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 비교감상

모차르트 바이올린협주곡 4번 D Major, K. 218

이현욱 2014. 5. 18. 20:42

(다음주 화요일(5.20)로 다가온 막심 벤게로프 내한공연의 핵심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는 모차르트 협주곡 4/5번의 리뷰.)

 

교향곡과 피아노소나타가 베토벤의 것이라면 협주곡이라는 장르는 모차르트의 것이다. 남긴 작품의 종류와 숫자, 그리고 질적인 면까지 종합적으로 평가했을 때 모차르트는 소위 서양고전음악에서 가장 협주곡이라는 양식 혹은 장르에 뛰어난 작곡가라고 말할 수 있다. 다만 바이올린협주곡 5곡은 모두 모차르트가 우리 나이로 20살때- 혹은 1번은 그보다 더 이른 10대 후반에- 작곡된 작품들이다.(그리고 초연을 했건 안했건, 처음부터 본인을 독주자로 염두에 두었던 작품들- 전에도 한번 언급했었던 것 같지만 베토벤 이후 작곡가들의 주류가 피아니스트-작곡가였던데 비해서 바하와 모차르트는 건반악기와 현악기를 모두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은 기억해둘만한 점이다.)  물론 초기작이라고는 해도 형식상으로는 이미 협주곡 양식을 터득하고 있는 작품이고 특히 자주 연주되는 3~5번은 초기 모차르트의, 듣기는 좋은데 '이게 저거같고 저건 그거같은' 멜로디가 아니라 각각 뚜렷한 개성을 갖고 있는 음악. 그러나 만약 모차르트가 만년에- '만년'이라봐야 30대 초반이었겠지만- 이 장르로 한번만 더 손을 돌렸더라면, 음악의 내용에 있어서도 가장 위대한 바이올린 협주곡으로는 베토벤/브람스/멘델스존의 머리 위에 모차르트의 것이 놓여있었으리라는 아쉬움은 여전히 남아 있다.

 

 

Mozart violin concerto No.4 in D Major, K. 218

 

 

I. Allegro

II. Andante Cantabile

III. Rondeau(Andante grazioso-Allegro ma non troppo)

 

 

(i) 작품개요

1악장은 소나타형식이고 행진곡풍의 강력한 첫번째 주제가 발전부나 재현부에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만 주의를 요하는데, 모차르트의 발전부는 새로운 멜로디를 도입해서 끌고 가는 경우가 많고 재현부에서 첫번째 주제의 생략도 음악의 내용상/흐름상 필요하면 가끔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고 알고 있으면 된다. 2악장은 형식상 뭐라고 하긴 곤란하고, 이런 경우에 ‘2부 혹은 3부’ 구성이라는 간단한 면피가 있긴 하나 음악을 듣는데 별 도움이 되진 않는다. 대략 3개의 가락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만 인지하고 그것들이 각각 어떻게 노래가 되는지 들어보면 좋다. 마지막 론도(rondeau)의 독특한 철자는 이것이 ‘프랑스풍’, 혹은 그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고 론도의 형식을 지키면서도 계속 뭔가는 조금씩 창의적인 변형이 있어서 지루할 틈이 없다. 이런 스타일, 분위기의 론도로는 이보다 더 잘 쓰기 어려운 교묘한 것. 모차르트도 그렇게 생각했던지 이어지는 5번의 론도에서는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된다.

큰 틀에서 해석의 폭이 아주 넓은 곡이라고 말하긴 어렵고 특히 3악장은 '모차르트가 시키는대로' 중도를 잘 지키지 못하면 음악이 무너지기 쉽다. 다만 개성있는 예술가들은 뭔가 자기만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대목이, 혹은 '포인트point'가 있다는 것을 아래 녹음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ii) 녹음들(바이올린/오케스트라(지휘자)- 녹음 혹은 출반연도순)

1. David Oistrakh/Berlin Phiharmonic Orchestra- 1970

우아하거나 생기발랄하다기보다는 소박하고 완숙한 모차르트. 60대에 접어든 오이스트라흐가 힘을 8~90% 정도만 써서 음악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보다 신경을 쓰는 느낌이다. 페르디난드 다비드(F. David)의 카덴차cadenza를 사용한 것이 특이사항이라면 특이사항. 보통은 요아힘(Joachim)의 것을 쓰거나 탐탁치 않다고 여기면- 대개 이 곡의 내용, 성격에 비해서 너무 크고 화려하다고 판단하는 경우일 것이다- 각자 스스로 만든 것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들어보면 요아힘 대비 딱히 무슨 메리트가 있는지는 좀 의문.

2. Jascha Heifetz/Royal Philarmonic Orchestra(Thomas Beecham)- 1947

비첨이 오이스트라흐보다는 좋은 지휘자라는 것이, 오케스트라도 녹음도 위의 음반이 객관적으로 더 낫다고 봐야겠지만 첫 오케스트라의 서주에서부터 음악이 보다 흐르는 것은 이쪽이다. 하이페츠의 바이올린은 '신선함'에서 앞서는, 오이스트라흐보다 생기있는 음악을 들려준다. 그래서 바깥쪽, 1/3악장은 이쪽이 음악이 낫고  다만 2악장은 낭만주의 협주곡의 느린 악장들과 처치가 너무 똑같아서- 그쪽 음악으로는 '절제된 표현understatement'이지만, 모차르트로는 여전히 조금 너무 기름진지 모르기 때문에- 차라리 오이스트라흐의 평범이 조금 나은지도 모른다.

3. David Oistrakh/Philadelphia Orchestra(Eugene Ormandy)- 1955

비교를 위해서 들어보면 좋은 녹음. 위 1번 녹음보다 15년이 젊은 오이스트라흐는 보다 활력이 넘친다. 해서 1악장은 음악의 흐름이 더 낫다고 볼 수 있지만 대신 3악장은 알레그로 뒤에 붙은 'ma non troppo'를 너무 무시한 느낌. 이 음악이 갖고 있는 우아함을 좀 놓치고 있다. 그리고 2악장은 위 2번 하이페츠와 정서적으로 보다 유사한, 지나치게 낭만적인 느낌- 나중에 오이스트라흐가 뭘 개선해보려고 했는지 알 수 있다.

4. Zino Francescatti/Columbia Symphony Orchestra(Bruno Walter)- 1958

여기 소개된 녹음들 가운데 가장 우아하면서 세련되고, 서정적인 모차르트. 1악장에서 음악의 기세를 조금 너무 희생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아마도 프란체스카티/발터 콤비의 생각은 2악장 안단테 칸테빌레andante cantabile를 이 곡의 핵심으로 초점을 맞추고 그것을 더 느리게, 충분히 노래해주는 방식으로 강조하는 쪽을 선택한다면 2악장이 ‘adagio’가 아니고 ‘andante’인 이상은, 1악장의 알레그로도 그에 맞춰서 더 템포를 늦게 잡는 쪽이 전체적인 일관성 면에서 옳다는 것이다. 이 곡을 전체적으로 어떻게 보고 있는지, 뭘 들려주고자 하는지가 아주 분명한 녹음.

5. Arthur Grumiaux/London Symphony Orchestra(Colin Davis)- 1962

그뤼미오는 긍정적/부정적인 의미 둘다에서 '모차르트 스페셜리스트'라고 부를 수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이 4번은 어떤 의미에선 바로 위 프란체스카티 녹음과 잘 대조되는 해석, 여기 소개된 녹음들 중에서는 전체적인 템포가 가장 빠르게 설정된 편에 속한다. 2악장도 한 호흡 늦추기보다는 비브라토도 넣을 땐 세게 넣고 치열하게 노래한다. '칸타빌레'가 좀 그렇긴 하지만 이 방식대로의 아름다움을 갖고 있고, 전체적인 일관성을 맞추기 위해서는 필요한 선택. 다만 3악장이 단독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이렇게 이어온 기분으로는 다소 속도감이나 기세가 부족할지 모른다.

6. Joseph Szigeti/London Philharmonic Orchestra(Thomas Beecham)- 1934

만약 한 작품을 연주하는데는 ‘옳은 빠르기right tempo’가 딱 하나 있다는 이론을 신봉한다면, 이 곡의 1악장에는 딱 이것이라는 느낌을 준다. 우아함과 열정을 둘다 놓치지 않을 수 있는 빠르기. 카덴차는 요아힘의 것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연주하는 것과는 좀 다르게 들리는 것이, 여전히 약간 긴지는 몰라도 이 음악과 안 어울리게 화려하다는 느낌은 잘 들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2악장도 충격적이었는데 안단테 칸타빌레andante cantabile라기보다는 거의, 이를테면 adagio tranquilo 쯤으로 들리는, 사랑스럽다기보다는 애틋한 느낌. 시게티의 관점은 아마도 이 악장은 밝은 1/3악장 사이에 대비되는 성격으로 대조를 시켜주어야 한다는 것.  우리는 확신을 갖고 동의는 못하겠지만 시게티가 들려주는 음악은 굉장히 설득력이 있다. 모차르트 협주곡의 느린 악장은 1/3악장과 감정적으로 대조를 이루는 경우(이를테면 피아노협주곡 20/23번)도 있고 대조를 이룬다기보다는 전체적으로 밝은 분위기 안에서 칸타빌레가 강조된 경우(이를테면 25번)도 있는데, 바이올린협주곡의 경우에 3번은 확실히 후자의 경우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4번의 경우는 딱 잘라서 어느 쪽이라고 얘기하기 힘든 모호한, 혹은 더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이중적인 경우인지도 모른다. 이 한곡에서 이렇게 아이디어를 배울 게 많은 경우는 드물다. 우리는 시게티를 음악적으로 바하/모차르트/베토벤의 바이올린 음악의 최고해석가라고 불러도 많이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7. Fritz Kreisler/London Philharmonic Orchestra(Malcolm Sargent)- 1937

열악한 음질에도 불구하고 1악장에서부터 곱고 우아한 모차르트라는 느낌은 온다. 무엇보다 하이든-모차르트-베토벤으로 이어지는 소위 'Viennese classic'이라고 불리는 음악의 선line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음 간격을 어떻게 세밀하게 조절하고 액센트를 어떻게 주어야 하는지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음악가. 혹 이 템포나 정서가 마음에 안들어서 템포를 당기더라도 이 리듬감각은 그대로 유지를 하면서 당겨야 한다. 각설하고, 2악장은 상대적으로 보다 발랄한 느낌의 3번째 멜로디 부분에서도 전연 변화가 없고, 3악장은 알레그로보다는 뒤에 붙은 단서 ‘ma non troppo’에 너무 방점을 찍었는지 모른다. 전체적으로 모차르트의 음악은 노래해야 한다는 것을 너무 강조해서, 이를테면 프란체스카티가 갖고 있는 균형감각은 다소 결여된 느낌.

3개 악장 모두 크라이슬러 본인의 카덴차를 사용하는데 전체적으로 요아힘 것보다 낫다고 보긴 힘들고 1악장 것의 후반부 클라이맥스를 만들어가는 부분이 가장 흥미로운 편이다.

8. Szymon Goldberg/Philharmonia Orchestra(Walter Susskind)- 1951

골드베르크는 자기만의 톤을 갖고 있다는 큰 장점을 갖고 있다. 힘이 부족하고 약간 폭이 좁은 느낌을 주는 대신 섬세하고 곱고, 밝고 따뜻한 그 음색은 모차르트에 잘 맞는 데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바이올린 음악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한번 들어볼 가치가 있는 녹음. 전체적으로 상큼함을 잃지 않으면서 우아하게 노래한다. 쥐스킨트의 반주는 바이올린의 톤이나 리듬에 비해서 박자나 액센트가 좀 무겁게 들린다.

9. Mischa Elman/New Symphony Orchestra(Josef Krips)- 1955

미샤 엘만(1891~1967)은 시게티보다 불과 한살이 더 많지만 미학적으로는 확실히 보다 19c에 가까운, 그 세대에 포함시켜야 하는 음악가다. 1악장은 심하게 로맨틱해서 루바토rubato 작렬하는 이 모차르트는 아무나 좋아할 수 있는 스타일이 아니다. 하지만 2악장은 더 기름질 거라고 생각했다면 노(NO), 음악의 흐름이 좋다. 절대적으로는 빠르지 않지만 1/3악장과의 비례를 감안하면 템포를 상당히 당겨서 간결하게 노래한다. 여전히 낭만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 방식대로의 아름다움이 있다. 엘만의 스타일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이를테면 라디오에서 이 2악장만 ‘블라인드blind’로 듣는다면 아름다운 음악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3악장도 음악이 갖고 있는 생동감을 잘 포착한 장점이 있다.

10. Anne-Sophie Mutter/Philharmonia Orchestra(Riccardo Muti)- 1982

부드럽고 여유있는 모차르트. 잘 참다가 3악장에서 인내심을 잃고 약간 당겨진 느낌이 없진 않지만 귀에 거슬릴 정도의 차이는 아니다. 딱히 연주가 뭐가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듣고 나서 기억에 남는 게 잘 없다는 게 문제- 라이브라면 그냥 듣기 좋았겠지만, 레코드는 집에 소장하고 있다가 뭔가 생각이 나서 다시 걸어야 생명력이 있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무터가 우리나이로 스무살, 딱 모차르트가 이 곡을 작곡했을 때와 같은 나이의 녹음이고 이 음악의 특성을 확인시켜준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곧, 현대의 기준으로는 테크닉이 아주 어렵지도 않으면서 10대 후반에서 60대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어떤 단계에 있는 음악가가 연주하더라도 아름다운 음악이라는 것.

 

 

선호도: Francecatti=Szigeti>Grumiaux>=Heifetz>Oistrakh>=Elman>=Kreisler=Goldberg=Mutter

해석의 삼각형; Francescatti/Grumiaux/Sziget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