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기획특별전 "표암 강세황- 시대를 앞서 간 예술혼"
표암 강세황 탄신 300주년 기념 특별전. 아래는 대략 전시구성순으로 따라가면서 살펴본 주요작품들이다.
I. 문인화가의 표상
● 자화상(강세황)/초상(이명기); 들어가자마자 입구를 장식한다. 자화상을 위한 코너다. 이렇게 전신자화상을 자작한 찬문까지 더해서 그린 경우는 희귀하다고 하는데 그런 것을 떠나서 그림 자체만으로도 탁월하다. 조선후기 초상화 중에서 최상급에 속할 것이다.
자작한 찬문 중에서는 ‘심산림이명조적心山林而名朝籍’이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마음은 산림에 있지만 이름은 조정에 적을 두고 있다’, 이것이 평복에 관모(오사모)를 씌워놓은 뜻이라는 것인데 본인의 마음이 지향했던 바는 이게 맞겠지만 그림과 글씨에 드러나는 것으로 봐선 실제 본인의 적성은 외려 반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표암은 불우하던 시절의 서화에도 궁기같은 것은 전연 없이 당당하고, 무엇보다도 그냥 맑기만 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윤기가 있다. 물론 결과론이지만, 언제 출세를 했어도 했을 사람이고 출세길이 막혀서 서화에 몰두하게 되니까 도리어 그것으로 출세를 하게 된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이후 펼쳐지는 작품들을 보고 관객 각자가 한번 판단해 볼 일이다.
이명기 초상화는 언제나 관복의 볼륨감을, 입체감을 잘 살린 것이 특징. 이것과 얼굴의 명암표현에서 한 수준 더 나아간 것이 이명기의 ‘이노베이션(innovation)’이다. 한 손은 소매 안에 감추고, 한 손만 드러낸 자세도 특이한데 표암이 취한 포즈인지 화가의 요구인지는 알 수 없다. 이명기는 조선후기 초상화의 최고 대가고, 이 작품도 유감없이 발휘된 솜씨. 이런 그림은 계속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는다.
II. 가문과 시대
● 삼세기영지가(김정희); 추사 김정희의 잘된 작품에 속한다. 글자 6개가 모두 조형미가 좋다.
● 강세황입기사서(임희성); 글씨도 단정해서 표암이 친구할 만하고, 적/청/황 삼색으로 된 종이가 2백년 넘게 묵었는데도 곱다. 우리는 이런 종류의 ‘럭셔리(luxury)’는 사실상 모두 상실했다.
● 강이오초상; 소당 이재관의 작품이고, 김정희의 찬문이 있다. 독특한 개성있는 화풍.
III. 문인의 이상과 꿈
● 지상편도; 놓치지 말고 잘 음미하기를 바라는 작품. ‘지상편’은 당나라 백거이의 시 제목. 그 내용에 나오는 집과 정원의 풍경을 그린 그림은 담채와 짙은 먹의 윤곽선, 둘다 효과가 좋다. 청량한 느낌. 시 원문을 적은 행서도 표암 득의의 필치다. 좋은 글을 그림으로 그리고, 글씨로 쓰고- 표암이 자기가 가진 장기를 다 보여줄 수 있고 소위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가장 잘할 수 있는 종류의 작업. 표암은 이런 것을 더 많이 남겼어야 했다. 그랬다면 생애의 대표작에 속하는 것도 하나 나왔을지 모른다.
IV. 여행과 사생/V. 다양한 화목, 청신한 감각
: 이 부분은 장르별로 묶어서, 다른 파트에 포함된 그림들도 합쳐서 같이 살펴보는 것이 더 나을 듯 하다.
(i) 산수화: 전반적으로 작품수가 적었던 지난번 간송 전시에 소략하게 걸려있던 산수화가 대량방출. 이 정도면 전체적인 평가를 내려볼 만한 수량이 되는데, 결론은 역시 ‘not his forte’- 표암이 강점이 있는, 가장 잘하는 장르는 아니다. 좋은 산수화는 자연 그 자체이기도 하고, 우주- 때로는 ‘나’의 관점에서, ‘내 마음속에 든 우주’다- 그 자체이기도 한데, 표암의 그림에는 이것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보다 언제나 눈에 띄는 것은 다양한 기법의 실험을 통한 개성있고 독특한 표현효과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작품들을 살펴본다면,
● 태종대; 서양화법을 도입했다고 해서 미술교과서에 종종 실리는, ‘영통동구’(곧 태종대 대신 이것으로 교체해서 전시할 예정인 모양이다)가 포함된 송도기행첩 중의 한 작품. 무슨 화법인지는 몰라도 다른 화가들의 산수화에서 보기 힘든 스타일이라는 것은 한 눈에 알 수 있다.
● 우금암도; 이번엔 ‘갈필법의 교과서’쯤일까? 역시 효과가 탁월하다. 그리고 부안의 명승지들을 그린 것이라는데 이건 ‘진경이다’, 하는 느낌이 확 온다는 것. 이 작품은 LA카운티미술관에서 온 것인데 이런 건 또 누가 언제 집어갔는지 모르겠다.
● 사로삼기/영대기관첩; 펜으로 그린 삽화같은 느낌의 표암의 그림에, 정사/부사/서장관의 글씨가 더해져있다. 보는 재미가 있다. 3명이 다 달필이라, 조선 관료들의 수준을 보여준다. 물론 대국에 사신을 보낼 때는, 자존심상 시서(詩書)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을 골라보냈을 것이다. 표암의 글씨가 가장 낫고, 취향에 따라서 다를 수 있지만 정사 이휘지보다는 서장관 이태영의 글씨가 조금 더 좋아 보인다.
● 벽오청서도; 푸른 오동나무가 담채 효과를 잘 살렸다. 표암의 장기 중 하나고 운치가 있는 그림.
● 약즙산수; 이것은 아픈 손자를 위해서 실제 약즙을 찍어서 그렸다는, 사연이 있는 그림이다.
● 산수도권(방동기창/심주계산심수도); 두 폭의 그림을 이어서 만들었다. 그림이 안 좋은 건 아니지만 옆에 있는 글씨가 더 눈에 들어온다.
● 선면산수 4점: 부채 위에 그린 산수도가 산수도(물결이나 나무의 표현은 표암의 다른 작품에서 보이지 않기 때문에, 화제만 표암이 아닌가 추정하기도 한다는데, 다만 이렇게 다양한 실험을 하는 화가의 경우에 다른 작품에서 보이지 않는 필법이 보인다고 남의 작품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지 않을는지. 그림 자체는 표암이 안 그렸어도 표암과 대등한 수준의 화가가 그린 것같이 보인다)/임거추경/금니산수(의외로 화면 상단, 원경의 산들의 표현에서는 금니의 효과를 완벽하게 살리지 않은 느낌은 있다)/소정유경, 이렇게 4점인데, 모두 우아한 정취가 있다.
(ii) 사군자/화훼영모; 사군자는 난=죽>국>매의 순서고 특히 매화는, 물론 여기 있는 한두점을 보고 판단할 순 없지만, 평균이하인지도 모른다.
● 난죽도; 세상을 뜨기 1년전(1790), 최만년의, 드디어 ‘난죽에 일가를 이뤘다’고 선언하는 것 같은 작품. 표암이 남긴 것 중에서 장르를 떠나서 손꼽힐 만하다. 중앙에 대나무 두 그루를 중심으로 대나무와 난초를 더 배치했는데, 좌측의 대와 바위, 우측의 난초와 바위가 모두 한 몸체인 것처럼 통합된 형태를 이룬다. 조선후기 사군자장르를 통털어서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일 것이다.
● 표암첩/표옹선생서화첩; 사군자, 화훼영모 장르의 소품들을 모은 것이고, 서화첩엔 글씨와 한폭씩 번갈아 있다. 그 외 ●여지와석류/사군자행서권들도 볼 만 하다.
VI. 당대 최고의 감식안
: 여기는 표암이 발문을 쓰거나 화평을 적은 다른 화가들의 작품들이다.
● 정경순초상; 한종유 필로 추정하는 그림도 좋고, 조윤형과 강세황의 찬문이 같이 있어 비교해볼만 하다. 조윤형 글씨도 좋지만, 글씨의 골기나 윤택함에서 표암이 한수 위라는 걸 알 수 있다.
● 하경산수도(겸재); 한국식 진경산수는 아니고 중국화풍이라고 해야겠지만, 그래도 여기 나온 산수화 중에선 이게 제일 낫다고 해야 할 것이다.
● 십우도(이인문); 테크닉으로 말하면, 겸재보다 한수 위다. 전체적인 구도도 짜임새가 있고 바위의 질감이라든지 색을 많이 쓰진 않았지만 청신한 느낌이라든지, 디테일을 보는 재미가 있다.
● 어선도(조영석); 그림이 괜찮지만 강세황이 ‘제일’을 서너번 반복해서 쓴 평은 약간 오버.
● 나비,찔레꽃(단원); 강세황에게 그림을 지도받은 적도 있고, 특수한 관계였음을 고려해서 단원 그림이 여러 점 있는데, 모두 보존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고 단원의 수준에서는 최상급은 아니다. 이것은 재미있는 소품.
● 균와아집도; 전체적인 구도는 표암이 잡고 나무,바위의 배경은 심사정과 최북이, 인물은 당시 19세였던 김홍도가 그렸다. 재미있는 합작품. 어쩌면 그때부터도 산수는 심사정과 최북, 인물은 단원이라는, ‘비교우위’에 입각한 분업이 아닌가 싶어서 흥미롭다.
- 간략 총평-
● 표암의 베스트라면 뭘 꼽을 수 있을까? 인물화에선 ‘자화상’, 사군자에선 ‘난죽도’, 화훼영모에선 간송이 갖고 있는 ‘향원익청’이 최고인 것 같다. 산수화엔 이에 상응하는 수준의 작품은 없다.
● 아쉬운 점이라면 글씨를 더 많이 보고 싶었는데 역시 회화만큼 대중적이지 않다고 소외시키는 것인지, 순수 서예작품은 거의 없다. 표암의 글씨가 대중적으로 이름이 나지 않은 것은, 석봉체니, 추사체니, 이서-윤순-이광사로 이어지는 동국진체니 하는, 서예사의 흐름에 남는 무슨 ‘체’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광사 글씨가 순수하게 미학적인 차원에서 표암보다 나은 것은 아니다. 글씨 자체는 보통 ‘왕도, 왕법’이라고 하는 것의 충실한 재해석에 속하고, 석봉체 이후, 즉 조선 중기 이후보다는 차라리 조선전기 안평대군이 재해석한 송설체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아는 것도 적은 우리가 본 것도 너무 적어서 더 가타부타 논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다만 전체적인 비례나 균형이 무너진 것같이 보일 때에도 획 하나하나에 이유가 있고, 그 연결이 논리적이라는 점은, 명필의 '레벨'을 구분할 수 있는 특징 중 하나인 것 같아서 주목할 만하다.
~8.25(일)까지. 무료.
(2층 산수화실에 표암과 같이 ‘조선남종화풍’으로 묶이는 심사정 산수화의 대표작들, 강세황의 전칭작, 그밖에 친구인 허필, 증손 강진의 그림 등이 전시되어 있으니, 꼭 2층에 들러보기를 권한다. 이런 체계적인 연계전시는 바람직한 기획. 이번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칭찬받을 만한 일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