 안된다. 특정지역이나 스타일에 특화할 수 있는 '스페셜리스트' 와인숍이 필요한데, 이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와인을 알고 마시게 되고, 좋아하는 스타일이 생기고, 저변이 넓어지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저가부터 고가까지, 마트에서부터 스페셜리스트 와인숍까지  '와인생태계’가 갖춰져야 시장의 파이가 커지고 모두가 이익을 볼 수 있다. 누군가는 이 작업을 해줘야 하는데 당장 눈 앞에 이익에만 급급한 국내 와인수입사들에게 기대하긴 힘들고, 반면 홈플러스는 테스코에서 들여오는 와인만으로 와인코너를 꾸려갈 수 있으니까 달리 눈치보거나 신경쓸 것도 없다. '외세'를 등에 업은 홈플러스라도 왜곡이 없는 정직한 가격에 앞장섰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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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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