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디 "라트라비아타(La Traviata)"
I. 작품 개요
● 베르디(Giuseppe Verdi, 1813~1901)의 1853년작. 너무도 유명해서 본 적이 없는 사람도 줄거리는 대충 알 법한, 그런 오페라다. 통상 리골레토(Rigoletto), 일트로바토레(Il Trovatore)와 함께 중기의 3부작으로 불린다.
원작은 ‘삼총사’로 유명한 알렉상드르 뒤마의 아들(Alexandre Dumas fils; 이 마지막 ‘피스(fils)’가 아들이라는 뜻이라는데 우리는 불어랑 친한 문화권이 아니라서 뒤마 피스까지 다 이름인 걸로 오인하기 쉽다)이 쓴 소설. 소설보다는 작가가 직접 개작한 희곡이 상연에서 크게 성공했고 이것이 베르디에게 영감을 주어서 태어난 오페라.
여주인공의 모델은 이 ‘아들’ 뒤마의 연인이었던 마리 뒤플레시스(Marie Duplessis)라는 이름의 고급 창부(courtesan)로 당시 파리의 유명인사였고 그녀를 거쳐간 남자 중에는 리스트(Franz Liszt)도 있었다고 한다. 가난한 시골소녀로 태어나서 파리로 팔려왔다가 사교계의 꽃으로 변신하고, 다시 23세에 요절한 이 여인의 삶은 여러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는 모양이어서 최근에도 이 여인을 다룬 신간이 나왔다(“The Girl Who Loved Camellias- The Life and Legend of Marie Duplessis”, by Julie Kavanagh).
● 줄거리에선 1막에서 남녀주인공 비올레타와 알프레도가 소개가 되고 2막에서 바로 두 사람이 사랑의 도피를 하고 있는 파리 교외로 날아가는 것이 언급할만한 부분. 1막은 그저 알프레도의 구애에 마음이 흔들리던 비올레타가 사랑이란 망상이 지나지 않는다고, 자신은 언제나 자유로이 쾌락에서 쾌락으로 날아다닐 것이라고 노래(“Sempre libera”)하는 데서 마친다. 이 작품은 비올레타의 희생과 이별, 죽음을 핵심사건으로 다루고자 하는 비극이고 서로 마음을 확인하고 사랑을 속삭이는 과정은, 넣었다면 군더더기다. 상기한 “Sempre libera”는 멋진 반어법이기도 해서 이것은 대본작가(librettist) 피아베(Franceso Maria Piave)의 승리다.
●음악적으로는 비올레타의 비중이 절대적. 중간에 쉬는 대목도 거의 없고, 1막의 쾌락의 화신에서부터 2막의 순정의 여인, 3막의 쓰러지는 병자까지 보여줘야 할 게 너무 많다. 그에 비하면 알프레도는 단순하고 맹목적인 사랑, 열정 하나뿐인 캐릭터, 노래를 잘하는 가수라면 충분하다. 비올레타와 아들을 늘 설득하고 달래는 역할의 아버지 지오르지오 제르몽이 표현하는 감정의 폭이 더 어렵기 때문에 음악적인 그리고 내용적인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비올레타를 소화할 좋은 소프라노 다음으로는 좋은 테너보다는 좋은 바리톤이 더 필요한 작품- 2막의 “Pura siccome un angelo”에서부터 “Morrò! La mia memoria”까지 비올레타와 아버지 제르몽의 듀엣은, 19세기 중반의 관객이라면 몰라도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대본이 너무 뻔한 스토리기 때문에 음악적으로 극적으로 잘 살려내지 않으면 지루해지지만 훌륭한 음악가들의 손에 걸리면 이 작품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목 중의 하나다. 베르디가 여인이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을 위해서 희생을 결심하는 그 순간을, 또 아들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아들의 애인을 온 힘을 다해서 설득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라트라비아타’는 베르디의 가장 원숙기의 작품은 아니다. 뻔한 스토리에 군데군데 컷(cut)할만한 대목들도 있고, 때로는 싸구려 감상주의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걸친다. 그렇지만 그 어떤 단점이 있더라도, 주인공들의 말과 음악에는 진실된 감정의 표현이 있다. 들으면 들을 수록 매력이 있는 작품. 어떤 작품이 ‘고전(classic)’이냐 아니냐의 가장 단순한 시험은, 결국 들으면 들을 수록 싫증이 나느냐 아님 점점 더 좋아지느냐, 그것이 아니던가?
II. 녹음들(지휘자/오케스트라,코러스/비올레타역(소프라노)/알프레도역(테너)/지오르지오역(바리톤)/녹음연도(혹은 출반연도)순)
1. Carlos Kleiber/Bayerishes Staatsorchester,Staatsopernchor/Ileana Cotrubas/Placido Domingo/Sherrill Milnes(1977)
음악에 국적이 있을까? 이 음반의 1막의 서곡을 듣노라면, 때로는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이 독일계 지휘자와 악단은 기술적으로는 더 뛰어나지만 이태리 오페라 오케스트라들 특유의 가늘고, 여리고, 때로는 약간 퇴폐적이기까지 한 현악파트의 음색(string sound)를 낼 수가 없고 낼 생각도 없다. 한데 이 ‘라트라비아타’의 서곡이야말로 이런 사운드가 절실하게 필요한 작품이라는 것. 마찬가지로 "Si ridesta in ciel L’aurora"의 코러스는 파티꾼들이 부르는 노래라기보다는 군가처럼 건전하게 씩씩하다.
하지만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진가는 2막 이후에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1장(scene I)에서 아버지 제르몽과 비올레타, 2장(scene II)에서 알프레도와 비올레타의 갈등 장면에서 극적인 긴장감은 최고다. 이런 드라마는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아버지 에리히(Erich Kleiber) 세대의 대가들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수준. 왜 카를로스(1930년생)가 그의 세대에서 최고인지 보여준다. 뒤로 갈수록 연주가 더 좋아서 극과 관객이 지루해질 일이 없다.
코트루바스는 청순·요염한, 비올레타에 딱 맞는 음색을 갖고 있다. 비올레타는 그냥 팜므 파탈 캐릭터가 아니고 동시에 순정과 열정의 여인이고, 23세에 요절한 여인이 모델이기 때문이다. 칼라스, 스코토, 서덜랜드 들의 목소리는 모두 나름의 개성을 갖고 있지만, 다소 노숙한 팜므 파탈이어서, ‘Cotrubas vs. others’로 대비시킬 수 있는 음색의 차이, 이점이 있다. 도밍고의 알프레도는 다소 거칠고 단선적이며 노래는 이따끔씩 불안정한 느낌을 준다. 알프레도의 거의 맹목적이기까지 한 열정은 잘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매력은 아니다.
2. Ricardo Muti/Philharmonia Orchestra,Ambrosian Opera Chorus/Renata Scotto/Alfredo Kraus/Renato Bruson(1982)
군데군데 무티가 시도하는 템포조절은 말은 되지만 그렇게 탁월하지도 않다. 알프레도 크라우스는 우아한 테너고, 2막에서 격한 감정의 분출도 잘 소화해내지만, 맹목적인 단순한 젊은 열정의 캐릭터로는 선이 다소 가늘다. 스코토의 음색은 23세에 요절하는 비올레타로는 좀 노숙할지 모르지만, 대화나 연기까지 포함한 종합적인 기량에서는 코트루바스보다 한 수 위다. 어쩌면 칼라스 이후 최고의 비올레타라는 찬사가 맞을지도 모른다. DG의 간판 클라이버판에 대항하는 EMI의 간판격인 녹음인데, 아마도 1막은 클라이버보다 나을지 모르지만 2,3막은 스코토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음악적으로 열세다. 레나토 브루손은, 바로 위 음반의 밀른스(Milnes)와 마찬가지로, 무난하지만 바스티아니니나 레너드 워렌이 갖고 있는 ‘x-factor’는 없다.
3. Carlo Maria Giulini/La scala Orchestra&Chorus/Maria Callas/Giuseppe Di Stefano/Ettore Bastianini(1955 Live)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까지 포함해서 ‘라트라비아타’의 ‘dream cast’라고 부를 수 있는 정도다. 하나 세상에 100% 완벽한 것은 없는지라, 문제라면 이시기의 라이브 녹음들은 대부분 음질이 한참 열악하다는 것. 그러나 칼라스, 디 스테파노, 에토레 바스티아니니, 줄리니, 그리고 라 스칼라, 이름을 하나씩 되새겨 보면, 이건 열악한 음질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카탈로그에서 사라지지 않을 음반이다. 칼라스는 1막 ‘Sempre libera’ 중간 발코니에서 멀게 들려오는 알프레도의 노래소리를 듣고 내는, ‘오’ 하는 한숨소리조차 마술적(magical)이고 디 스테파노는 알프레도의 열정과 매력을 둘다 표현할 수 있는 테너다. 줄리니는 처음부터 서정성을 강조하는, ‘노래하는’ 템포를 선택하는데, 오케스트가 긴박하게 돌아가다가 가수가 중요한 아리아를 부를 때마다 템포를 늦추는 것보다는 이 편이 낫다. 다만 오케스트라의 이날 상태는 100%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이름값과 상관없이, '블라인드(blind)’를 하고 들어도 이건 ‘진짜 음악’이다, 혹은 상당한 부분에선, ‘그랬을 것이다’라고 추측하게 만드는 녹음.
4. John Pritchard/Florence May Music Festival Orchestra&Chorus/Joan Sutherland/Carlo Bergonzi/Robert Merrill(1962)
서덜랜드의, 서덜랜드에 의한, 서덜랜드를 위한 음반. ‘라트라비아타’에서의 서덜랜드는 저음에서 약간 답답한 음색과 옹알거리는 듯한 부정확한 발음을 모두 하늘에서 쏟아지는 듯한 고음으로 용서받는 가수다. 하이라이트는 역시 1막의 "Sempre libera"일텐데, 한번 들으면 잘 잊히지 않는 소리를 들려준다. 그렇지만 1막이 끝나면 2막부터는 더 들을 게 없다는 그런 수준의 기량은 아니다. 카를로 베르곤찌는 알프레드 크라우스의 우아함에 더해서 윤기있고 빛나는 음색을 갖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디 스테파노 다음으로 선호하는 알프레도. 로버트 메릴의 아버지 제르몽도 녹음의 숫자가 보여주듯이 정평이 있는 것인데 다만 이 음반의 캐스팅과 더 궁합이 잘 맞는 쪽은 레너드 워렌이었을지 모른다.(레너드 워렌은 이 녹음이 만들어지기 2년전(1960)에 공연 도중 세상을 떠났다.)
존 프리차드의 지휘는 자제하거나 중도를 쫓기보다는 윤곽선이 확실하고 감정표현이 분명한 스타일인데 오케스트라가 그렇게 죽죽 치고 나오다가 서덜랜드가 나올 때마다 감정표현을 할 수 있게 템포가 느려지는 것은,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번이라고, 결국은 듣다보면 슬슬 조금씩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확실한 가수 중심의 해석. 아래 토스카니니 판의 안티테제(Anti-these)다.
5. Pierre Monteux/Rome Opera Orchestra&Chorus/Rosanna Carteri/Cesare Valletti/Leonard Warren(1956)
주역인 카르테리나 발레티의 기량도 괜찮지만 비올레타의 친구 Flora(Lydia Marimpietri)나 도비니 후작(Leonard Monreale) 등 조역가수들의 기량이 탄탄한 것이 귀에 들어온다. 그렇지만 역시 이 녹음에서 주목해야 할 이름은 몽퇴와 워렌일 것이다. 몽퇴는 개성이 뚜렷한 거장이고 관습적인 해석을 따르는 보통의 오페라 지휘자는 아니다. 이 작품을 전체적으로 장중한 낭만주의 비극으로 해석한다. 현 파트가 꼬리가 약간 긴 듯이 프레이즈 후반부에 더 악센트를 주는 몽퇴 특유의 리듬감을 들을 수 있다. 레너드 워렌은 정말 강력하고 탄탄한 목소리를 갖고 있는 바리톤이다. 어떤 때는 마치 바리톤도 소화할 수 있는 테너같이 들리고, 그러면서도 부드러울 때는 또 한없이 부드럽다.
6. Fernando Previtali/Rome Opera Orchestra&Chorus/Anna Moffo/Richard Tucker/Robert Merrill(1960)
RCA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주역가수들을 데리고 로마에 가서 만든 음반. 아마도 여기 소개한 7종의 음반 중에서는 가장 가볍고(light) 서정적인 해석. 대신 2막 이후 뒤로 갈수록 극적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안나 모포, 리처드 터커의 노래는 모두 수준급이고 들을 만 하다. 로버트 메릴은 아래 토스카니니 지휘하에서 노래를 가장 잘했지만 음질이 열악한 점을 감안한다면 이 음반이 베스트. 서덜랜드와의 협연보다는 이쪽이 더 좋다.
7. Arturo Toscanini/NBC Symphony Orchestra&Chorus/Licia Albanese/Jan Peerce/Robert Merrill(1946 NBC broadcasts)
젋은 시절의 토스카니니는 언제나 서정적인 지휘자였지만, 1867년생이니까 이 녹음 당시 우리 나이로 딱 팔십이 된 노대가는, his beloved Verdi를 마치 베토벤처럼 고급스럽게 해석한다. 여기서 2가지 문제가 발생하는데 첫째, 베르디는 베토벤이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이것은 아직 베르디의 중기(middle period)작품. 감상적인, ‘센치’한 작품은, 약간 유치한 듯한 그대로 살리는 것이 더 낫다. 토스카니니 만년의 베르디 녹음 중에 팔스타프(Falstaff)가 오늘날까지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 중 하나는 이 베르디 최만년의 걸작은 이제 이런 접근법과 수준이 맞기 때문이다. 둘째는 ‘속도’, 가수들이 도저히 완전한 감정표현을 할 수 없는 빠르기이다. 기악이라면 이 스피드로 ‘노래’를 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사람의 목소리로는 안된다. 이 스피드로 모든 감정표현을 다 할 수 있는 초절기교의 가수들이 혹시 있다면 아마도 드라마를 다 살리는 가장 완벽한 템포일 것이다. 가장 적절한 예는 ‘Sempre libera’일 것인데, 여기서 리치아 알바네즈가 마치 신들린 듯이 노래하는, 영원히 자유로이, 아무 목적없이 쾌락에서 쾌락을 쫓는 열정의 캐릭터는 원래 베르디가, 그리고 아마도 원작자 뒤마 피스가 표현하고자 했던 여주인공의 성격 바로 그대로다. 마치 이 대목을 살리기 위한 템포 선택인 것처럼 말과 음악의 결합은 완벽하고 가사의 의미가 그대로 살아서 음악으로 표현된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단서: 언제나 스코어에서 작곡가의 비전(vision)을, 가장 이상적인 해석을 건축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투쟁하는 것이 바로 마에스트로 토스카니니의 지휘다. 2가지 이유로, 2가지 면에서 실패했지만, 이걸 듣지 않는다면 이 작품에 담긴 베르디의 비전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녹음, 해석이다.
선호도: Kleiber=Giulini=Toscanini>Muti>=Monteux=Pritchard>Previtali
해석의 삼각형: Toscanini/Pritchard/Giluli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