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 비교감상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29번 B flat Major, Op. 106 "Hammerklavier"(3/3)

이현욱 2017. 4. 14. 23:41
(ii) 녹음들

   이번엔 보다 ‘가혹한’ 기준으로 엄선한 녹음들. 부분적으로 언급할 만한 데가 있는 음반들은 더 있겠지만 과감히 생략했다- 그 기준이 뭐냐고 묻는다면 ‘테크닉’도 ‘학식’도 아니고 오직 ‘음악성’이다.(음원을 안 갖고 있어서 취급하지 못한 녹음들 중에  이 반열에 오를 수 있는 후보라면 우리가 아는 한은 호르쇼프스키(Mieczyslaw Horszowski) 정도밖에 없다. 옛날 VOX 음원인데 90년대 CD 재발매는- 'Vox Box Legends 2CD Set' 시리즈 중에 하나였다- 한국에는 누락이 되고 수입이 안되었고 이후로는 그림도 본 적이 없다.)


1. Annie Fischer- 1978

전체적으로 베토벤 음악 특유의 기세를 살리면서, 흐름(flow)을 깨뜨리지 않으면서 노래가 되는 기준선에 있는 녹음. 앞에 '여류' 따위 수식어가 필요없는 피아니스트는 클라라 하스킬(Clara Haskil)외엔- 아르헤리치(Martha Argerich)처럼 '힘이 좋다'는 의미에서 '여류'라고 부르기 민망한 경우는 제외한다면- 이 피셔뿐이다. 다만 3악장은 부분부분 노래가 나오는 대목은 있지만 여기 녹음들 중에선 가장 밋밋하고 무거운 연주.

2. Sviatoslav Richter- 1975 live

이것은 말하자면 위 피셔의 '대조군' 격인 녹음. 바깥 악장들은- 보다 정확히 말하면 그 중에서도 리히터가 여기는 '칸타빌레'라고 늦추지 않는 빠른 악구들은- 시원하지만 노래가 잘 되지 않는다. 원래 그런 것 아니냐고, 빠른 데는 호쾌하게 치고 '감정을 잡으려면' 늦춰야 하는 게 아니냐고 한다면 리히터의 스크리아빈을 들어보라- 거기서는 음악이 빠르거나 느리거나 관계없이 노래가 철철 흘러나온다. 결국 자기하고 코드가 맞는 작곡가가 따로 있다는 것이고 베토벤은 리히터가 완전히 동기화가 되지 않는 작곡가다. 반면 이 녹음의 강점은 3악장에 있다- 느린 템포에서도 마치 펜을 떼지 않고 한번에 도형을 그리는 것처럼 긴 호흡으로 끝까지 긴장을 유지시키는 엄청난 집중력이 리히터의 최대 장점. 이 거대한 아다지오를 지루하지 않게 칠 수 있는 피아니스트는 그렇게 많지가 않다.

(리히터는 1975년 딱 한 시즌만 이 작품을 프로그램에 올렸고, 그 해 라이브 녹음이 3개- 프라하/런던/올드버러(Aldeburgh) 페스티벌- 남아있는데 우리가 사용한 것은 프라하 녹음이다.)

3. Glenn Gould- 1970(CBC radio broadcast)

이것은 말하자면 ‘all-poetry’, 고급스런 베토벤. 1악장 첫 12마디는 여기 소개된 녹음들 중에서 제일 아름답다고 해도 좋다. 그러나 음악이 진행이 되면 될수록 느껴지는 것은, 이를테면 베토벤의 '영웅주의'- 내지는 굴드의 관점에서 본다면 '소영웅주의'가 되겠다- 역시 베토벤의 일부이고, 이런 부분을 쏙 빼고 베토벤의 시적이고 고귀한 면만 들려주겠다는 것도 결국은 뭔가 불만족스럽다는 것. 어떤 의미에선 아래 소개된 박하우스나 제르킨은 베토벤의 '안 고급스런' 부분도 품이 떨어지지 않게 자연스럽게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베토벤 피아노 음악의 대명사인 것인데 굴드는 성향상 잘 되지 않는다. 역시 아름답지만 기질상 잘 안 맞는 것은 3악장도 마찬가지여서 때로는 '쇼팽스럽기'까지 한 낭만주의는 굴드의 체질이 아닌 탓에 약간 딱딱하게 들린다. 하지만 4악장은 여기 소개된 녹음들 중에서도 단연 뛰어난, 최고의 연주- 굴드는 아마도 녹음이 남아있는 역사상 푸가 형식에 가장 정통한 피아니스트이고 이 복잡한 푸가를 가장 명료하게 들려준다. 3개 이상의 성부에서 진행되는 멜로디를 동시에 진행시키면서 어느 한쪽을 희생시키지 않고 강조할 부분을 강조해주는 능력도 타고났지만, 푸가는 언제나 양손이 동시에 노래하고 있지 않으면 이렇게 아름답게 연주할 수가 없다.

4. Arthur Schnabel- 1935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1악장은 베토벤의 '불가능한' 메트로놈 지시에 가장 근접한 녹음. 하지만 슈나벨은 틀린 음표를 치더라도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지금이 가는 길 중간 어디쯤인지도 다 알고 있다- 라이브에서 빨리 치다가 저도 모르게 흥분해서 음악의 극적인 구조와 균형이 무너져내리면서 삼천포로 빠지는 햇병아리 피아니스트가 아니라는 얘기. 자꾸 틀린 음표를 누르는 것이 전부 다 들려서, 귀에 너무 거슬려서 이 녹음을 못 듣겠다면- 우리 귀에는 큰 '삑사리'들 말고는 잘 안 들린다- 문자 그대로 '아는 게 병'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3악장은 꿈결같고 환상적인 연주, 이것은 거의 슈만의 세계다. 이 음악을 해석하는 한 전형을 제시해주는 녹음이고 우리가 아는 피아니스트 중에는 이 음악을 이만큼 환상적으로 칠 수 있는 사람은 알프레드 코르토(Alfred Cortot) 뿐이다- 그리고 코르토는 이 곡을 녹음하지 않았다. 4악장은 1악장과 비슷한 논평을 할 수 있는데, 곧 본인의 테크닉으로 감당이 어려운 속도지만 대신 음악적으로 충분한 보상이 있는 선택이라는 것. 슈나벨이 아니었다면 우리도 전문가들의 말을, 이 곡을 베토벤이 지정한 템포로 연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을 그대로 믿었을지 모른다. 단순히 메트로놈만 근접한 게 아니라 우리의 견해로는 베토벤의 의도, 이상을 가장 가깝게 표현하고 있는 녹음.

5. Wilhelm Kempff- 1965

보기 드문 베토벤 스페셜리스트. 사실 작곡가마다 개성이 다 다르기 때문에 대작곡가의 음악을 잘한다고 해서 그보다 못한 다른 작곡가의 음악도 저절로 잘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대개는 베토벤의 대가면 슈베르트나 브람스, 혹은 위로 거슬러 올라가서 하이든이라든지 뭔가 똑같이 S급인 레퍼토리가 있기 마련인데 켐프의 경우는 베토벤 이외에는 딱히 같은 레벨에 있는 것이 없다. 여튼 베토벤만큼은 초일류- 거의 본능적으로 베토벤의 시를 이해하는 것 같이 들린다. 박하우스의 테크닉이나 제르킨의 리듬감각은 안 갖고 있기 때문에 이 곡처럼 부담스러운, 스케일이 큰 대곡에는 상대적으로 비교우위가 없지만 여기저기 도처에서 아름다운 구절을 많이 들을 수 있다.

6. Wilhelm Backhaus- 1952

1악장 첫머리 a는 역시 장대하게 시작하는 것이 좋다는 선택인데, 곧 b 후반부에서부터 살짝 가속을 시작해서 c는 '건반위의 사자'라는  별명답게 폭풍처럼 몰아치는, 우리가 들은 중에 가장 짜릿한 쾌감을 주는 처리- 이렇게 첫 세 구절에서 바로 볼 수 있듯이 구절마다 효과를 극대화하는, 푸르트벵글러를 연상시키는 교묘한 템포조절이 특징이다. 3악장은 감정의 과잉이 없는 절제된 스타일로 가장 잘된 연주- 비유하자면, 슈나벨의 3악장이 슈만이라면 박하우스는 브람스다. 고음에서 특유의 맑은 톤이 울릴 때의 그 짜릿한 아름다움은 한번 들으면 잘 잊혀지지 않는다. 4악장이 상대적으로 빠르게 느껴지지만 사실은 약간의 '트릭'이 있는데, 서주를- 라르고(Largo)가 아니라 거의 비바체(Vivace) 이상의 비례로- 굉장히 간결하게 당겨서 치고 주부는 1악장과 비례가 잘 맞춰져 있는 것. 원래 '무드 잡는 것'을 싫어하는 게 박하우스 스타일이기도 하고 과하게 템포를 당기지 않으면서도 비슷한 극적인 효과를 주는 노련함이라고 볼 수도 있다.

7. Rudolf Serkin- 1969~70

제르킨 베토벤의 최대 장점 중 하나는 탁월한 리듬감각과 셈여림의 조절(dynamics)이다- 토스카니니가 베토벤 교향곡 리듬의 교과서라면 제르킨은 피아노 음악 리듬의 교과서 격. 예를 들어 어떤 의미에선 베토벤의 스포르찬도(Sforzando)를 제대로 치는 건 제르킨뿐이다- 'Sfz'가 붙은 음표의 탄력도 탄력이지만 'Sfz'와 'Sfz' 사이의, 곧 강박과 강박 사이의 약박의 탄력과 그 대비는 다른 사람이 따라하기 힘들다. 악보에 더 표시할 수도 없고 어떻게 계량할 수도 없는 미세한 차이인데 우리의 추측으론 아마도 리듬감각이란 지문처럼 타고나는 것이리라는 것. 1악장은 여기 소개된 녹음들 중에서는 굴드 다음으로 느린 템포지만 기세나 흐름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템포를 당기거나 늦춰도 리듬이 무너지지 않으면- 예전에도 한번 같은 비유를 한 적이 있지만 '해상도'가 높아서 이미지를 확대해도 '깨짐'이 없으면- 무방한 것이고 상기 리듬감각이 말을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3악장은 제르킨 특유의 불꽃 튀는 연주- 베토벤의 지시어 ‘appasionato e con molto sentimento(열정적으로, 많은 감정을 넣어서)'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감정을 밖으로 표출하는 스타일이다.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이 열정을 내면화해야 한다고 판단하는데 들어보면 첫머리는 확실히 내성적(introspective)으로 시작하는 게 보다 그럴 듯 하지만 발전부에서 타오르기 시작해서 재현부에서 작렬하는 클라이맥스를 만들어내는 데는 단연 이쪽이 효과적이다. 사실 이 3악장의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감정은 적어도 슈나벨/박하우스/제르킨의 3가지 서로 다른 버전을 들어야 다소간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세계. 다만 마지막 4악장은 아마도 이번엔 또 ‘risoluto(단호하게, 혹은 결연하게)’를 너무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 제르킨답지 않게 리듬이 약간 딱딱한 것이 단점. 이 음악은 리듬이 좀 탄력이 있어야 하는 음악이기 때문에 아쉽다(보다 탄력이 있으면서 동시에 단단한 연주는 상기 굴드 녹음에서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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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외에 녹음을 아예 남길 수 없었거나 사정상 남기지 못했지만 궁금한 피아니스트라면 단연 리스트(Franz Liszt)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박하우스의 스승이면서 19c 말~20c 초에 걸쳐서 베토벤 피아노 음악의 최고 권위자였던 오이겐 달베르트(Eugen d'Albert), 슈나벨이- 물론 자기 빼고 그 다음으로- 최고의 베토벤이라고 칭찬했다는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ff), 위에도 언급했던 최고의 낭만파 피아니스트 코르토(Alfred Cortot), 어쩌면 인간에게 불가능한 '완벽'이라는 단어에 가장 근접했던 리파티(Dinu Lipatti)... 그래도 우리는 아마도 우리에게 남겨지지 않은 것들을 아쉬워하기보다는, 지금 갖고 있는 유산에 감사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 연주가/해석가들의 도움 없이 베토벤의 전기자료와 악보만 갖고 베토벤의 위대함을 이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선호도; Schnabel>=Serkin=Backhaus>=Gould>Kempff>Fischer=Richter

해석의 삼각형; Schnabel/Gould/Rich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