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2014년 9월 서예실 교체전시_추사 김정희, 글씨와 교류
지난번 교체전시의 조선시대 중기에 이어서 이번에는 조선 후기, 자연히 추사 김정희가 주제다. 아래는 주요작품들.
● 추사서화발; 김정희 것이라고 하는 예서와 묵란을 사이에 끼우고 발문이 3개 붙어 있다. 예서/묵란은 그냥 무난해 보이는, 진짜 감정가가 와야지 아마추어가 봐선 알 수 없는 작품들. 발문들 중에선 우리가 보기엔 윤용구 글씨가 가장 낫게 보인다.
● 송운경입연시; 1811년, 26세때 작품. 아직 옹방강체를 따르고 있는 때라는데 글자 한자한자의 조형미에 신경을 쓰고 있는 글씨. 옹방강체를 얼마나 답습했는지는 우리가 옹방강 글씨를 본 게 별로 없어서 잘 모르겠고 나중에 언제 두 사람 글씨를 나란히 놓고 볼 수 있는 전시가 성사가 된다면 재미있을 것이다.
● ’함추각’ 행서대련; 최근 다른 전시에도 두어번 나왔던 물건. 조형적인 측면에선 한 글자 안에서 필획의 굵고 가는 것이 극단적으로 혼합, 배합이 되어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인데, 그렇게 권장할 만한 것은 못 된다. 특히 해/행서가 한 글자 안에서 획이 굵기가 많이 다르고 비백까지 있으면 볼 수록 눈이 피로하고 지저분하게 보이기 때문- 그래도 이 작품처럼 글자 크기가 크고 갯수가 적은 ‘대련’ 정도는 보는 효과가 괜찮지만, 글자가 작고 숫자가 많을수록 단점이 더 부각되게 된다. 바로 가운데 작은 진열장에 잔글씨를 비슷한 수법으로 쓴 ● 석도화발(석도화첩에 대한 김정희의 논평)을 계속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치 초점이 안 맞는, '흔들린' 사진같이 보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 간찰 2점(조광진; 1838년/자인현감; 1827년); 먼저 조광진에게 보내는 편지는 어쩌면 이번에 나온 김정희 글씨 중에선 가장 잘 된 작품. 글씨가 유려한 것은 위의 ‘송운경입연시’가 더하면 더하지 못한 것이 없지만, 한 자 한 획이 힘이 더 붙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글자의 조형미와 힘을 겸비한 것은 단연 이쪽인 것. 어쩌면 수신인이 본인이 인정하는 서예가라서 글씨에 더 신경을 썼는지도 모른다. 전시설명에서 친절하게 번역해준 편지의 내용 중에 ‘팔꿈치가 몹시 아프다’고 2번 이야기하는 대목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흥미로운데, 필력 자체는 전연 팔꿈치 아픈 사람의 글씨로는 안 보이기 때문이다. 즉, 정말로 심하게 아팠다면 아픈 것을 참고 이를 악물고 썼다는 뜻이 될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요즘 팔꿈치는 계속 뻑적지근한데 마침 수신인은 신경이 좀 쓰이는 사람이고, 이를테면 '(당신도 알겠지만) 내가 원래 이거보다는 잘 쓰는데 요새 팔꿈치가 좀 아파서리...', 이런 의취로 해석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조광진 작품이 있다면 같이 전시했으면 좋았을 텐데 여기서 본 기억은 없는 것 같다.
자인현감에 보내는 것은 연도에서 보듯이 10년 이상 더 젊을 때의 행초서이고 잘 썼지만 상기 'To 조광진' 만은 못해 보인다- 힘이 좀 떨어지고 한 글자에서 다음 글자로 이어지는 획들이 뭔가 도식적인 느낌이 있다.
● 묵소거사자찬; 해서는 필획에 행서만큼 힘이 실려있지 않고, 약간 긴 자형에 단정한 느낌을 주려고 한 것 같은데 역시 효과가 완벽하지는 않아 보인다. 의도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해서에 비교우위가 없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해서의 대표작품이라니 안 본 사람은 필히 한번은 봐야 할 것이다.
● 행서대련(신위); 얼핏 보기엔 자형이 웅크려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뜯어 보면 한자 한자가 모두 예쁘게 꾸며진 글씨. 신위의 대표작 중에 들 수 있을 것 같고, 우리가 보기엔 옆의 사공도 24품 중 하나를 쓴 병풍이나 녹의음시 4자보다 잘 된 작품.
20점이 채 안되는 약소한 테마전이라고 할 수 있는 소규모 전시지만 추사 김정희의 해서/행서/(행)초서/예서를, 또 연대로 봐도 20대 중반에서 50대 초반 것까지 골고루 볼 수 있는 전시. 전에 본 적이 없는 사람은 꼭 한번 들러보기를 권한다. 요즘 서울 시내에 이만큼 글씨를 볼 기회도 잘 안 나오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언제까지라고 말도 없지만 아마도 내년 2월말 정도까지는 걸려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