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전시 review

국립중앙박물관 기획특별전 "조선청화, 푸른빛에 물들다"

이현욱 2014. 10. 30. 19:59

국내 '최초', '최대'의 타이틀을 걸고 열린 청화백자 전시. 아래는 대략 전시구성순 주요작품들.

 

I. 조선백자 그리고 청화백자

백자와 청화에 대해서 소개하는 부분이고 들어가자마자 거의 입구에 있는 2점,

● 백자(유개)호/백자청화매조죽문(유개)호; 순백자호가 키가 좀더 크긴 하지만 거의 비슷한 모양이기 때문에 비교해서 볼 수 있게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매조죽문호'는 잘된 화조화에 아담하면서 적당히 어깨가 나온 형태도 좋다.(보다 자세한 논평은 아래 III. '한중일 청화백자의 교류'에 합쳐서 적었다. 실제 관람시에도 번거롭더라도  III부를 보고 나서 한번 다시 와서 보고 가는 게 좋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

 

II. 청화백자, 왕실의 예와 권위

백자청화운룡문’선덕년제’명호(1426~35, 이데미쓰 미술관); 우람하고 힘이 넘치는 형체나, 특히 때깔은 이 방에 있는 용준들 중에서는 적수가 없다. 다만 그림에 기가 좀 부족하고 형태가 전후좌우 너무 대칭이라 묘미가 적은 것이 흠- 후자는 중국 자기의 일반적인 특성이라고 볼 수도 있다.

방 가운데 나란히 대형 용준이 4점 있는데 모두 18c 것이고 그림이라든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크게 봐서 수준은 비슷한 편- 크기가 정확히 어떻게 비교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덩치 큰 것들 중에서는 얼마전 호림박물관 백자호 전시에서 '독방'을 차지하고 있었던 운룡문대호가 보존상태라든지 종합적으로 가장 나았던 것 같다.

 

III. 한중일 청화백자의 교류; 원래 전시구성상은 큰 항목은 아니고, 위 II부에 포함된 작은 항목으로 되어 있는데 우리가 따로 빼낸 이유는 이 방이 단연 이 전시의 하이라이트이기 때문이다.

(i) 먼저 입구의 '매조죽문(유개)호'와 유사한 스타일의 3점

● 백자청화송조문호(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항아리의 구면을 잘 이용해서 그린 소나무가 멋들어지다.

● 백자청화매죽문호(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이것은 그림은 비슷한 수준이지만 구도에 약점이 있다- (전시된) 정면은 번다하고 뒷면은 여백이 많다기보다는 좀 휑해 보이기 때문.

백자청화매죽조문호; 항아리 입 아래쪽에 유약이 푸르게 뭉친 것이 그림과 어울려서 오히려 더 효과적으로 보인다. 역시 지난번 호림 전시에 나왔던 '백자철화죽문호'와 비슷한 경우.

 

; 이렇게 묶은 넉 점의 스타일상 공통점은? 벽면 진열장에 전시된 명대 청화백자들을 보면 대개 화려한 장식문양을  진하게 화면 가득 채워서 '배치'한 것에 비해서 이 넉 점은 약간 흐린 청화로 처음부터 화면을 마치 도화지 혹은 화선지처럼 써서 여백을 운용한 그림이 좋다는 것. 백자는 마치 흰 화선지처럼 여백의 미를 살려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가? 단, 도자기는 평면이 아니고 구면이기 때문에, 이를테면 선면산수가 문자 그대로 ‘부채꼴’에 맞춰서 구도를 짜야 하는 것처럼, 그에 맞게 화면을 잘 이용해서 구도를 짜야 한다- 상기 '송조문호'의 휘어진 소나무 그림이 멋들어지게 어울리는 이유. 하지만 아마도 보다 중요한 이유는 문양의 특성일 것이다. 화면에 가득 채우는 스타일은 명이 이슬람권에서 수입한 ‘아라베스크’ 유형의 문양에 딱 어울린다. 즉 이런 식물 문양들은, 말하자면 '단체전'에 강한, 모일 수록 강해지는 문양인 것.  반면 매, 죽, 소나무, 새, 이런 문양은 굳이 화면을 가득가득 채워서 그린다고 더 멋있어지지 않으니 그렇게 그릴 필요가 없다. 그리고 그림이 잘되고 보니 의도적인 것인지 아니면 기술적인 문제인지- 굽는 과정이건, 안료 문제이건, 혹은 비싼 수입 안료를 아끼기 위해서 그랬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약간 흐린 청화가 이제 와선 오히려 회백색의 조금 탁한 유색하고 더 잘 어울려보인다.

이렇게 소재의 특성을- 화면과 화제 양면에서- 잘 포착해서 효과를 극대화한 것이 우리가 보기에 조선 청화백자의 특장이다. ‘영선청화(곧 영락/선덕연간의 청화백자)’가 화려함이나 정교함, 장식성에선 단연 뛰어나고 세계에 자랑할만한 명대의 문화유산인 것이 틀림없지만, 이 '매조죽문호' 등의 격조는 명청대보다는 송대 풍격에 더 근접한 것이다.

 

백자청화매죽문호(호림박물관); 이것은 딱 위 (i)과 아래 (ii) 명나라 스타일의 ‘과도기’같이 보이는 것이 독특한 작품. 아래 위로 장식문대는 넓게 둘렀지만 오직 점과 선만으로 간략하게 구현이 되어 있어서 가운데 여백을 충분히 살린 스타일의 그림과 잘 어울린다. 다만 매화가 필선의 기가 조금 부족한 것이, 반수쯤 실력이 떨어지는 화원이 그린 것처럼 보이는 것이 아쉬운 점.

 

(ii) 다음은 명 청화백자와 보다 유사한 스타일의 2점

백자청화매죽문호(리움미술관); 빛깔이 단연 돋보이고 형태도 나무랄데가 없다. 그림도 좋은 것이 매화나 대나무가 싱그럽고 생기가 있다. 보존상태도 참 좋아 보이는데 아쉽게도 오른쪽으로 돌아보면 벗겨진 부분이 있다.

백자청화송죽문’홍치이년명’호(동국대박물관); 그릇 형태에 맞게 화면 아래 죽순부터 죽죽 뻗어올라오는 기세가 좋은 그림. 이만한 크기에 빛깔도 좋고 여러 모로 나무랄 데가 없는 물건.

; 이 둘은 더 진한 청화에 장식문양대도 더 화려하고 그릇 가득 화면을 꽉 채워서 그려넣은 것을 볼 수 있다. 중국 것과 차이라면 조선전기의 청화백자들은 도화서의 화원이 가서 그렸기 때문에 그림의 필력에 있다고 주장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외 주목할 만한 작품들은,  

백자청화보상화당초문접시(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우아함 그 자체.

백자청화운룡문병(리움); 보존상태 좋고 색깔 좋고 크진 않지만 딱 아담한, 곡선미를 잘 살린 형체가 일품이다. 다만 그림이 잘 되었지만 S급에는 살짝 못 미치는 그냥 A급.

정자 토끼무늬 전접시(도교국립박물관); 스프레이처럼 뿌려진 청화 문양이 몽환적이면서도 모던하다.  '분위기 있는' 접시.

(여기까지만 잘 봐도 이미 5천원 본전은 다 뽑은 셈- 실제 관람할 때도 여기까지는 충분히 시간을 갖고 한점씩 뜯어보는 것이 좋고, 뒤쪽은 작품 점수는 훨씬 많지만 남는 시간에 슥슥 지나가면서 봐도 되니 시간 배분에 참고하기 바란다.)

 

IV. 문인이 사랑한 청화백자

백자청화초화문각호(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팔각은 보다 흔하지만 이렇게 아래로 배가 불룩한 형태는 희귀할 것 같다.

백자청화난초문표형병; 이것은 표주박형태의 대표선수격. 위의 것과 함께 이 2점은 문양이나 빛깔보다는 형태가 특이한 맛이다.

백자청화매난죽조문호; 송죽매문병/매죽문접시/매죽문연적/매죽송문다각지통까지 ‘대’그림을 공통적으로 포함해서 마치 한 세트같은 5점이 모여있는 진열장인데, 이 방에서 기중 그림 잘된 편에 속한다.

백자청화철화접문시명8각연적(호림박물관); 청화/철화를 섞어서 8각면에 시를 적고, 윗면에는  그림을 그렸다. 솜씨도 무난하고 보물로 지정이 된 것은 역시 이 특이함일 것이다.

백자청화매조분재문호(리움); 그림이 세부들은 괜찮은데 화면구성이 좀 번다한 것이 흠.

● 백자청화괴석화문합; 역시 그림이 세부는 잘 되었는데 이번에는 전체적으로 뻗어나가는 각도가 같다든지, 좀 동어반복의 의미가 없지 않다.

 

V. 청화백자, 만민의 그릇이 되다

백자청화운룡문호(아모레퍼시픽미술관); 후기 내지 말기 운룡문호 중에선 이 아모레퍼시픽 것이 때깔이나 그림이나 가장 나아보인다. 이어서 소장처로 구분도 안되는 같은 종류/이름의 작품들이 계속 모여 있는데 백자청화동화운룡문병은 전시번호 '3번', 운봉문병은 ‘4번’, 용봉문합은 ’2번’이 미소한 차이지만 빛깔이나 그림을 종합해서 우리가 고른 작품들.

백자청화동화매조문각병/백자청화동화철쭉무늬병; 이 둘은 동화를 첨가한 버전. 전자는 강렬한 효과를 노렸지만 후자가 보다 효과적으로 동화가 쓰인 것으로 보인다.

백자서화당초문합; 전시팜플렛 혹은 포스터의 그 작품이 궁금하다면 바로 이 물건. 거의 청채 수준으로 파란 작품들이 모인 이 진열장에서 가장 매력적이다. ‘서화瑞花’는 사전에는 눈을 의미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사전에 안 나오는 다른 의미가 있거나, 아니면 문양 가운데 눈처럼 하얀 꽃잎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겠다.

백자초화문유병; 때깔이 좋고 그림은 단순한 것이 매력. 이 유병이 있는 벽면진열장 아래쪽으로 19c 것으로 형태나 빛깔, 청화 문양이 두루 무난한 작품들을 5점 정도 골라볼 수 있는데 백자청화운학문표형병/백자청화초화문표형병(둘 중에 왼편 것)과, 주자 중에서는 백자청화동채송하인물문주자(손잡이 동채처리한 것이 효과가 괜찮다)/백자청화국화문주자/백자청화모란문주자 등이다.

백자수복문’제수’명호(국립고궁박물관); 글자 무늬 위주로 된 작품들 중에 가장 빛깔이 좋고 깔끔하다.

 

이하 모란문 백자를 모아 놓은 진열장이라든지 다 볼만하고, 19c 청화백자로 이렇게 질 좋고 상태좋은 것들을 다른 데서 이만큼  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문제는 이 시기에 접어들면 이미 중국풍을 답습한 기계적인 대량생산품의 느낌이 강하다는 것- 자꾸 볼 수록 처음보다 점점 싫증이 나는, 물리는 스타일.

 

  이런 의미에서 중간에 철화백자를 작은 항목으로 포함시키는 게 더 나았을지 모른다. 우선 보기에도 중간에 미감이 좀 다른 철화가 끼워 있는 게 관람객 입장에서 눈이 지치지 않는 이점이 있기 때문. 15~6c 청화와 18/9c 청화 사이에 청화백자가 많이 생산되지 않은 17c가 좀 비게 된 것도 구성상 약점이라고 할 수 있고 임진왜란 이후 조선이 가장 어려웠던 시절에 조선백자가 어떻게 반응했는가 보여주는 의미도 있다. 별 실속이 없는 국내 ‘최초’, ‘최대’라는 타이틀에 너무 집착한 것은 아닌지? 이 기획전시실은 꽤나 넓어서 비슷한 종류의 작품을 이렇게 중복전시하는 의미는 좀 적고, 반면 철화백자는 단독전시할 만한 주제는 안된다. 마지막 5부인  '현대에 살아 숨쉬는 청화백자의 미감'을(여기는 정규의 것, 백자청화철화동화문호가 그래도 그림이 좀 개성이 있어서 볼 만한 정도니까) 빼면 가장 쉽겠지만, 같은 종류의 청화백자 전시품이 워낙 많기 때문에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 유사한 것들을 조금씩만 덜어내면 500여점 규모 전시에 설마 철화백자 2~30점 집어넣을 공간이 없겠는가?

 

여하튼 도자기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불문곡직하고 일단 봐야 하는 전시. 관심이 없던 사람도 공부하기 좋은 전시니 시간이 있으면 꼭 들러볼 것을 권한다

 

~11.16(일)까지. 성인 기준 5천원.