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2013년 7월 회화실 교체전시II(풍속화/인물화/궁중기록화,민화실) & 테마전 '미국으로 간 조선악기'
공연/전시 review 2013. 11. 2. 18:59 |(시간은 좀 많이 지났지만, 지난 7월 교체된 국립중앙박물관 회화실 상설전시 두번째 부분. 전시는 일단 예정상은 11.17(일)까지. 교체주기가 비정기적이고 교체에 걸리는 시간도 있어서 통례로는 한 1주일은 더 걸려 있을 가능성이 높은데 확실치는 않다. 아래는 실별 주요작품.)
III. 풍속화실
● 동래부사접왜사도(작자미상); 작자미상이지만 그림이 얌전하다. 부감법으로 그린 동래의 산세 표현이 좋고, 초가집/기와집/기타 건물들, 동래부사의 주행차 이외에 지나는 행인들 등등, 디테일을 봐도 실력이 상당한 화가가 틀림없다.
● 단원풍속화첩 중의 2점(담배썰기, 우물가); 단원은 구도의 천재다. 선으로 짜내는, 작품 전체를 하나로 통일시키는 구성. ‘담배썰기’에서도 화면 상단 중앙에 얼핏 균형이 맞지 않아 보이는-그리고 어색하게 달려 있는 것 같은- 위에서 누르고 있는 툭 튀어나온 왼쪽 팔뚝을, 아래 수평으로 놓인 작두와 연결해서 ‘ㅗ’자를 만들어 볼 것. '우물가'의 두레박줄은 여인의 치맛자락의 선과 미묘하게 얽히고, 그 선을 따라 올라가면 두레박의 손잡이는 뒤편 여인이 이고 있는 물동이를 가리킨다. 이것으로 단순하지만 멋진 대각선 구도의 완성!
● 연당의 여인, 전모 쓴 여인(신윤복); 이 '연당의 여인'은 교체되지 않고 계속 잔류중인 그림. 생황과 담뱃대를 쥐고 있는 이 여인은 보나마나 기생일 것인데,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 여러 가지 감상sentiment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전모 쓴 여인', 버선발은 맵시가 있고 부풀어오른 치마폭의 귀여운, 혹은 단아한 여인. '前人未發 可謂奇(이전 사람들은 펼치지 못하였으니, 가히 기이하다고 일컬을 수 있다)', 이 한줄로 온전한 의미를 알 수는 없지만 마치 본인의 그림에 대해서 자평한 것 같은 문구인데 필치도 개성이 있다.
● 잠직도 2폭(작자미상); 그림에는 단원의 이름이 적혀있지만 박물관에서 '작자미상'으로 분류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인물의 묘사는 별반 단원의 화풍은 아니다. 다만 원경의 산에서부터 내려오는 구도라든지, 집의 담장, 인물들, 부분 부분은 볼 만한 데가 없지 않다. 보존상태가 좋지 않고 개성이 좀 부족해 보이지만, 단원 그림이라면 별로라도 단원의 것이 아니라면 괜찮은 솜씨.
● 잠직도(전 진재해); 전칭작이지만 진재해 그림은 전칭작까지 쳐도 숫자가 많지 않을 것이고 다른 데서 본 것들도 대부분 소품들이었다. 이만한 사이즈의 그림은 보기 힘들 터이니 내리기 전에 한번 봐둘 만한 그림이다. ‘잠직도’라는 제재 자체가 원형은 중국 것인 모양인데 이것은 왼쪽 두폭보다 조선그림 냄새는 별로 안 나는, 보다 중국화풍에 충실한 스타일. 청록산수에 공필, 이것도 보존상태는 안 좋지만 바위, 나무, 가옥, 세세히 뜯어 보면 솜씨가 느껴지는 그림. 색은 다 벗겨졌지만 청록의 산, 바위가 특히 좋다.
IV. 인물화실
● 추사 김정희 초상(이한철); 얼굴 아래만 보면 잘 그렸고, 관복이나 발받침대나 S급은 아니라도 A급 이상의 좋은 솜씨. 하지만 정작 얼굴은, 얼마나 실물에 부합하게 그렸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수준이 낮다. 인물의 기운이, 정신이, 온전하게 들어있다고 보기 어렵고 표현에 개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품이 떨어진다. 화가가 어떤 의도를 갖고 이렇게 그렸든, 이것은 찬성하기 어렵다.
그 외 ● 조반부부 초상; 조반은 조선의 개국공신이고, 전시설명을 보면 조선후기의 이모작이긴 하나 전기의 특성은 볼 수 있다는 것. 그림 자체가 잘된 건 아니지만 확실히 많이 볼 수 있는 조선후기 초상화들과는 ‘스타일의 차이’가 있다는 걸 볼 수 있다. 옆의 채용신 그림은 사진도 아닌 것이 그림도 아닌 것이, 동양화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서양화도 아닌, 그로테스크grotesque한 것. 사실 채용신 그림들이 우리가 보기엔 미학적으로 수준이 떨어지는 것인데, 스타일이 특이하고 이 시기, 구한말을 대표하는 것이라 미술교과서에도 단골, 각종 전시에도 빠지지 않는 그런 경우다.
가운데 진열장엔 초본에 가까워 보이는 ● 허목/송시열 초상이 있고, 반대쪽에 들어있는 ● 신선도(전 조세걸)는 전시설명대로 이 화가의 명성에 부합한다기보다는, 필법이 부드럽긴 하지만 기가 약하고 품이 떨어진다. 그렇다고 대단히 공교하지도 않아서, 모작이거나 이 화가의 범작이 아니라면 그 명성이 허명인 것이 되는 셈인데, 아마도 후자는 아닐 것이다. 우리는 그림이 남아있는 게 많이 없다고 해서 옛 문헌에 나오는 옛 사람들의 명성이나 평가를 믿지 않는 것에는 반대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인물화실은 최근 본 중에 가장 범작들이라 할 수 있다.
V. 궁중기록화/민화
● 장생도(작자미상); 사슴이나 복숭아의 표현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 훈련을 제대로 받은 화가의 솜씨지, 보통의 아마추어적인 민화는 아니다. 작자미상이지만 전시설명에도 궁중화원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적어도 눈에 감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그림.
● 요지연도; 주 목왕이 서왕모를 만나서 요지에서 잔치를 벌인다. 이것은 비유하자면 멸종한 위대한 선조의 흔적을 보여주는 후대 생물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도 나쁘지 않고 보는 재미가 있는, 볼 만한 그림이지만 고려 때나 혹은 그 이전 시대의 그림이었다면, 훨씬 더 화려하고 볼 만하게, 솜씨있게 풀어냈을 장르.
***
#테마전 ‘미국으로 간 조선악기’
; 전시주제 자체는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에 출품되었다가 미국 박물관에 기증되었던 악기들 8점 정도라서, 한번 휙 보면 다 볼 수 있는 것인데 대신 보상하듯이 악기를 소재로 한 조선그림 4점이 모두 수준급. 이 박물관에 그림 보러 가는 사람들은 들러 볼 만 하다.
● 선동취적(단원); 옷자락도 멋진, 이 '선동'은 사실은 여자깨나 울렸을 것 같은, 매력이 넘치는 인물이다. 뛰어난 그림. 굳이 흠을 잡자면 영지가 별로 신묘한 기운이 없어서, 옆에 있는 붉은 호리병도 살아있는데, 살아있지 않다는 것. 어쩌면 이 영지는 ‘가짜’라는 설정이었다? 아마도 그건 아닐 것 같긴 하지만... 같은 그림으로 사슴배경이 들어간, 더 잘된 것이 같은 화가의 신선도 8곡병 중의 한 폭. 이것은 봤다면 1996년초에 한번 봤을 텐데 얼마나 더 좋았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여기 나와있는 이것만 해도 충분히 훌륭한 그림.
● 후원유연(이명기); 이명기는 초상화 외 다른 장르들은 한급 낮게 평가되긴 하지만 이 그림은 수작이다. 다만 풍류를 즐기는 인물들보다는, 배경의 바위나 이름모를 식물이나 사각의 못이 더 볼만 하긴 하다.
그 외 ● 월하취생(김양기)도 운치가 있고, ● 거문고 음을 맞추는 기생들(신윤복)은 '여속도첩' 중의 한점, 진열장 한개에 그림 4점이 다 수준이 있다.
이 조선악기 테마전은 12.1(일)까지; 장소는 상설전시관 1층 테마전시실(특별전시실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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