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볼 만한 공연/전시(2019.10.16 현재)
I. 올해의 핵심 공연/전시(Highlights)
● 크리스티안 틸레만 & 빈필(Christian Thielemann & Vienna Philharmonic Orchestra); 개런티는 2위라도 실력이 2위인 것은 아니다- 베를린필하고는 '다른' 사운드. 다만 공연마다 연주의 질이 얼마나 고르냐는 측면에서는 확실히 베를린필이 우위다. 해서 전체적인 공연의 완성도는 틸레만이 얼마나 단원들의 집중력을 유지시킬 수 있느냐에 달렸고, 특히 프로그램이 브루크너 8번 한곡이기 때문에- 보통 80분, 빨리해도 70분대 후반, 템포를 느리게 잡으면 90분도 넘어간다- 더욱 그렇다. 여담이지만 이제 웬만하면 좋은 오케스트라는 롯데콘서트홀로 데려오는 게 좋겠다는 게 음악애호가들의 바램- 홀이 좋을수록 못하는 오케스트라는 오히려 듣기가 괴롭고, 좋은 오케스트라는 더 위력을 발휘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이젠 비싼 티켓값 내고 빈필 사운드를 예술의 전당에서 듣긴 좀 아까운 의미가 있다.
- 11.1(금) 저녁 8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43/34/25/16/7만원(1~3일 사흘 스케줄인데 2일은 전석초대, 3일 대구 공연은 진작에 매진이고, 1일 공연은 아직 한두 자리씩 취소되어서 나오는 표는 있는 것 같다.)
II. 그외 볼만한 주요 공연/전시
● 아르토 노라스 & 랄프 고토니(Arto Noras & Ralf Gothoni); 2019 서울국제음악제 프로그램 중 하나. 노라스보다 첼로 잘했던 사람은 이제 다 죽고 없다- 앞으로 적어도 50년 안에 누가 다시 태어날지도 우리는 의문. 노라스가 42년생이니 올해 우리 나이로 78세, 기량은 예전 같지 않겠지만 소위 '전후세대'도 이젠 역사책 속으로 퇴장하는 단계다- 곧, '너 아무개가 첼로하는 거 직접 들어본 적은 있냐?'가 자랑이 될 거라는 말씀. 프로그램은 베토벤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 중 'Bei Männern~'주제에 의한 7개의 변주곡"/야나첵 "동화(Pohádka)"/류재준 첼로 소나타/베토벤 "마술피리 중 'Ein Mädchen oder Weibchen~' 주제에 의한 12개의 변주곡"/쇼스타코비치 첼로소나타.
- 11.6(수) 저녁 8시, 예술의 전당 IBK챔버홀, 5/3/2만원
● 안드라스 쉬프 & 카펠라 안드레아 바르카(András Schiff & Cappella Andrea Barca); 내년이 바로 베토벤(1770~1827) 탄생 250주년인 관계로 올 가을부터 내년 봄에 걸친 '2019~20 시즌'부터 기획공연들이 시작이다. 쉬프가 1999년 창단했다는 동반하는 실내악단은 상설연주단체는 아니고, 아리송한 이름은 본인의 이름을 이태리어로 번역한 것이라고. 프로그램은 베토벤 협주곡 2/3/4번(이틀에 전곡은 스케줄이 잘 안 맞았던 모양인지?; 우리가 놓쳤는데 1/5번은 아래 보다시피 다음날 인천에서 공연이 있다).
- 11.12(화) 저녁 8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20/15/12/9/6만원
- 11.13(수) 저녁 8시, 아트센터 인천 콘서트홀, 12/9/7/5/3만원
● 화가의 시선, 조선시대 실경산수화; 흥행이 괜찮았던지 전시가 9월말부터 3주간 연장이 되었다. 그냥 편하게 둘러봐도 좋지만 눈을- 거창하게는 '안목'을- 훈련하고 싶다면 아주 좋은 연습문제들이 많은 전시. 몇 개만- 우리의 모범답안(?)과 함께- 예를 들자면,
(i) '연강임술첩' vs. '신묘년풍악도첩' : 겸재 '연강임술첩'(전시장 설명판엔 '임진강에서의 뱃놀이', 리플릿엔 15번 우화등선·웅연계람도)는 우리가 알기로는 필력에 우열의 차이가 있는 서로 다른 2개의 화첩이 존재한다. 이 전시는 시치미 뚝 따고 어느 쪽인지 안 적어놓았기 때문에 연습문제로 딱 좋다. 부근에 있는 '신묘년풍악도첩'(중 금강내산총도/장안사/보덕굴) 같은 다른 검증된 겸재 그림과 필력을 비교해서 본인이 직접 이게 '우본'인지 '열본'인지 결정해보시라. (ii) '해동명산도첩' vs. '동유첩' : 사실 위 '연강임술첩'은 원체 필력이 느슨하기 때문에 눈썰미가- 그리고 양심이- 있으면 알아보기 별로 어렵지 않다. 그래서 그냥 '진적이노라' 우길 수가 없으니까, 이게 말하자면 정리가 덜 된 '현장사생본'이라 그렇다고 좋게 포장해준 주장도 있다. 자, 그럼 여기서 이번엔 단원 이름으로 된 '해동명산도첩'(전시장 설명판엔 '강원지역 명승 스케치')와, 단원화풍을 베껴서 그린 작자미상의 '동유첩(전시장 설명판엔 '금강산 유람 기념 그림')을 비교해보시라. 기왕이면 계속 왔다갔다 하는 수고를 좀 하더라도 '해산정' vs. '해산정', '옹천' vs. '옹천', 이런 식으로 같은 장면을 그린 그림들을 눈에 잘 담아서 비교해보면 더 알기 쉬울 것이다. 취향에 따라 다를 수는 있겠지만 이번에는 왠지 전자가, 색칠도 안 한 '초본' 쪽이 그림이 더 좋아보인다는 분들이 계실 것이다. 물론 '해동명산도첩'이 현장이 아니라 여행을 마친 후에 사생본들을 깔끔하게 정리한 초본일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그러나 우리의 요점은 현장에서 그렸는지의 여부가 아니라 동양화가 무슨 서양 유화처럼 물감을 덕지덕지 바른 것도 아니고, 채색을 좀 했다고 해서 기본 스케치 실력의 차이를 덮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위 우화등선/웅연계람 같은 그림들이 겸재의 손에서 나왔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정리'의 문제가 아니라 '스케치'에 해당하는 기본적인 선들의 수준이 너무 낮기 때문이다. (iii) '동유첩' vs. '병진년화첩' : 이번엔 상기 '동유첩'과 역시 단원의 이름으로 되어 있는 '병진년화첩'(전시장 설명판엔 '충청지역 명승 그림')을 비교해보시라. 필력의 우열이 어떻게 보이는가?(우리가 아는 한 이 전시에 나온 작품들 중에 진위 여부에 논란의 여지가 없는 100% 확실한 단원의 진적은 없으니, 라벨은 개의치말고 양쪽 그림만 열심히 들여다보면 된다.) 우리가 보기엔 '필치가 다소 섬약한' 것으로는 후자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물론 같은 산수화라도 화풍의 차이가- '동유첩'이 더 사실적인 그림이고 '병진년화첩'쪽은 보다 부드럽게 그려야 하는 스타일이다- 존재하지만, 화풍의 차이를 떠나서 '원조'와 '추종자/모방자' 사이에 존재해야만 하는, 그런 수준의 차이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무엇보다 다시 상기 '해동명산도첩'으로 돌아와서 '병진년화첩'과 다시 비교를 해보면 이번엔 다시 한번 동일인의 손에서 나왔다고 보기 힘든 수준의 차이가 있고, 역시나 톤이나 그림의 운치까지 가기 이전에 기본 스케치 실력 자체의 차이이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 나온 단원의 전칭작들 중에서는 이 '해동명산도첩'이 필력이 가장 낫지만 진적인지까지는 우리는 잘 모르겠다. 단순히 이 정도 비교만으로 진적이라고 주장하기는 근거가 너무 박약하고, 훨씬 정밀한 고증을 요할 것이다. 반면 '병진년화첩'의 경우는 단원의 기준작으로 사용되기 이전에 정말 진적이 맞는지부터 입증이 되어야 하는 그림이다. '유명한 아무개 선생도 진짜라고 했다'면 '권위에의 호소'이고, '원래부터 진짜였는데 뭘 증명하냐'고 한다면 바로 '선결문제 요구의 오류(begging the question)'이다. 둘다 논리적 오류의 고전적인 예로 빠짐없이 언급되는 부류들이다. 미술사도 근대학문일진대, 근대학문을 한다는 사람들이 기초적인 논리적 오류를 범해서야 되겠는가? (iv) '해악전도첩' vs. '해산도첩': 이번에 처음으로 화첩 전체가 공개되었다는 김응환 '해악전도첩'(전시장 설명판엔 '금강산과 강원지역 명승 그림')은 그림만 총 60면이다. 이런 분량의 화첩이 다 온전하게 보존되려면 운이 꽤 좋아하는데, 안타깝게도 우리가 보기엔 그림들이 필력이 고르지가 않다. 이것은 '대조군'으로 김응환의 종손 김하종의 '해산도첩'(전시장 설명판엔 '강원지역 명승 그림')이- 이건 딴 이야기지만, 보시다시피 이런 식으로 전시품 이름을 풀어놓는 게 관람객한테 혼동이나 안 일으키면 다행이지, 무슨 도움이 되는지 우리는 모르겠다. 그림은 도자기하고는 경우가 다른 것이다. 이런 상식이 안 통하면 그게 바로 '관료주의'다- 바로 인근에 있다. 예를 들어 '총석정' vs. '총석정'을 비교해보면, 벌써 파도치는 모양 표현한 것만 봐도 김하종은 작은 할아버지한테 한참 못 미치는 실력이다. 한데 '해악전도첩' 전시가 시작되는 단발령/장안사/..., 이쪽 그림들을 보면 되레 김응환쪽이 필력이 꽤 밀린다. 요는 이것도 같은 사람의 손에서 나온 게 아니라는 얘기. 그림들이 필법은 대략 같고 필력만 차이가 나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것은 그냥 위조는 아니고 원본을 보고 베껴 그린 모사본일 가능성이 높다. 시기는 모사한 화가가 김하종(1793~?) 세대보다도 기량이 한수 아래인 걸로 보아 아마도 19세기 중엽 이후가 유력할 것이다. 즉, (19세기 중반 이후 어느 시점에) 당시의 소장자 본인이 마련해둔 사본이거나, 아님 주인 허락을 받고 원본을 빌려다가 만든 사본일 것이고, 어느 쪽이건 원본이 훼손된 다음에 소장자 본인 혹은 나중에 훼손된 원본+모사본을 동시에 입수한 사람이 원본의 낙장을 모사본으로 채워서 '합본'을 해서 만든 것이 현재의 화첩인 것. 자, 이제 마지막 문제; 총 60면 중 현장에 전시된 36면의 그림 중에서, 과연 몇 면이 김응환의 원본이고, 몇 면이 임모본일까?(힌트를 주자면 김응환은 나뭇잎 하나, 혹은 거의 점 크기에 가까운 짧은 기둥 하나 긋는 데도 허투로 그은 획이 없다. (같은 수종의) 나무 vs. 나무, 건물 vs. 건물로 비교를 해보시라...) ~ 10.20(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상설관 특별전시실, 성인 3천원 ● 10년의 기록 그리고 새로운 이야기; 호림박물관 신사분관(=호림아트센터) 개관 10주년 기념 전시. 그간의 주요 전시에서 중요 유물을 발췌한 전시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컬렉션 하이라이트' 비슷한 성격이라, 아직 이곳을 방문한 적이 없다면 효율적인 관람기회. 원래 10월말까지였는데 최근 연말까지 두 달 연장되었다. ~ 12.31(화)까지, 호림아트센터, 성인 8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