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 비교감상

브람스 첼로소나타 2번 F Major, Op. 99

이현욱 2014. 1. 19. 19:49

(독주악기로 대접은 받되 레퍼토리가 좁아서 고민인 첼로에 있어서 브람스가 남긴 2개의 소나타는 3개의 바이올린 소나타가 바이올린 레퍼토리에서 갖는 것보다 훨씬 큰 의미, 비중을 차지한다. 완성도는 원숙기의 작품인 이 2번이 더 높지만 1번 e-minor(Op.38)는 브람스의 초기작, 전연 다른 느낌, 정서를 갖고 있고 브람스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특유의 '멜랑콜리melancholy'를 짙게 느낄 수 있다- 특히 2악장의 트리오trio는 브람스로서는 굉장히 감상적인sentimental, 너무나 아름다운 멜로디. 연속극의 여주인공의 테마나 배경음악으로 써도 좋을 것 같은데 사람들은 잘 모르는 듯 하다. 뭐 우리가 직접 쓴 건 아니지만, 어느 쪽 하나 깨물어도 안 아픈 쪽이 없을만큼 둘다 아끼는 작품. 1번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이번엔 일단 2번을 먼저 올린다.)

 

 

 

Brahms cello sonata No. 2 in F Major, Op. 99

 

 

I. Allegro vivace

II. Adagio affettuoso

III. Allegro passionato

IV. Allegro molto

 

 

(i) 작품개요

- '노파심' vs '진심' 

이것은 다시 한번 템포와 감정 지시어에 관한 문제인데, 일단 단서는 일견 가장 해석에 이견의 여지가 없어보이는 3악장에서 비롯한다. 이 3악장은 Allegro passionato라고만 되어있지만 내용상 스케르초라고 봐서 큰 무리가 없다. 브람스의 다른 유명한 스케르초는 교향곡 4번 3악장 Allegro giocoso, 피아노협주곡 2번 2악장 Allegro appasionato인데, 보다시피  베토벤처럼 'scherzo'라는 이름을 직접 사용한다든지 ‘molto vivace’나 ‘presto’같은 빠르기를 쓰는 적은 없다. 전부 빠르기는 알레그로에 'giocoso', 'appasionato'라는 지시어로 이게 스케르초 분위기다, 라는 것을 표현하는 것. 사실 음악의 내용 자체도 그렇게까지 빨라야 하는 것은 없고 베토벤의 스케르초처럼 너무 빨리 하면 외려 비효과적일 가능성이 많다. 그래서 위 2곡 같으면 이 정도로 충분한 것이, 전곡 안에 allegro보다 빠른 템포가 없어서 ‘(a)passionato’ 정도로 스케르초 분위기를 지시하면 그 곡 안의 다른 allegro와 맞추던지 아니면 조금 더 빠르게 하든지는 연주자의 단지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데 문제는 이 곡에는 1악장엔 allegro vivace, 4악장엔 molto가 있다는 것. 빠르기말만 보면 분명히 allegro vivace/

molto가 그냥 allegro보다는 빨라야 할 것 같은데 스케르초가 그럼 1/4악장보다 느려야 하는가?

우리의 대답은 '아니오'인데, 그 이유는 음악의 내용상 ‘vivace’와 ‘molto’가 일종의 ‘노파심’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기엔 브람스는 내 예술, 내 뜻을 어떻게 분명하게 잘 전달할까보다는 어떻게 하면 오해를 받지 않을까에 더 신경을 쓰는 '노파심'형 인간에 가깝다.(혹은 우리처럼 브람스를 좋아하지만, 그래서 ‘노파심’이라는 단어에는 거부감을 느낀다면 극단적인 해석으로 기우는 것을 저어한다는 의미에서 ‘중용지도(中庸之道)’라는 표현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즉,

1악장은 음악의 내용상 이를테면 ‘maestoso’ 정도가 더 어울려 보인다. 브람스의 의도는 너무 과장되게, 위엄있게 하려고 하지말고 전진하는 음악의 흐름을 살려달라는 것. 빨리하라는 말은 아니다. 4악장도 마찬가지, 음악의 내용상은 이를테면  ‘론도 칸타빌레(Rondo cantabile)’ 정도가 가장 적당해 보이는데 여기서도 '매우molto'를 붙인 브람스의 의도는 역시 너무 로맨틱하게 노래하려고 하지말고 음악의 흐름과 절제의 미덕을 살려달라는 것. 2악장의 ‘affetuoso’는 ‘감정을 담아서with emotion‘, 혹은 ‘다정하게affectionately’로 해석할 수 있는데 전자라면 중립적이지만 후자라면 이 역시 ‘노파심’으로 볼 수 있다. 브람스는 짝사랑의 대가지 모차르트처럼 연인들이 서로 다정하게 사랑을 속삭이는 아다지오, 느린 악장은 없기 때문이다. 이 2악장도 음악의 내용상은 격렬하고 격정적인 감정의 토로 혹은 고백인데 이것을 너무 과도하게 격하게는 하지말라는 것. 사실 어떻게 보면 바로 스케르초 악장에 '(a)ppasionato'를 붙여서 표시하는 것도, '노파심'의 의미가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즉 빠르기는 알레그로로 되어있지만 이것은 '열정적으로' 연주해야 하는 음악, 악장이고, 열정을 표시하는 한가지 방법은, 흥분하면 말을 빨리 하는 사람이 있듯이, 템포를 당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서 우리의 2가지 결론은, 첫째는 이 3악장은 1/4악장과 템포를 맞추면 충분하고, 너무 서둘지만 않는다면 조금 당겨도 상관없다는 것- 다만 1/4악장보다 더 늘어지는 것은 브람스의 의도를 오해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쩌면 더 중요한 둘째는, 1/4악장의 vivace나 molto를 꼭 빠르기 지시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것- 단지 해석상 '중용지도'를 바라는 브람스의 '노파심'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대개 첼리스트들이 어떤 악장은 ‘노파심’으로, 어떤 악장은 '진심'으로 곧이곧대로 하는 게 옳다고 섞어서 해석하는데 그 결과로 어떤 경우의 수들이 나오는지 아래 (ii) 녹음들에서 볼 수 있다.

 

- 그 외 언급할만한 요점이라면 우선 1악장; 소나타형식인데, 브람스는 이따끔씩 어떻게 하면 발전부를 ‘회피할 수 있는가’가 가장 큰 연구였던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브람스가 못 쓰는 게 아니라 역시 베토벤의 그늘이라고 볼 수 있는데 베토벤은 짧은 주제악구에서, 이를테면 모든 사람이 3가지 길이 있다고 생각할 때 4번째, 5번째 가능성을 찾아내서 그것도 때로는 완전한 '드라마', 극적 구성까지 갖춰서 쓰기 때문에 그것을 모델로 따라쓰기엔 너무 버겁기 때문이다). 여기서 브람스의 수법은 제시부/재현부 사이에 '연결부'를 각각 만들어놓고, 중간은 첼로의 트레몰로가 이어지면서 간략하게 처리하는 것. 발전부가 약하고 특히 제시부가 어디까지가 경과구인지, 부주제인지, 한번에 듣고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 1악장 제시부의 반복은 지키는 것이 좋다. 3악장 경우는 조금 달라서- 우리는 반복을 하는 편이 더 낫지 않느냐는 쪽이지만- 약간은 브루크너처럼 중복이 된 느낌도 있고 해석에 따라서 음악의 흐름forward movement을 방해한다고  생각한다면 생략할 수도 있다. 4악장은 간결한 론도형식이고, 브람스로선 이렇게 느낌이 낙관적인 피날레는 드문 편. '끝이 좋으면 모두 좋다'고 이 곡 전체를 밝고 따뜻한 음악으로 만들어준다.

 

(ii) 녹음들(첼로/피아노- 녹음 혹은 출반연도순)

 

1. Paul Tortelier/Karl Engel- 1953

푸르니에/토틀리에/나바라/장드롱으로 이어지는, 프랑스 첼로악파의 ‘사총사’ 혹은 ‘삼총사와 달타냥’으로 불리는 이들은 모두들 개성있는 음색, 그리고 서로 다른 장기 레퍼토리를 갖고 있는데 토틀리에는 사실 소리의 질로만 보면 다른 세 명이나 로스트로포비치보다 반수 정도 낮은 소리를 만들어낸다. 그럼에도 대등하게 설 수 있는 건 음악적 아이디어에 있어서는 전연 뒤지지 않기 때문인데, 특히 브람스는 최고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가뜩이나 레퍼토리가 부족한 첼로에서, 브람스 소나타를 최고로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을 어떻게 '초'일류가 아닌 그냥 일류로 분류할 수 있겠는가? 1악장은 브람스의 템포지시가 '노파심'이라는 입장에서 유장하고 위엄있게 노래한다. 2악장은 우리가 들었던 모든 녹음들 중에서 가장 탁월한, 호소력이 있는 연주. 이 한 악장만으로도 이미 이 녹음의 '레벨'을 결정했다고 할 수 있다. 단지 3악장은 우리의 취향으로는 약간 'passionato'가 부족한지 모르고 4악장은 ‘노파심’을, 'molto'를 조금 너무 무시했는지 모른다.

2. Paul Tortelier/Maria de la Pau- 1977

20여년전보다 간결하고 담백해진 연주. 브람스의 템포 지시에 보다 충실해져서 이전 녹음보다 1/2/4 악장의 빠르기를 조금씩 당겼고 전체적인 비례는 더 좋아졌다고 볼 수도 있다- 다만 단점이라면 우리의 의견과는 반대로 3악장은 상대적으로 더 느려졌다는 것. 템포를 좀 당겼지만 2악장은 여전한 호소력을 지닌다. 당신이 브람스의 본령을 이해하고 있다면 사실 빠르기는, 아주 극단적이지만 않다면, 노래가 흘러나오는데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주. 브람스의 느린 악장을 이렇게 자연스럽게 노래할 수 있는 음악가가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다. 1악장은 1953년이, 4악장은 이쪽이 더 잘 연주되었다는 느낌. 두 녹음 사이의 우열을 가리기보다는 둘다 들으면 좋고, 구할 수 있는대로 어느 쪽을 들어도 무방한 경우.

3. Maurice Gendron/Philippe Entremont- 1959

반대로 브람스의 템포지시가 '진지하다’고 믿는 쪽에서 일단 시작한다. 1악장은 ‘비바체vivace’에 충실하게 전진하는 흐름을 중시한다. 라디오방송국 음원이 남아있는 1번 e minor도 그렇고, 적어도 이 시기까지 장드롱의 브람스 해석은 고전주의자, 베토벤의 후계라기보다는 확실한 낭만주의자로 차별화시켜서 보려고 하는 쪽, 굉장히 격정적이다. 2악장은 토틀리에와는 전연 다른 스타일의 시정poetry, 호소력이 있다. 굉장히 아름다운 연주. 문제라면 3악장부터인데 중간에 트리오부분은 템포나 분위기의 변화, 대조가 지나친 느낌을 준다. 4악장에서 갑자기 ‘molto’를 '노파심'으로 무시하고 너무 ‘칸타빌레’로 흐른 것도 같은 맥락-  노래할 수 있는 곳을 다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인데 음악의 전체적인 균형은 깨져 있다. 공교롭게도 토틀리에의 첫번째 녹음과 같은, 우리 나이로 딱 40세때의 녹음. 사고로 팔을 다치지 않고 만년에 토틀리에처럼 다시 녹음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나저나 이 연주도 좋고, 커플링된 장드롱/앙트레몽 콤비의 베토벤 3번은 더 뛰어나서 이 곡의 가장 중요한 녹음 중 하나다. 이 음반을 중고 LP로밖에 구할 수 없다니 소니의 재발매담당자들은 모두 귀가 썩은 것이 틀림없다. 하긴 첼로부터는 ‘마이너’에 속하는 독주악기라서, 사실 묻힐 법 해서 묻혔다고 냉정하게 말할 수도 있는 바이올리니스트나 피아니스트들은 메이저가 버려도 저작권만 소멸되면 마이너 레이블에서라도 여기저기 음원을 모아서 ‘잊혀진’, ‘숨은’ 따위의 타이틀을 달고 박스 세트가 이따금씩 나오는데 나바라나 장드롱같은 대가들은 아직 변변한 박스 세트 하나 제대로 된 것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4. Pierre Fournier/Rudolf Firkušný- 1965

1악장은 아마도 알레그로 '비바체' 지시에 충실한 버전으로는 가장 잘된 연주. 이 빠르기에서 이보다 더 우아하게 연주할 수 있는 첼리스트가 또 있을까? 2악장도 절제의 미덕을 강조하고 있는데,  다만 이 스타일이라면 데카Decca에서 박하우스Backhaus와 녹음한 것이 조금 더 잘 되었다는 느낌(지금은 CD로는 절판된 것 같은데 이 판도 구할 수만 있다면 꼭 들어봐야 하는 녹음이다). 4악장은 결국은 너무 빠르다는 느낌. 베토벤이라면 이 스피드에서 어떻게 노래가 나오겠지만 역시 브람스는 확실히 정서적으로 낭만주의쪽으로 더 가 있다는 것. 우리가 상기 작품개요의 '노파심'론으로 기운 하나의 근거이기도 하다. 푸르니에가 해도 뭔가 2% 미진한 느낌을 준다면 아마도 정답이 아닐 거라는 것. 그러나 어쨌든 해석의 일관성, 전체적인 비례라는 면에서는 이렇게 마무리를 하는 것이 옳다. 단지 동의하느냐/아니냐, 취향에 맞느냐/맞지 않느냐의 문제일 뿐.

 

5. Mstislav Rostropovich/Rudolf Serkin- 1983

아마도 전체적으로 가장 느린 템포를 택한 연주. 제르킨은 최만년이고 로스트로포비치도 50대 후반일 때의 녹음.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서정성을 강조하는 버전이고 음 하나하나 무척 아름다운 소리를 들려준다. 희생된 것은 음악의 자연스러움- 어쩔 수 없는 ‘인공미’가 느껴진다는 것. 성형미인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우리는 썩 선호하진 않지만 단지 취향문제고, 이것이 20세기 중후반 이후의 미학이기도 하다. 어쨌든 3악장까진 일관성있게 음악이 이렇게 흘러가다가 4악장은 다소 템포가 당겨지는데, 피날레는 꼭 조금이라도 빨라야 하는가? 아래 샤프란 녹음만큼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비례에 옥의 티가, 흠집이 생긴 느낌. 로스트로포비치가 푸르니에나 토틀리에에 비해서 약점이 있다면 이런 부분일 것이다.

(※ Mstisalv Rostropovich/Alexander Dedyukhin- 1967 live

루돌프 제르킨은 청중들이 어떤 곡과 아티스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적어도 같은 연주가의 라이브를 3번은 들어봐야 한다는 지론이었다고 전해진다. 레코드회사들한테도 마스터 하나로 편집할 게 아니라 같은 곡의 여러가지 녹음을 내놓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지만 물론 레코드회사들은 손익관계상 불가. 반주자는 다르지만 이 녹음은 로스트로포비치가 전연 다른 스타일로 연주하는, 빠르게 몰아붙이는 라이브. 특히 3악장은 적어도 우리가 들은 것 중엔 가장 빠른 템포인데 역시 너무 빨라도 효과적이지 않다는- 라이브라면 몰라도 적어도 녹음으로는- 깨달음을 준다. 음질이 별로긴 하지만, 구할 수 있다면 구해서 들어보는 게 좋다.)

6. Danill Shafran/Felix Gottlieb- 1980

샤프란은 자기만의 개성이 있는, 뛰어난 아름다움을 갖고 있는 음색의 소유자. 다만 독특한 비브라토나 더 독특한 프레이징이 귀에 거슬리면 못 듣기 때문에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릴 수 있는 첼리스트이기도 하다. 1악장 발전부에서 첼로의 트레몰로는 평범한 첼리스트들은 그냥 쓸고 지나가는, 노래가 나오기 쉽지 않은 부분인데 뭔가 감정이 표현되는 것을 느끼게 한다. 샤프란의 시정poetry, 기량을 보여주는 대목. 전체적으로는 바깥 악장outer movements들을 느리게 노래하고 안쪽 inner movements를 당겼는데 개성적이긴 하지만 효과적인지는 의문. 2악장은 자연스럽게 노래가 나온다고 볼 수는 없다. 4악장은 브람스가 무덤 속에서 ‘내가 이래서 "molto"를 붙여놓았건만’하고 돌아누울 것 같은, 조금 너무 감상적일 정도로 늘어진, 실패한 버전. 샤프란의 스타일에는 1번 e minor나, 바이올린소나타 1번을 첼로용으로 편곡한 것이 더 잘 맞는다고 봐야 할 것이다.

7. Pablo Casals/Mieczyslaw Horszowski- 1936

1악장 첫머리의 “빠밤~ 빠밤~”,하고 첼로가 들어오는 부분은 사실 마치 카잘스를 위해서 쓴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 이보다 더 강력한 소리를  낼 수 있는 첼리스트는 없다. 1악장은 음악의 흐름이 계속 좋다. 2악장은 ‘affettuoso’를 ‘다정하게’로 해석한 버전, 마치 임꺽정같은 장사가 자기 새끼를 곰살궂게 돌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그런데 그 다정함, 부드러움을 어떻게 할 것인가? 카잘스의 해법 중 하나는 3부형식인 이 악장의 제 2부, 다른 첼리스트들이 대부분 문자그대로의 소리나 감정을 모두 ‘볼륨업volume-up’하는 지점에서 반대로 더 소리를 죽이고 부드럽게 연주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즉 '∧'를 '∨'로 뒤집어서 대조를 시킨 것. 얼마나 독창적인가? 콜럼버스의 달걀이 떠오르는 대목. 그리고 3악장에선 중간에 샤프란도 울고 갈 루바토를 들려준다. 카잘스를 무슨 현대 첼리스트들의 ‘시조새’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음악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지금에 와서 들어도 언제나 독창적인, 남다른 해석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예술가. 단지 4악장은 로스트로포비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1~3악장까지 흘러온 음악의 흐름에 비해서는 조금 너무 빨라서 전체적인 비례가 안 맞는 느낌.

8. André Navarra/Alfred Holeček- ?(원래 수프라폰(Supraphon) 음원인 이 음반은 지금은 본가가 아닌 다른 데서 라이센스로 발매했던 중고 LP들로만 구할 수 있는 것 같은데 녹음연도가 표시되어있지 않다. 아마도 안체를/체코필과 수프라폰에서 협주곡들을 녹음하던 1960년대 중후반 녹음일 것이다?)

2악장 아다지오는 조미료를 치지 않은 자연스러운, 그리고 부드러운 노래를 들려주는데 대신 호소력, 설득력은 좀 약하다. 3악장은 전체적인 템포를 알레그로 지시보다 당기진 않지만 강력한 엑센트accent와 중간에 미묘한 가속으로 'passionato'를 표현한다- 우리가 지금껏 들어본 녹음 중에서 가장 잘 연주된, 가장 선호하는 3악장. 진짜 대가들한테선 늘 뭐든 한가지는 배울 게 있는 법이다. 다만 4악장은 조금 너무 늘어졌는지 모른다.

9. Gregor Piatigorsky/Arthur Rubinstein- 1966

1,2 악장에서 피아티고르스키 특유의 서정성, '노래'는 부분부분 들을 수 있다. 다만 피아티고르스키의 보다 가볍고, 자연스럽게 흐르는 노래는 브람스보다는 베토벤의 느린 악장에 더 잘 맞는다. 사실 ‘러시안 로맨틱(Russian Romantic)’이라는 편견을 버리고 본다면 피아티고르스키의 장기는 베토벤/슈만이다. 3악장은 좀 힘겹게 느껴지고 4악장은 다시 한번 ‘molto’에 현혹된, 전체적인 비례가 맞지 않는 버전. 전체적으로 루빈슈타인의 피아노는 이따금씩 요령부득, 그냥 혼자서 치고 나가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선호도: 2 Tortelier> Gendron= Casals >=Fournier>=Navarra>=Rostropovich>Shafran=Piatigorski

해석의 삼각형: Tortelier(1953)/Fournier/Rostropovi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