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2014년 2월 서예실 교체전시_조선시대 중기 글씨의 흐름
간만에 타이틀도 내걸고 개편을 많이 한 전시. 조선중기 서예를 주제로 했는데 성종부터 이광사 작품까지 있으니 '중기'를 15c 중후반 ~ 18c 중후반까지 꽤 넓게 잡고 있는 셈이다. 개편으로 '초점focus'이 좀 생긴 대신 이전에 포괄적으로 전시할 때 한두점씩 끼워져 있던 통일신라/고려 때의 작은 탁본들을 꽤 오랫동안 못 보게 된 것은 섭섭한 점. 아래는 주요작품들.
● 당시6곡병(선조); 힘이 넘치고 필획이나 전체적인 자형이 굵고 살집이 있다. 우리의 취향으로는 다섯번째 폭, 옹도의 시를 쓴 것이 가장 잘 되어 보인다. 혹 보다가 흠칫, 인쇄한 얇은 필름을 붙인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선조의 아들 의창군이 간행한 목각 탑본이라고.
● 소옹시6곡병(윤순거); 지난번 전시되었던 '무이구곡'만은 못하지만 잘 쓴 초서. 품격이나 전체적인 조형미, 짜임에 있어선 선조보다 한 수 위다.
● 지주중류비 탑본(양청천); 꽤나 힘이 좋은 큰 글씨는 중국사람 양청천의 것이라고. 이 작품은 전시설명의 실수가 좀 있는데 글씨 쓴 사람 이름이 안 적혀 있는 것- 여기가 역사관도 아니고 ‘서예실’인 이상은 비석 유래보다는 글씨부터 누구 글씨인지 밝혔어야 할 일. 뒷면 비석도 단정한 해서인데 글은 유성룡이 쓴 것이지만 글씨는 누구 글씨라고 말이 없다.
● 소식 ‘속여인행’(이광사); 힘이 부족한 글씨. 그렇다고 속도감을 완벽히 잘 살린 것도 아니다. 원래 글씨를 못 쓰는 사람은 전연 아니고 선인들의 좋은 서법을 따라할 때는 힘이 넘치고 잘 쓰는 글씨. 이것은 뭔가 본이 잘못되었거나, 독창적인 뭔가를 해보려고 시도했거나 둘 중 하나의 경우일 것으로 추측한다.
● 주희 칠언절구(윤순); 위의 것과 똑같은 평가를 할 수 있는데 여기 2점 중에선 스승의 글씨가 보다 여유와 융통성이 있고 글자의 조형이 부드러워 보인다.
● 해동건곤 존주대의(송시열); 송시열은 해서보다는 행초서에 강점이 있는 글씨. 단정한 틀 안에서는 장점을 발휘하지 못하고 마음대로 삐치고 벗어나야 힘이, 기세가 생긴다- 미학적으로 평가할 때는 아마도 등급을 떨어뜨리는 요소일 것.
글씨와는 전연 관계없는 얘기지만 문구는 '모화사상’의 결정판. '반청'이 어찌 '자주'와 같은 것이겠는가?
그리고 가운데 소품 진열장;
● 이백시(한호); 잘된 해서. 아름다움과 기세를 둘다 놓치지 않는다. ‘양송체’가 석봉체에서 나왔다지만 옆에 송준길이 쓴 논어를 보면 ‘클래스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 서간(이황); 한 글자 한 글자 힘이 들어 있다. 송설체의 귀족적인 버전version이라기보다는 선비적인 버전. 잘썼지만 퇴계 이황은 잔글씨의 편지글보다 크기가 좀 있는 글씨를 더 잘 쓴다는 느낌.
● 해서 서첩(낭선군 이우); 가늘고 우아한 해서가 금니의 느낌, 질감하고 잘 어울린다. 좋은 글씨.
● 백운계기 서첩 & 인장들(허목); 뭘해도 늘 개성이 넘치는 허목의 행서. 전시설명대로 고졸미가 돋보이지만 글자마다 형이나 크기가 달라지는 자유분방함은 아니고 같은 수법으로 계속 반복해서 쓴 글씨- 전체적인 분위기가 꼬장꼬장함을 잃지 않는 이유일 것이고, 꾸미지 않았지만 계산되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뜻일 수도 있다. 옆에 같이 있는 인장들은 새긴 솜씨가 허목의 전서만큼 잘된 것 같진 않아 보이는데 우리가 좋은 인장을 많이 보지 못해서 확실치 않고 못 본 사람들은 한번 봐둘만한 물건들.
~ 8.31까지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