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하 "6개의 쉬블러 코랄(6 Schübler Chorales)", BWV 645~650(1/2)
Bach 6 Schübler Chorales BWV 645~650
I. Wachet auf, ruft uns die Stimme BWV 645
II. Wo soll ich fliehen hin, oder Auf meinen lieben Gott BWV 646
III. Wer nur den lieben Gott lässt walten BWV 647
IV. Meine Seele erhebt den Herren BWV 648
V. Ach bleib bei uns, Herr Jesu Christ BWV 649
VI. Kommst du nun, Jesu, vom Himmel herunter BWV 650
(지금껏 이 블로그에서 '음반 비교감상'이라는 항목으로 근 20곡 정도 다룬 것 같은데 바하는 이번이 처음이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우리가 바하 음악을 논할 실력이 되는가, 한 20년은 더 기다려야 하는 게 아닌가 해서였다. 어렵기는 베토벤도 어렵지만 베토벤은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 음악이라서 후기의 가장 어렵다는 작품도 표현하는 내용은 실상은 가장 인간적인 고뇌이다. 이것은 물론 바하가 비인간적이라는 의미가 아니고 우리와 다른 시대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다. 베토벤은 확실한 '근대(modern)인'이지만, 연대가 한 세기쯤 앞서는 바하의 시대는 아직 과도기이다- 우리랑 세계관과 삶의 양식이 많이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이 음악이 표현하는 감정이 우리가 느끼는 그게 맞는지 한번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기술적으로는 현재 우리 귀에 익숙한 음악들은 대중음악이건 클래식이건 '멜로디에 코드 얹는' 식의 짜임이 많기 때문에 바하처럼 대위법을 기반으로 하는 음악은 따라가려면 '정신사납다'. 아마도 '다성음악을 들을 수 있는 귀(polyphonic ear)'라는 것도- 음악에 관한 거의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이- 처음부터 타고 나는 능력이고, 단지 연습/훈련을 통해서 스스로가 타고난 한계 혹은 잠재력에 어디까지 도달하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음악의 내용을 말로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심지어 자기가 잘 이해하지도 못하는 음악에 관해서 말을 하거나 글을 쓴다는 것은 그냥 무의미한 정도가 아니고, 문자 그대로 '비의미적인(nonsensical)' 행위가 된다. 하지만 최근 들어 무작정 미뤄놓는 것보다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써보고 나중에 '깨달음'이 오면 다시 고치자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연주가들도 일단 최소 환갑 넘을 때까지 최대한 본인이 준비되기를 기다리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3~40대부터 한 10년에 한번씩 녹음을 하면서 답을 찾아가는 스타일도 있다. 뭐가 더 옳으냐의 문제가 아니고 그때그때 각자 입장에 맞게 선택할 일일 것이다.)
(i) 작품개요
; 먼저 제목부터 설명하자면 '슈블러(Johann Georg Schübler)'는 출판업자의 이름이다. 즉, 1747~48년 8월 사이에 나온 이 곡은 바하 생전에 출판된 몇 안 되는 작품들- 오르간 곡으로는 클라비어연습곡 3권(Clavier- 1Übung III)과 '저 천상으로부터 나는 나려왔다(Vom Himmel hoch da komm’ ich her)' 주제에 의한 카논 변주곡, 그리고 이 작품까지 딱 셋이다- 중 하나다. 근데 이 슈블러씨가 그냥 출판업자가 아니고 바하의 라이프치히 시절에 음악을 배운 제자이기도 하기 때문에, 말하자면 '인맥의 힘'으로 이 출판이 이루어지긴 했는데 조판(=engraving)이라든가 여러 모로 썩 능력이 뛰어나지는 않았던지 초판본은 기초적인 오류가 많다고 평가된다. 이 작품은 바하의 자필 초고가 발견된 바가 없으나 다행히도 작곡가에게 보내진 초판본에 바하가 오류를 수정해놓은 것이 보존되어 있어- 중간에 사라졌다가 1975년에 다시 나타나서 지금은 프린스턴 대학 도서관(Scheide Collection)에 기증되어 있는데 사전허가 없이는 출입이 안 되는 컬렉션으로 되어 있다- 19세기 중엽 이후의 악보들은 이것을 근거로 한다. 그래서 이러한 사실들로부터 상기한 대로 '나름 음악가'이기도 한 슈블러가 바하의 지시를 받아서 편곡 작업까지- 왜 편곡이 필요했는지는 아래에서 설명한다- 수행한 것으로 추정하는 설도 유력한데, 바하가 인쇄 전에 교정을 보지 않았다는 것은 확실히 입증이 되지만 편곡을 누가 했는지까지 100% 확실한 것은 아닌 걸로 보인다.
다음으로 '코랄(chorale)'은 기본적으로 '루터파 (교회의) 찬송가'라고 이해하면 음악감상 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다. 바하 시대 독일 종교음악은 이 코랄을 기반으로 한 것이 많아서 '코랄 칸타타(cantata)', '코랄 전주곡(prelude)', '코랄 환상곡(fantasia)'처럼 여러 장르로 가지치기가 되는데, 곡의 짜임은 주로 대위법의 원리를 따른 다성음악이다. 만드는 방법의 간략한 개요는 바탕이 되는 코랄 선율을 한 성부에 놓고 그에 맞춰서 새로운 선율들을 다른 성부에 더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코랄을 맨 위 소프라노에 놓고 아래로 선율들을 덧붙일 수도 있고, 최저음 베이스에 놓고 위로 쌓아올릴 수도- 시대에 따라서, 작업에 따라서 달라진다- 혹은 중간 성부에 놓을 수도 있고, 더해지는 선율들도 코랄에서 파생된 비슷하게 단순한 것일 수도, 그것이 현란하게 변주되거나 혹은 아예 새로운- 뒤의 둘 사이의 경계는 미묘하다- 선율들이 다 가능하다.
이때 이 바탕이 되는 코랄 선율을 가리킬 때 'cantus firmus'라는 용어를 쓴다. 단어 자체는 라틴어이고 영어로 (어순까지) 직역하면 'song fixed'인데, 우리가 방금 설명한 대로 '받쳐 놓고' 거기에 새 선율이 더해진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별 무리가 없다. 다만 영어사전의 설명에서 'fixed'보다 더 중요한 건 'pre-existing'이라는 어구다. 즉, 'cantus firmus'란 창작하는 게 아니고 원래 있던 가락을 가져다 쓰는 것이다. 유행가라도 기존의 선율을 대위법에서 작곡의 기본으로 가져다 쓰면 다 'cantus firmus'인 것이고, '코랄 ~'이라고 불리는 음악들은 대개 특정 코랄 선율이 'cantus firmus'로 사용된 대위법적 음악이라고 이해하면 된다(참고로 이것을 정선율(定旋律)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아마도 일본애들이 1:1 대응을 시켜서 한자어로 옮긴 걸로 보이고 한글 사전에 '정한가락'이라고 나오는 건 (일본식) 한자어를 순화하시겠다고 한번 더 바꾼 것으로 보이는데, 나쁜 번역이다- '정定'에 '하다'를 붙여서 활용을 시킨 다음에 띄어쓰기 무시하고 4글자짜리 명사로 붙여만든 게 무슨 '순화'인가? 그냥 정선율이라고 하든지, 순우리말을 쓰겠다면 차라리 '밑가락'이라고 하는 게 나을 것이다. 대선율(對旋律)도 마찬가지로 '대한가락'- 이것은 '대한늬우스'에 나오는 배경음악인가?- 같은 엉터리 용어를 만들 게 아니라 '맞가락' 혹은 '댓가락' 정도면 적당할 것이다. 즉, 원래 있던 '밑가락'을 가져와서 한 성부를 맡기고, 그 위아래로 '맞가락'을 만들어서 붙이는 요령이 바로 대위법이고, 그 결과물이 대위법적으로 작곡된 다성음악이다.).
'cantus firmus'니, '정선율'이니 하는 용어들은 한번 읽고 잊어버려도 상관없지만 실제 음악감상을 위해서 중요한 것은 음악을 듣다 보면 중간에 어디선가- 왼손/오른손/페달 어디서든- 딱 들어도 찬송가에서 따온 것 같은 단순(무식?)한 선율이 출현하는 것이 귀에 들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위에서 설명했다시피 이 단순한 선율들이 그냥 '화음 맞추러'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곡의 기본 단위이기 때문에, 음악이 한 단락지어지는 느낌이 들더라도 이 '찬송가 선율'이 안 나오면 말하자면 그냥 '전주'가 끝난 것이지 온전한 한 도막이 끝난 게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아래 우리가 여섯곡마다 각각 'AA(반복)B' 이런 식으로 간단하게 곡의 구조를 표시해놓았는데 이 6곡은 푸가처럼 복잡하지도 않고 또 짤막한 소품이기 때문에 큰 도막만 인지하는 정도로 충분하겠으나, 그보다 각 성부를 놓치지 않고 따라가는- 그러면서 또 전체를 들어야 한다- 훈련이 중요할 터, 둘 다를 위해서 코랄 선율을 담당하는 한 성부의 존재를- 중간에 좀 쉬더라도- 명확히 인지하고 있는 게 좋다.
- 이 작품은 상기한 코랄을 기반으로 한 악곡들 중에서, 다양한 스타일의 오르간용 소품들을 일컫는 코랄 프렐류드에 속한다. 그래서 형식상으로는 코랄 프렐류드들의 모음인데 실제로는 오르간을 위해서 새로 작곡된 것이 아니라 대부분 바하가 작곡한 기존의 칸타타들에서 한 악장씩 뽑아서 편곡해서 만든 것이다(여기서 자연스럽게 바하가 이 작품을 출판한 목적이 당시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칸타타 작품들 중에 '인기곡'을 골라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버전으로 보급하는 데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는데, 이 이상의 확실한 근거가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여튼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모델이 된 작품을- 악기편성이나 가사 등등- 참고할 필요가 있는데, 마침 영문 위키피디아에 하나로 잘 정리된 표가 있어서 아래에 우리가 거의 전재를 했다.
참고로 표 맨 오른쪽에 나열된 ‘Zahn 번호’는, 독일의 신학자 Johannes Zahn(1817~1895)이 독일 루터파 찬송가들을 모아서 정리해서 펴낸 책(Die Melodien der deutschen evangelischen Kirchenlieder Vol. I~VI)에서 붙인 번호를 따르는 것이고, 그 왼쪽 칸의 날짜는 모델이 된 칸타타가 초연된 날짜라고 생각하면 된다(원래는 이게 말하자면 '기독교 달력'을 따라서 돌아가는 칸타타 사이클이라서, 초연이 아니라 딱 그 날짜에 해당하는 '절기'를 위해서 작곡이 되는 것인데, 지금 우리의 주제가 칸타타가 아니기 때문에 거기까지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여타 내용은 아래 각 작품별로 관련되는 바를 설명한다.
(- 그리고 종교 음악도 사실 오페라랑 다를 것이 없어서 성악 파트가 있고 유의미한 가사가 있으면 작곡가는 그 가사 내용과 분위기에 어울리는 음악을 붙이게 마련이라, 음악의 내용을 짐작하려면 칸타타의 해당 악장의 가사를 읽어보는 것이 좋다. 우리가 아는 가장 유용한 웹사이트는 bach-cantatas.com이고, 홈페이지에서 왼쪽 "Background Information" 탭 하위항목으로 'Texts and Translations'나 'Chorale Texts'에 보면 각종 자료들이 모아져 있다.)
To be concluded...
- 초판 원제는 "Sechs Chorale von verschiedener Art auf einer Orgel mit 2 Clavieren und Pedal", 즉, "2단 건반과 페달이 있는 오르간을 위한 서로 다른 유형의 6개의 코랄"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